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정대세에게 수원은 '행복'이고 '영광'이었다

홍의택 2017. 1. 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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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홍의택 기자= "양형모가 승부차기를 넣어 이기는 걸 보고 '인생이란 게 진짜 재밌구나. 이게 사는 맛이구나' 싶었죠"

[인터뷰①] 정대세의 축구는 '태주·서아' 전후로 나뉜다(클릭)

정대세(32, 시미즈 에스펄스)가 묻기도 전에 수원 삼성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초 치른 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을 봤다며, 정말 부러우면서도 축하할 일이었다며. 지독히도 힘들어했던 2016년,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웃은 친정 팀을 논하면서 옛 나날을 회상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죠. 조직이 완전히 붕괴된 것도 아니고, 수비도 어느 정도는 괜찮게 됐고. 그런데 비기는 경기가 너무 많았잖습니까. 분명 이렇게 될 경기가 아닌데, 막판에 비기거나 지니까요. 몇 번 그러니 원인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예산이 줄어가는데도 서정원 감독님은 잘해주셨고, 그 덕에 마지막에 우승 하나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정대세는 2015년 7월 일본 이적 후에도 꾸준히 수원 소식을 챙겼다. 현 소속 팀과 경기 시간이 겹칠 때면 하이라이트로라도 경기를 접했다. FA컵 결승전은 마침 J2 리그 시즌이 끝난 뒤였다.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지켜봤다.

"사실 그 날 양형모가 나오는 걸 보고 와이프에게 '오늘 수원 안 되겠다' 했습니다.(웃음) 제가 양형모 선수를 잘 모르기도 했고, 실제 승부차기에서도 방향을 다 반대로 뛰었잖아요. 그런데 결국 골키퍼까지 킥을 해 넣는 걸 보고 '인생 참...' 싶었죠.(웃음)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가장 크게 웃을 수 있다'는 독일 속담이 있는데, 2016년 수원에 딱 맞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지금껏 우승을 못해봤는데, 그 결과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함께했다면 둘도 없는 기쁨을 누렸을 텐데요"

정대세는 급작스레 수원을 떠났다. 여느 이적이 그렇듯, 특히 시즌 도중 팀 이탈이 그런 것처럼 이별을 준비할 최소한의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팬들의 아쉬움도 짙었다. 막 자리를 잡고 비상할 때라 그 정도는 더했다.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죠. 어떤 거래든 언론에 뜨면 망하게 돼 있으니까. 협상 자체를 절대 들키면 안 됐어요. 팬들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또 안 그랬습니다. 나이를 먹고 가족이 생기면서 조건을 본 선택을 내려야 했습니다"

이적 여파는 컸다. 전북 현대 바로 아래서 선두를 탐했던 수원은 끝끝내 판을 뒤집지 못했다. 무득점 경기가 나오는 날이면 팬들은 떠나간 정대세를 찾곤 했다. 서정원 감독도 허한 마음을 드러냈다. 2015년 10월 성남 FC와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35라운드에서 0-0으로 비긴 뒤 했던 말이 그랬다. "'정대세가 있었다면' 하는 게임이 많았죠. 조직력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습니다".

"제가 있었어도 결과는 비슷했을 겁니다. 그때도 전북에는 쉽게 못 이겼으니까요. 다만 서정원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사실 구단은 상황상 저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약 조건만 맞으면 당연히 더 뛰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서 '수원에 더 못 있는다'는 얘기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도 '필요 없다'면서 내보내는 것보다는 덜 아쉽죠. '나가지 말라'며 아쉬워하는 분이 계신 것도 어쩌면 제가 인정받은 게 아닌가 싶었고요"

그 여파가 이듬해에도 계속됐다. 포지션 특성상 몇몇 이들이 돌아가면서 메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득점'만을 위한 전문가가 필요했거늘, 대체자 물색 작업이 수월치 않았다. 여러 공격수가 오간 가운데, 조나탄이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속앓이를 멈췄다.

"김건희가 1년 차였는데도 잘해주지 않았습니까. 몇 경기를 봤는데, 저돌적이고 슈팅도 잘하고 상상력도 있더라고요. 다만 조나탄이 그 역할을 확실히 해주면서 덕분에 FA컵도 우승했어요. 나보다 좋은 선수가 들어온다는 건 늘 반반입니다. 저를 계속 그리워해주길 바라는 욕심 절반, 수원이 더 좋은 성과를 거뒀으면 하는 마음 절반요.(웃음)"

정대세는 여전히 한국이 그립다. 알려진 것과 달리 K리그를 떠난 뒤에도 한국 생활에 대한 미련이 컸다. 일본행 출국 직전까지도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꽉 차지 않은 K리그(수원이 아닌 리그 전체를 지칭) 관중석 탓에 외로웠다"던 그는 "리그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며 직언을 날렸다.

일본에 적을 두면서도 '추캥(축행, 축구로 행복을 만든다)', '홍명보 자선 축구' 등 국내 행사에 참가했던 정대세는 지난해 12월 짤막한 한국 일정 동안 수원 구단을 찾았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올해는 일년 내내 힘드셨을 텐데, 마지막에 좋은 결과 거두어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란 편지를 남겼다.

"한국에서는 후배들이 정말 착했어요. 반항했던 돌○○는 홍철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웃음) 선후배 관계가 두루 좋아 조직적인 부분이 남달랐죠. 참, 홍철이 얼마 전에 군대 간다는 얘길 들었어요. 제가 수원 나갈 때 '형, 고마워요. 그런데 3년 뛰면서 저한테는 밥 한 번 안 사줬네요'란 소릴 들으니 많이 아쉽더라고요. 결혼하고 애들 생기고 나면서 바깥에 잘 안 나갔거든요. (염)기훈 형 등 전 동료들과는 아직도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해요"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정대세는 독일, 한국 등지를 거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과거 독일서 뛰었던 때를 콕 집어 "그 팀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찡그리던 그는 수원을 가리켜 '내 팀'이란 표현을 꺼냈다.

"시미즈에서는 축구가 재밌었어요. 경기 스타일뿐만 아니라 홈 경기가 거의 만석이었으니까요. 팀을 선택할 때, 열렬한 응원을 보내줄 팀을 고른 것도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 수원에서 뛴 건 큰 행운이었죠. K리그 최고의 서포터즈가 있다는 걸 모르고 갔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사실 한국에서는 힘든 일이 더 많았어요. 경기 외적으로 여러 사건이 있었고, 인터넷 뉴스 댓글을 아예 안 보기도 했죠. 그래도 팀 서포터즈, 팀 메이트와 함께 다시 한번 뛰고 싶어요. 물론 저를 다시 영입해줘야 가능한 얘기지만,(웃음) 수원은 그만큼 귀중하면서도 영광스러운 클럽입니다. 앞으로도 잘되길 바라고, 서정원 감독님 능력으로 2017년에도 잘하리라 봅니다"

사진=정대세 본인 제공,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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