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혼자를 기르는 법>-혼자의 이야기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서
가끔은 ‘문학적’인 기질이 발휘되어 어떤 만화 작품이 소설에 가깝다고, 시에 가깝다고, 혹은 수필에 가깝다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김정연의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은 그 모두였다.
태초의 무한이 튕긴 코딱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만화가 있다. 태초의 코딱지를 확대하면 보이는 병균(우주)의 병균(태양계)의 병균(지구), 그것마저 확대하면 보이는 태초의 코딱지의 병균의 병균의 병균이 바로 이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 이시다이시다. 이처럼 스스로를 병균에 대한 만화로 규정하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그 병균의 활약을 보는 ‘나’라는 병균을 간단하게라도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자 만화평론가다. 나름 박사과정이니 문학에 대해서는 준전문가급은 된다 할 테고, 만화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글을 쓰니 만화에 대해서도 전문가라 자부하지 않을 수 없는 병균인 셈이다. 문학을 바탕으로 하여 만화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이 병균은, 그래서 만화를 보는 시각이 꽤나 ‘문학적’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문학적’이다. 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부지기수의 설명이 존재하지만 널리 통용되는 것은 시, 소설, 수필 등의 하위 장르를 아우르는 예술분야의 이름이라는 용법일 터다. 그렇다면 만화는 어떤 하위 장르로 구성되는 예술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나라는 병균의 ‘문학적’ 면모다.
물론 어느 분야에 다른 분야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적용한다는 건 될 일이 아니므로 억지를 부리지는 않는다. 만화의 세계와 문학의 세계는 다른 작동원리로 돌아가는 세계란 걸, 두 분야에 한 발씩 걸친 혼종 병균인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문학적’인 기질이 발휘되어 어떤 만화 작품이 소설에 가깝다고, 시에 가깝다고, 혹은 수필에 가깝다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김정연의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이하 <혼기법>)은 그 모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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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연 작가의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의 한 장면. / 다음웹툰 |
스스로를 병균에 대한 만화로 규정하는 작품
우선 ‘윈도우 비스타’라는 제목의 시 한 편. “창문이란 한폭의 밖을 담은 그림과도 같습니다. / 물을 그린 창… / 나무를 그린 창… / 그리고… / 옆 건물을 그린 창…” 활자만으로도 지하철 역사에 붙은 시편들보다는 훅 와닿는 이 시-만화는 옆 건물이 화폭에 담긴 창을 보며 육두문자를 내뱉는 이시다를 그려 눈물 핑 도는 감동을 안겨준다. 이뿐 아니다. 시의 언어는 얼핏 관련 없어 보이는 두 대상 사이를 연결해 의미를 자아내는 데 능한데, 이시다 역시 그렇다. 햄스터 쥐윤발의 삶을 자신의 삶과 견주고, 화장을 프라모델 도색작업에 은유하며, 임대해 사는 집에 애정을 주는 일을 일회용 식기를 설거지하는 일에 빗대는 식이다. 그렇게 이 세계에서 동물이자 사물로 취급받는 이시다가 잠깐밖에 머물 수 없기에 개선도 불가능한 삶의 공간이 새로이 조망된다.
수필적이고 소설적인 면모도 빛난다. 지금껏 일상툰 혹은 생활툰이라고 명명되던 장르의 작품들은 소설적 허구를 가미한 수필의 형식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만큼 주인공은 작가의 페르소나로 손쉽게 이해되곤 했다. 하지만 <혼기법>은 수필의 발화 방식을 빌려 써나가면서도 그 발화자를 작가의 페르소나가 아닌 소설적인 허구의 인물로 배치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처음 이시다로 시작한 1인칭으로 발화하는 인물이 옆집 해수로, 시다의 동생 시리로 늘어나면서 수필로서의 면모와 소설로서의 면모도 더불어 짙어진다. 삶의 사실들을 자신의 이야기로 길어내는 것이 수필이라면, 삶의 사실을 허구의 서사와 인물에 옮겨 삶의 진실을 풀어내는 것이 소설이다. <혼기법>은 영리하게 두 형식의 효과를 모두 끌어낸다.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핍진하면서도, 수필과 소설이 담아내야 할 것으로 믿어지는 사실성과 개연성의 족쇄를 벗는다. ‘사실’만을 담을 필요도, ‘말이 되는’ 전개를 만들 필요도 없으므로 역설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 충분한 사실성과 개연성을 부담 없이 성취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혼기법>은 만화여서, 문학은 할 수 없으나 만화는 할 수 있는 표현으로 문학을 초과해 버린다. 물론 그 요체는 그림이다. 단순하게 그린 듯 보이지만 <혼기법>의 모든 칸은 잘 짜인 연출의 결과물이다. 시선의 앵글, 공간 속 인물 배치, 앞 칸과 다음 칸의 몽타주가 입체적이고 다채롭다. 특히 위에서 인물을 내려다보는 시점숏의 비율이 높은데, 이는 마치 시다가 햄스터 윤발을 바라보는 시점 같다. 독자가 시다를 내려다보는 시선과 시다가 윤발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중첩되면서, 독자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만화 칸 밖에서 상상될 수 있다. 시다를 보듯 자신을 위에서 조망하는 시선을 독자가 습득하는 것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이라는 제목부터가 스스로를 목적어의 자리에 두고 대상으로 취급하는 방식이듯 ‘나’이면서 ‘그녀’로 보이는 대상이 만화적으로 창조된다. 역설적으로 ‘나’를 ‘그녀’로 겹쳐 보는 ‘나’라는 주체 역시 창조된다. 이 주체는 애착과 연민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사육장 속 윤발이도 만화 칸 속의 시다도 대한민국이라는 병균 속의 나라는 병균도, 모두 더 잘 살게 해주지 못해 미안한 대상이라는 점을 주체는 절실히 느낀다. 하지만 작품은 그 미안함의 원인으로 ‘나’를 탓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 삶의 조건으로서의 대한민국을, 서울을, 그 사회를 지속적으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문학은 할 수 없으나 만화는 할 수 있는
<혼기법>이 본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을 16화 ‘딸의 온도’를 통해 짚자. 앞선 편은 “그렇게 자정을 넘긴 딸들만이 서울을 알아갑니다”라는 말로 끝났다. ‘그렇게’에는 ‘밤늦게 여자 혼자 다닐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직접 겪을 뻔하고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늦은 밤 남자가 여자에게 저지를 수 있는 폭력을 겪을 뻔하고’라 쓰는 게 더 정확하다.) 이은 ‘딸의 온도’는 총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알의 신’과 ‘보일러’ 편이 온도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알의 신’은 온도 의존성 성 결정성 도마뱀 이야기로, 레오파드 게코는 알이 부화되는 온도에 따라 새끼의 성별이 결정된다. 따라서 암컷을 원하면 부화기의 온도를 26℃로, 수컷을 원하면 32℃로 맞추면 된다. ‘보일러’ 편은 우선 “당신이 태어났을 땐 당신만 울었고 당신 주위 모든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습니다”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이 거짓임을 가뿐히 짚고 더 나아간다. 시다가 아는 언니에게 들은 얘기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할머니가 또 딸인 게 서운하다고 엉엉 우셨대.” 이 말을 받아 시다가 말한다. “우리가 레오파드 게코였다면… 그 언니네 할머닌 아마 보일러 온도를 32도로 올려버렸을 거예요. / 그리고 미소지으셨겠죠. / 그건 고작 6도의 차이인데 말이에요.” 모든 태어남에 미소를 짓지는 않는 사회, 할 수만 있다면 딸을 지워버릴 수도 있는 사회, 그것이 <혼기법>이 묘파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다. 물론 이건 똥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렇게 <혼기법>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실컷 보며, 만화평론가로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혼기법>을 가장 주목하는 이들은 20·30대 여성일 터이지만, 연령대도 성별도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이 작품이 고발하는 사회를, 그 속에서 터져나오는 목소리를, 어떤 구실을 쓰든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내가 국문학 전공자랍시고 문학을 팔아먹은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문학이 만화보다 더 나은 예술양식인 것은 결코 아니나, 문학이 더 품격 있다고 여기는 조금은 경직된 세대에게도 이 만화를 읽히고 싶어서. ‘혼자를 기르는 법’을 ‘혼자’만 배우고 실천할 방법으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서. 그러니 읽고 내 마음 다독이기보다 나라는 병균의 감상을 전염시키고 싶었다. 시민사회가 성취한 ‘촛불 대선’ 즈음이니, 시민사회 내부에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하기에도 더없이 적절한 때가 아닐까.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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