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베테랑 토크③] 이순재 "나는 무대에서 연기하다 죽고 싶어..그게 다야!"
앞서 말했듯, 이순재는 올해 연기인생 61년째를 맞이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을 넘어’로 데뷔한 그는 1961년 KBS 개국 첫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가’를 통해 브라운관에 데뷔했고, 이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수백편의 작품에 출연해 다수의 주연을 맡았다.
특히 80년대 이후 브라운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는 ‘드라마 풍운’,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보고 또 보고’, ‘허준’, ‘야인시대’, ‘엄마가 뿔났다’, ‘베토벤 바이러스’ 등 200여편의 드라마에 출연해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2007년에는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야동순재’ 바람을 일으켰고 배우 출신으로는 최초로 연예 대상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이후 tvN ‘꽃보다 할배’ 등에 출연하며 ‘국민 할배’로 떠오르며 젊은 층의 인기를 사로잡기도 했다. 또 배우로는 최초로 한국방송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이에 앞서 ‘MBC 명예의전당’에도 헌액된 바 있다. 드라마, 영화, 연극, 예능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유일한 스타다.
이처럼 많은 족적을 남긴 그가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5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여러 나라의 영화가 국내에 들어왔고, 이순재는 이 작품들을 보며 ‘예술’에 대한 동경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주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작품 등을 봤다. 특히 네오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이탈리아 영화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예술성을 강조하는 영화가 많았어. 로베르토 로셀리니나 비토리오 데 시카 등 명장들이 많았지. 프랑스를 예로 들면, 30~40년대에 명장들의 고전이 나오지. 그게 진짜 예술 영화였어. 요즘에 애니메이션으로 ‘미녀와 야수’를 보지 않나. 우리 때는 최고의 지성파 시인인 쟝 콕토 감독의 ‘미녀와 야수’를 봤어. 그게 쟝 마라이스가 출연한 작품인데 환상적인 작품이지. 그 당시 흑백영화대로 예술성을 강조했어. 이후 신예들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미학적인 면을 많이 살렸어. 영국으로 넘어가면 세익스피어의 ‘햄릿’, ‘리처드 3세’,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봤다. 나는 로렌스 올리비에를 정말 좋아했지. 정말 당당한 예술인이었어. 또 상업적인 면과 예술적인 면을 공존시키고 있는 미국 작품 등을 보면서 나도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
대학생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정작 부모님께는 말하지 못했다. “아마 부모님께서는 눈치를 채고 계셨을 거야”라고 말한 이순재는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기성극단이 채용을 하지 않자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 극단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끼리 모여 만든 것이 소극장 운동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그 때 생긴 게 극단 실험 극장, 민중 극장, 광장 등이다. 그게 한국 연극의 전기라고도 할 수가 있지. 그렇게 7~8개 극단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독자적인 색을 내면서 연극의 바람을 불어왔다고 할 수가 있지. 거기서 좋은 인재들이 많이 탄생했어요. 그런데 그 때는 ‘딴따라’고들 했지. 경제적으로 수입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예전 배우를 더 천하게 여겼던 이유는 생활의 절제가 없었기 때문이었어. 옛날에는 지금처럼 TV에 나오고 이런 게 아니라 악극단이 유랑을 했다고. 최민수 외할머니인 전옥 여사가 꾸렸던 백조가극단이 아마 유랑단의 마지막이었을 거야. 그 분은 참 카미스마 있는 여걸이었지. (웃음) 어찌됐든 예전에는 유랑단은 천한 사람들이라고 여겨 공연을 잘 보러 오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한 거야.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혈기왕성할 때가 아니겠어? 생활의 절제가 없었다고. 그러니 시간이 흘러서 ‘내가 당신 아들이다’며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고.(웃음) 그래서 사람들이 ‘저런 딴따라 같은 것들’이라고 불렀다고. 하지만 이후에 대학교 출신의 배우들이 진입하면서 그런 일은 많이 줄었지. 옛날에는 그랬답니다. 하하.”
그는 “정치적인 면에서 본다면, 어떤 정권이든지 ‘블랙리스트’는 있었다. 노골적인 배타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게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마찬가지였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리스트를 작성한 건 문제점으로 꼽을 만 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순재는 너무 이념적으로만 몰고 가려는 문화계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작품은 경우에 따라 비판과 풍자를 전제로 한다. 그걸 봤을 때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해야 되며 마음으로 수용할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이념적인 면을 아직도 세련되지 않게 파고드는 작품도 있더라고. 어떤 연출을 보면 아직까지 1980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 예전에 내가 본 작품이 영국 홈 코미디인데 스크린에 이명박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오더라. 내가 그래서 ‘저게 뭐냐. 영국이면 처칠이나 대처가 나와야 하는 거 아냐?’라며 말한 적이 있어. 이게 취기가 남아있어서 그런 거다. 또 예전에 서울대 동문에서 연극을 하는데 이준 열사 이야기를 연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해를 모시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등장인물이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박정희 전 대통령 창씨개명)가 아닌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아니, 거기서 다카키 마사오가 왜 나와? 지금 일본 장군이 이준 열사를 모셔오는 거냐? 이게 무슨 취기야?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히지 말라’고 한 적이 있기도 했다. 이제 우리들도 그런 풍자를 할 때는 조금 세련되게 할 필요가 있지 않겠어? 지금 2017년이란 말이야.”
이순재는 “낡은 과거의 의식 연장선상에 있으면 안 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너희의 과제는 서로 좋은 방법을 논하며 잘 사는 것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게 원칙이다. 정권적 차원의 비판은 해야 한다. 하지만 국체를 훼손하는 행위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대한민국 가치관을 훼손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순재와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니 그가 가진 연기를 향한 진정성, 예술을 향한 동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연기는 어렵다”며 목표를 향해 전진하려면 먼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 이순재의 인생 모토는 바로 “평생 행위의 지속”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을 하면서 많은 역할을 했고,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것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단지 나는 이제 일을 하다가 죽고 싶어요. 그것을 순직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행복한 조건으로 죽는 게 아닌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 그게 다야.”
※이순재가 출연하는 연극 ‘사랑해요, 당신’은?
마음과 다르게 가족들에게 퉁명스러운 남편 ‘한상우’가 치매에 걸린 아내 ‘주윤애’를 돌보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 4월 4일부터 5월 28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공연문의 컬처마인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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