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인펠드(Seinfeld).'
1989년에서 1998년까지 미국 NBC 방송에서 방영된 미국의 대표 시트콤이다.
이 이야기는 뉴욕 맨하탄 어퍼웨스트(Upper West)의 아파트에 사는 사인펠드와 그의 친한 친구, 건너편 이웃, 전 여자친구의 일상 생활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들을 다룬 코미디다. 지금까지 그 인기를 능가하는 시트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 시트콤을 제작한 사람 중의 하나이자 주인공인 제리 사인펠드(Jerry Seinfeld)는 오랜 공백 끝에 2012년 ‘커피를 마시러 차를 타고 가는 가는 코미디언 (Comedians in Cars Getting Coffee)’라는 웹 시리즈 토크쇼를 제작하고 직접 호스트로 출연해 인기를 누린 인물이다.
이 토크쇼에서 특이한 점은 사인펠드가 쇼마다 다른 빈티지 차(vintage car. 구식 고급차)를 선택해 게스트 코미디언을 태우고 직접 운전해 카페를 찾아가 커피를 마시는 6분에서 최장 23분 동안 이뤄지는 대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운전 중 차에 갑자기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게스트가 원하는 거리나 골목으로 이동하며, 많은 차들로 움직일 수 없는 거리에서 유명인사들을 만나기도 하는 등 사인펠드는 우발 사태를 자연스럽게 대처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 등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을 증폭시켰다는 점이다.
더욱이 대본이 없이 이뤄지는 대화는 게스트에 대한 친밀감도 느끼게 해준다. 차에 대한 관심이 많은 시청자들이라면 평소 쉽게 보지 못하는 빈티지 차량의 내부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운행까지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챙길 수 있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은 사인펠드가 모는 빈티지차들이 누구 것인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 사인펠드가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제작자이면서도 빈티지차 수집가로 알려져 있어 토크쇼에 등장하는 차가 그의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 쉽다.
그가 소장한 차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것은 근래 빈티지차 경매에 나온 그의 소유였던 차들 중 한대 가격이 10억이 넘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가 빈티지차 중에서도 희귀한 차만을 수집하며, 쇼가 여러 종류의 빈티지차를 운전하며 토크쇼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기 십상이다. 물론 실제로 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차는 그의 것이 아니다.
사인펠드가 토크쇼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코미디언들이 차를 타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 내용이 전부라는 것을 시청자들이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빈티지 차를 보여주려고 한 것인가. 답은 아니다.

사인펠드는 진부하게 느껴지는 일상생활에서 이뤄지는 사소한 일.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과 대화에 시청자들이 집중하도록 하고 그것을 위한 도구로 자동차를 선택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사인펠드의 천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차 안에서 있을 때는 자동차의 움직임, 그것이 주는 강력한 에너지 때문에 정신이 깨어나고 깊은 사색을 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니 시청자들은 대화의 내용이 아닌 계속 움직이고 있는 차, 그리고 차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호스트와 게스트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동차는 우리의 정신을 살려 사색과 성찰을 자극하고 현실과 대화의 진부함조차 꿰뚫어보도록 하는 최상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 토크쇼는 사인펠드가 단순한 실험적 호기심에 의해 시작한 것이고, 전문가들도 성공율이 낮다고 지적했으며, 유명 커피 회사가 후원을 거절했지만 1억뷰를 이상을 기록하는 상승세를 보이면서 9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이는 정신을 깨어나게 하는 자동차의 힘이 아니고 무엇일까?
/글 김욱기 한화그룹 사장, 사진=소더비(Sotheb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