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쉐보레 신형 크루즈 시승기..출시 전 미국서 먼저 타보니

이제와 고백하자면 국내서 위장막을 쓴 차에 미리 앉아 본 적이 있었다. 차량 외관 전체에 검정과 흰색의 바둑판 무늬 위장 테잎이 씌워져 있었는데 무슨 차인지 몰랐을 뿐 아니라 차급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한 창피한 기억이다. 혹시 아베오 후속이냐고 물었더니 관계자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 재빨리 크루즈와 아베오 사이에 뭔가 하나가 더 나오는거냐고 했더니 “큰..일이네”라고, 들릴듯 말 듯한 신음소리 같은 걸 내기도 했다.

바보 같았던 질문을 굳이 변명하자면 크루즈라기엔 너무나 작아 보였다. 윈도우 그래픽이 둥글게 솟아 올랐고 뒤에서 보는 테일램프는 저렴해 보였다. 전면 디자인은 꽤 강인해 마음에 들었지만 요즘 쉐보레 차들이 경차부터 죄다 강한 얼굴을 갖고 있다보니 차별된 느낌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전 세대 크루즈는 아반떼와 같이 묶어서 부르기엔 미안한, 너무나 중형차에 가까운 준중형 차였다. 하지만 이제는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 차를 미국에서 시승해보기로 마음 먹은건 아쉬웠던 첫 인상에 대한 확인 차원이었다. 쉐보레는 대체 왜 신형 크루즈를 이렇게 만들었던걸까.

쉐보레 크루즈의 경쟁력은 그런게 아니다

디트로이트 메트로폴리탄 웨인카운티 공항. 캄캄한 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까지 이어진 짧은 브릿지 안에서도 사정없이 입김이 솟아났다. 영하 14도가 넘는 강추위라고 했다. 우리가 빌릴 렌터카 쉐보레 크루즈는 야외에서 눈을 맞은채 서 있었다. 은색의 신형 크루즈에 짐을 다 싣고, 눈을 치우고, 시동을 걸고서 몸을 좀 데우려다 대시보드에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종이 한장이 올려져 있는걸 발견했다. ‘이미 예약이 됐다’는 의미였다. 우리가 탈 수 있는 크루즈는 저쪽 멀리 있는 흰색차라고 했다. 미국서도 첫 만남은 그리 좋지 않았다.

“와 진짜 대단하다”

차를 출발 시키자마자 옆자리 기자와 함께 탄성 소리를 냈다. 출발 가속력이 대단할 뿐 아니라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차가 착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핸들의 느낌이 이상하리만치 좋고, 차체도 매우 가뿐하게 치고 나갔다. 며칠 전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닷새동안 현대차 엑센트를 탔던 때문인지 유별나게 우수해보였다.

파워 스티어링, 그러니까 운전대 움직임이 가볍게 느껴지도록 보탬을 주는 장치는 R-EPS(Rack Electric Power Steer)라고 하는 타입으로 만들어졌다. 현대차는 경차모닝 급부터 그랜저급까지 모터를 실내에 다는 저가형을 사용하지만 이 차는 엔진 아래에 있는 랙앤피니언 모듈에 모터를 달았다. 여기 모터를 달면 구조도 복잡해지고 비용도 꽤 증가하지만 핸들 느낌을 향상 시키기 위해선 이게 필수적이라고 여긴 셈이다.

과연 스티어링은 안정적으로 느껴졌고, 심지어 핸들에서 손을 떼고도 차는 기울어짐 없이 몇킬로건 쭉 직진했다. 이미 닳고 닳은 렌터카일텐데 얼라인먼트도 완벽했다. 타이어는 굿이어 어슈어런스라는 제품이 끼워져 있었는데, 중국산을 제외하면 아마 가장 저렴한 타이어인 듯 했다. 노면의 소음이 꽤 많이 올라오고 "토독토독"하는 잔충격도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타이어의 탓이 큰 걸로 느껴졌다. 국내서 적절한 타이어를 조합한다면 이보다 훨씬 억제 될걸로 보인다.

크기, 무게, 달리기 성능까지 모두 대폭 업그레이드

디자인이 날렵해진 탓에 첫 인상은 전보다 작아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이전에 비해 월등히 커졌다. 휠베이스는 신형 아반떼와 동일(2700mm)로 동일하고, 전장은 4666mm(아반떼 4570mm)로 훨씬 길다. 다만 전폭은 실제로도 좀 더 작다.

차체는 커졌지만 무게는 무려 170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준중형차에서 이 정도 감량은 기적에 가깝다. 대체 어디서 살을 뺀 걸까. 엔진을 1.4리터 터보로 다운사이징 한 효과도 있겠지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차체 구조 개발 기술이 향상된 점이 눈에 띈다.

드러난 뼈대를 보면 한 곳도 철판 그대로 사용한 부분이 없고, 아무리 작은 부분도 네모 세모 동그라미 형태 구멍을 뚫고 패턴까지 눌러 여러방향에서 오는 휨에 더욱 강하게 대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서스펜션에는 알루미늄합금으로 된 부품들이 여럿 눈에 띈다. 이게 준중형차의 하부가 맞나 싶은 정도다. 비용이 꽤 증가 했을텐데 이를 아끼지 않았다.

더 단단하고 더 가벼워졌으니 더 잘달리는건 당연하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2.0리터 쏘나타보다 훨씬 잘 나가는 느낌이 든다. 최대 출력은 153마력으로 아반떼(132마력)에 비해 월등하고 토크도 24.5kg-m(아반떼 16.4kg-m)로 훨씬 우수해서 가뿐하게 느껴진다. 핸들의 놀라운 안정감과 맞물려 빠르게 운전해도 부담이 적었다.

실내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준중형차 실내에서 고급감까지 기대하는건 넌센스지만 안정감 있는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측면에서는 조금 들뜬 느낌이 드는 실내다. 뒷좌석 공간은 정자세로 앉았을 때 머리공간이 딱 맞는 정도, 머리 측면은 낮아서 드나들때 조금 걸리는 느낌이 있는 정도다. 앞좌석은 머리공간이나 레그룸이나 모두 여유롭지만 조수석과의 거리가 좀 가깝게 느껴진다. 말리부와는 확실히 차별화 된다.

국내선 쉐보레 차들의 변속기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현지 주행에선 나쁘지 않고 변속충격이 억제 돼 훌륭한 정도였다. 하지만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국내서 이 부분을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차를 만들거면 이렇게 만들어야지!”

안좋았던 첫인상은 어디로 간건지 며칠간 주행 후 호감도가 크게 늘었다. 복잡한 미국 도로에서 차를 보면 어지간한 차들은 외관이 두드러지지 않고 묻혀 보인다. 중요한건 겉모양이 아니고 그 내용물이라는걸 여실히 깨닫게 한다.

반면 국내에서의 자동차는 보여지기에도 충실해야 한다. 후미 디자인이나 실내의 세세한 부분이 좀 아쉬운데, 한국GM이 목소리를 키우고 노력을 기울이면 점차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된다.

김한용기자 hy.kim@motorgraph.com <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그래프(http://www.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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