[정리뉴스]박종철 사망 30주기..사진과 글로 정리해보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경향신문] 14일은 박종철 열사의 30주기입니다. 1987년 이후 해마다 돌아오는 기일이지만,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한국사회 현 상황은 오늘 기일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듯 합니다. 향이네에서 지난해 같은날 작성한 ‘[정리뉴스]박종철 사망 29주기…사진과 글로 정리해보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30주기에 맞춰 업데이트했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14일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이던 박종철 열사가 불법 체포돼 치안본부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수사관들에게 고문·폭행을 당해 사망한 사건입니다. 전두환 정권은 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으나 언론·의학·종교계의 끈질긴 노력으로 진상이 밝혀지면서 1987년 6월 시민항쟁의 주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박종철 열사는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86년 4월1일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된 뒤 같은 해 7월15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습니다. 2005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따르면, 박종철은 공장에 위장취업한 뒤 3주간의 공장 활동 기간 동안 공장의 위치나 근로조건 등을 꼼꼼히 기록한 <공장활동 보고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출소 후에도 학생운동을 이어가던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13일 자신의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에게 연행됐습니다. 경찰이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 파악을 위해 그 후배인 박종철 열사를 불법으로 체포한 것이었습니다. 다음날인 14일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인 박종운의 소재를 묻는 질문에 박종철 열사가 계속 답하지 않자 물고문·전기고문이 시작됐고 결국 박종철 열사는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습니다. 영원히 묻힐 것 같던 진실은 우연히 사건의 단서를 접하게 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의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짧은 기사 이후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박종철 열사 사망 다음날인 15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박종철 열사 사망에 대해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고문에 의한 사망이 아닌, 단순 쇼크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경향신문은 경찰이 발표한 내용은 이렇게 전합니다.
-이날 박군은 오전 8시1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9동 하숙집에서 경찰에 연행된 뒤 9시16분쯤 경찰이 제공한 콩나물국과 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어제밤 술을 많이 마셔 밥맛이 없다”며 냉수 몇 컵을 요구해 마셨다는 것이다. 이어 10시 50분쯤부터 수사관의 신문을 받기 시작, 11시20분쯤 수사관이 수배된 박종운군(서울대생)의 소재를 물으면서 책상을 세게 두드리는 순간 의자에 앉은 채 갑자기 “억”하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곧바로 박군을 용산의 중앙대 부속병원으로 급히 옮겼으니 이날 낮 12시 숨졌다. 경찰은 “박군을 조사할 당시 수사관의 가혹행위는 절대로 없었다”고 전했다-

박종철 열사의 시신 부검은 1월15일 오후 9시5분부터 10시25분까지 한양대병원 영안실에서 서울지검 형사부 안상수 검사의 지휘와 황적준 박사의 집도로 실시됐습니다. 사건 당일 현장을 목격한 중앙대병원 오연상 전문의가 16일 고문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제기했고, 17일 박종철 열사의 부검을 담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황적준 박사가 물고문과 전기고문 흔적이 있다는 부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진상이 속속 밝혀졌습니다.
언론의 의혹 제기가 이어지자 사건 발생 5일 만인 19일 경찰은 마지못해 물고문 사실을 시인하고 수사경관이던 조한경과 강진규를 구속했습니다.


1월20일 한 대학에 붙은 대자보를 소개합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김근태씨, 이을호씨 등 수많은 민주투사에 대한 고문, 살인행위, 성고문행위에 이르기까지 차마 인간으로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탄압도 서슴지 않았던 저들은 다시한번 박종철 학형에 대한 고문살인을 자행함으로써 민족민주운동 전반에 대한 살인행위를 저질렀다. 형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일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총칼앞에 무력한 우리들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 고문살인행위가 수사관 개개인의 잘못의 문제가 아니고 이러한 피해가 개인 것만이 아닐진대 이것은 이땅의 모순된 구조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제2의 박종철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고문살인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면서 기존의 체제유지를 위해 발악하고 있는 군사파쇼정권을 분쇄해야만 한다”
고문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가 민주화투쟁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당황한 전두환 정권은 김종호 당시 내무부장관과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해임하기에 이릅니다.

전국의 많은 교회와 성당, 사찰 등에서는 박종철군 추모 예배와 추모 법회, 고문 사례 발표회 등을 열었습니다. 노동계와 학생들은 잇따라 박종철 추모 집회를 열었습니다. 김대중·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은 1월26일 김대중 자택에서 회동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대책 등을 논의하고 2월7일 신민당과 재야가 합동으로 박종철 추모대회를 개최키로 합의합니다. 이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경찰은 전단지를 발행하는 인쇄소를 수색하기도 하고, 지방에서 전경들을 불러 모으기도 합니다.











넉 달 뒤인 1987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경찰의 은폐·조작을 폭로했습니다. 박처원 치안감, 유정방 경정, 박원택 경정 등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조작했고, 고문가담 경관이 2명이 아니라 모두 5명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안기부, 법무부, 내무부, 검찰, 청와대 비서실과 이들 기관의 기관장이 참여하는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은폐·조작에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시민들의 시위는 끊이지 않습니다.






당시 서울지검은 1987년 2월 1차 수사에서 고문 경찰관 2명으로부터 “고문치사의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진술을 받고도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으며, 2차 수사에서도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범인 축소 조작에 가담한 혐의가 전혀 없다”고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박상옥 현 대법관은 서울지검 검사로 재직하면서 1·2차 검찰 수사에 모두 참여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5월26일 노신영 국무총리, 장세동 안기부장, 정호용 내무부장관, 김성기 법무부장관, 서동권 검찰총장 등 권력 내 핵심인물에 대한 문책인사를 단행했으나, 시민들의 민주화투쟁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거세진 시민들의 민주화투쟁은 6월항쟁으로 이어져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헌법 개정을 쟁취해냈습니다.



한편 박종철 열사가 죽음으로 지킨 선배 박종운은 2000년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해 경기 부천시 오정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잇달아 낙선했습니다.
<정대연·홍진수·이재덕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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