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FIFA 때문에 살아난 잔디, 누구를 위한 축구장인가

[스포티비뉴스=전주, 유현태 기자] 20일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2017이 개막했다. 지금까지 경기가 열린 대전, 전주, 제주, 수원의 경기장들은 모두 최고의 잔디 상태로 선수들을 맞았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잔디 문제가 제기됐지만 대회를 앞두곤 완벽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했다.
이번 시즌 K리그 개막 직후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잔디 상태는 좋지 않았다. FIFA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지난 시즌 중 수원월드컵경기장 잔디를 전면 교체했고 집중 관리했다. 겨울 잔디 관리가 어려웠지만 개막에 맞춰 잔디를 관리했다. 이번 시즌 초반엔 일정 간격으로 잔디가 파여 있었다. 수원 삼성 구단 관계자는 잔디에 '숨구멍'을 열어 더 잘 자라게 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노력의 결과는 나타났다. 수원월드컵경기장 잔디는 빈 곳 없이 말끔해졌다. 21일 밤 8시 우루과이와 경기를 치른 이탈리아 안드레아 차카뇨 골키퍼는 "경기장이나 시설은 아주 만족한다. 잔디의 경우 앞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일본의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몇 군데는 안 좋은 곳이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즌 초 잔디 상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전북 현대도 전주월드컵경기장을 U-20 월드컵을 위해 내주고 '옛 전주성' 전주종합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겨 K리그 경기를 치르고 있다. 잔디 상태는 좋지만 경기장 시설이 낡은 데다가 지붕이 전혀 없어 땡볕에서 선수들의 체력 저하도 심하다. 전북의 배려 속에 전주월드컵경기장의 잔디는 상태가 매우 좋다. 신 감독도 "잔디 상태가 좋다"며 만족감을 표했을 정도다.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어 기쁘지만, 그래서 더 씁쓸하다.

잔디는 지난해 K리그를 달군 화두였다. 지난해 9월 17일 치러질 예정이던 K리그 클래식 30라운드 상주 상무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잔디 문제로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전북 현대 역시 잔디 때문에 홈 경기를 치르지 못할 뻔했다.
한국 축구의 성지라는 서울월드컵경기장도 잔디 상태는 엉망이었다.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을 치른 뒤 구자철은 "홈에서 경기를 하면서 제대로 된 볼터치를 한 적이 별로 없다. 경기장 상태는 경기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잔디 상태가 너무 안 좋다. 홈에서 유리한 경기를 펼쳐야 하지만 이런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기성용은 지난 3월 중국 창사 원정 때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창사 허롱스타디움 잔디에 대해 질문을 받자 "(잔디는) 한국보다 나을 것같다. 상암(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뛰는 게 제일 싫다"고 말했다. 그는 시리아전 이후 "잔디 이야기는 항상 이야기하지만 나아지는 부분이 없다.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한국 축구의 현실이다. 중국보다도 모든 인프라가 떨어지는 것 같다"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A 대표 팀 선수들의 '중국화' 논란이 일었지만, 잔디만큼은 '중국화'돼야 했다.
국제 대회 준비를 위해 정성을 기울이면 나아질 수 있는 잔디인데, 왜 지난해엔 내내 좋지 않았던 것인가. 유난히 더웠던 날씨를 생각해도 잔디 수준은 형편없었다. 단순히 지난해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었다.
'소비자'인 팬들에게 재밌고 흥미로운 경기를 보여 주기 위해선 질 좋은 잔디는 필수다. 상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채 관심을 바라는 것은 '직무 유기'다. 대다수 구단이 각 지방자치단체 산하 시설관리공단과 협의해 경기장을 관리한다. 구단들이 잔디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K리그는 줄곧 이어졌다.
기술이 떨어지고 투박하고 거칠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SPOTV 김태륭 해설 위원은 지난 시즌 전북 현대의 예를 들어 잔디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전북이 전주에선 투박한 경기를 했지만, 클럽 월드컵에 가서는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쳤다"며 잔디가 선수들의 플레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수수방관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을 비롯한 각 구단의 노력에 아쉬움을 표할 수밖엔 없다.
신태용호의 선전으로 한국 축구는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빠르고 재미있는 K리그 경기로 팬들을 붙잡아야 한다.
U-20 월드컵이 중요한 대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달이면 막을 내린다. U-20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만큼 중요한 것은 한국 축구의 역량 강화다. 앞으로도 5개 월드컵경기장은 뛰어난 잔디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관리가 없다면 잔디가 상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를 위한 축구장이고 무엇이 중요한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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