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지성·엄기준을 마음 놓고 믿고 보려면 [첫방기획]

연휘선 기자 2017. 1. 2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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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지성(왼쪽) 엄기준(오른쪽) 2인 포스터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믿고 보는 배우 지성과 엄기준을 모은 '피고인'에 지금 필요한 건 뭘까. 스피드가 아닌 이야기다. 그 것도 지성과 엄기준의 연기에 필적할 믿고 볼 만큼 정교한 구성력.

SBS 새 월화드라마 '피고인'(극본 최수진·연출 조영광)이 23일 밤 첫 방송됐다. '피고인'은 딸과 아내를 죽인 누명을 쓴 검사 박정우(지성)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악인 차민호(엄기준)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이에 '피고인' 첫 방송에서는 정의로운 검사 박정우가 희대의 악인 차민호를 쫓게 된 과거사가 펼쳐졌다.

캐릭터들이 첫 등장하는 순간인 만큼 드라마는 박정우와 차민호가 어떤 인물들인지 설명하는 데 공들였다. 박정우는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로펌의 영입 제안을 고민도 안 하고 뿌리칠 만큼 검사가 천직이었고 바쁜 와중에도 아내와 딸을 사랑해 마지 않는 가장이었다. 반면 차민호는 마치 분노 조절 장애에 연민을 모르는 싸이코 패스인 양 자신을 무시한 여성은 물론 쌍둥이 형 차선호(엄기준)도 죽였다. 심지어 형으로 위장해 정체를 숨기는 걸 합리화할 만큼 죄의식이 결여된 악인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빛난 것은 각각의 캐릭터를 연기한 지성과 엄기준이었다. 두 배우는 세상 정의로운 검사 박정우와 소름 끼치는 악인 차민호를 찰떡 같이 소화했다.

먼저 지성은 현재와 과거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줬다. 현재의 박정우는 사랑하는 딸의 생일에 가족들과 함께 잠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감옥에 수감된 채 4개월 여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이런 박정우를 연기하는 지성은 누구보다 처절했다. 그는 정말로 기억을 잃은 것처럼 의문과 경계심으로 가득 찬 눈동자로 시청자 역시 혼란에 빠트렸다. 당당하게 교도소장에게 전화를 받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라는 기계음을 듣는 순간에는 한쪽 귀가 힘을 잃고 풀렸다. 이어지는 독방 속 오열과 절규 또한 처절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가 하면 엄기준은 차선호와 차민호 1인 2역을 맡아 선과 악의 극명한 대비를 소화했다. 똑같이 생긴 쌍둥이 형제이지만 차선호는 모두의 기대와 선망 속에 정의롭고 착하게 자랐고 차민호는 형과 비교 받으며 뿌리 깊은 열등감으로 악해졌다. 차선호를 연기할 때 엄기준은 젠틀한 분위기에 당당함을 유지했다. 반면 차민호인 엄기준은 미치광이처럼 광기에 휩싸였다. 특히 차선호가 의식을 잃고 자신 대신 죽는 모습을 지켜보던 차민호의 엔딩은 오열과 비웃음 사이 오묘한 통곡과 표정으로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이렇듯 '피고인'의 첫 방송은 지성과 엄기준의 연기만 보는 데에도 1시간을 1분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출중한 연기력을 가진 두 배우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계속해서 연기할 대본마저 믿고 볼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었다.

'피고인'처럼 선과 악의 극명한 대비를 그리는 드라마의 기본적인 구조는 단순하다. 악한 자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선한 자가 위기를 극복하고 권선징악의 이상을 실현한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가 매력적이려면 그 무엇보다 정교해야 한다. 그런데 '피고인'은 오직 지성과 엄기준의 연기에만 기대 캐릭터를 설명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엄기준이 연기한 차민호의 경우 선천적으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싸이코 패스인 것인지, 극심한 열등감에 잠식 당해 형을 이기기 위해선 살인쯤은 괜찮다는 것인지 기준점이 모호했다. 모호함은 차민호의 복잡한 성격과 그를 둘러싼 살인 사건의 혼란을 가중시켰으나 엄기준의 소름 돋는 광기가 부족한 설명을 간신히 포장했다.

여기에 지문 조회 한 번이면 들통날 차민호의 차선호 위장이 가려지며 치밀한 악행에 기반한 스릴러의 기대감을 허무하게 날렸다. 또한 악인 차민호가 득세하는 과정을 통해 권선징악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의 기시감을 드라마에서도 느끼게 해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했다.

첫 방송 말미 등장한 '피고인' 2회 예고편에서는 차민호와 차선호의 지문 대조, 박정우가 차민호와 직접적으로 얽히며 살인자로 몰리는 이야기 등이 전개되는 듯 했다. 그러나 첫 방송에 조밀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이야기가 두 번으로 쪼개진 인상을 남겨 아쉬움을 더했다. 납득할 수 없는 캐릭터의 악행, 현실적으로 필요한 수사 과정이 불필요하게 나뉘며 분량도 늘어나고 전개는 느려지는 상황. 첫 방송에서 지성과 엄기준에 대한 찬사는 이어졌으나 고구마 전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이유다.

'피고인'은 박정우의 위기 극복과 차민호의 몰락을 통해 권선징악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무엇보다 '희망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가치를 전할 드라마다. 다소 교과서적인 공식일 수 있는 이야기인 데다가 처자식을 죽인 검사의 누명 극복이라는 무거운 사건을 기반으로 하기에 웃음기 하나 없는 묵직한 긴장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이 묵직한 긴장감이 시청자에게 지나친 중압감으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면 서사 구성이 어느 때보다 촘촘해야 하고, 정교한 전개를 바탕으로 속도감을 높여야 한다. 치밀하지 못한 스릴러의 희망 타령은 희망 고문일 뿐이다.

소름 돋는 연기자 지성과 엄기준은 첫 방송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제 '피고인'의 최수진, 최창환 작가와 조영광 감독이 얼마나 정교하게 판을 짜는지 만 남았다. 역대급 연기자들에게 걸맞을 수준 높은 한 판이 반드시 필요하다.

[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SBS 제공 및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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