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이다>박종팔 "90億 날리고 죽으려 오르던 불암산, 이젠 살기위해.."

박준우 기자 2017. 1. 5. 11:4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4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자택에서 만난 전 프로권투 챔피언 박종팔(59·사진) 씨는 강연을 다니며 느낀 감정을 이같이 표현했다.

사각의 링에서 포효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박 씨는 최근 ‘인생 3라운드’란 주제로 대학, 관공서, 기업체 등에서 강연하며 삶의 의미를 전파하는 인기 강사로 변신했다.

내조 덕분에 박 씨의 강연 기술은 일취월장했고 섭외도 이어졌다.

강연료를 물어보자 박 씨는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는 데 부족함 없이 받는다"고 껄껄 웃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60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가진 박종팔 씨가 4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자택에서 멋진 인생 3라운드를 자신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前 세계 프로권투 챔프 박종팔 씨, 인기강사로 ‘人生 3막’



“은퇴 뒤 실패 거듭 나락으로

강연 통해 삶의 의미 깨달아

집 근처에 힐링센터 세울 것”

“아직까지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죠. 그게 남아 있는 자산 같기도 하고요.”

4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자택에서 만난 전 프로권투 챔피언 박종팔(59·사진) 씨는 강연을 다니며 느낀 감정을 이같이 표현했다. 사각의 링에서 포효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박 씨는 최근 ‘인생 3라운드’란 주제로 대학, 관공서, 기업체 등에서 강연하며 삶의 의미를 전파하는 인기 강사로 변신했다. 잘나가던 복싱 선수가 1라운드였다면 사업가로 좌절했던 게 2라운드, 다시 시작하는 지금이 3라운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30대 젊은층은 저를 잘 모를 것 같은데 방송과 유튜브 등을 접하면서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2016 경남 고성공룡세계엑스포 홍보대사’로 위촉된 것도 당시 강연을 했던 게 인연이 됐죠.”

지난 1977년 프로복싱에 데뷔했던 박 씨는 1984년에 국제권투연맹(IBF), 1987년에 세계권투협회(WBA) 슈퍼미들급 챔피언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그의 대전료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 7채 값에 달하던 1억5000만 원이었고, 은퇴할 때 재산만 해도 90억 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후 단란주점, 스포츠센터 등 여러 사업이 모두 실패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폐암으로 아내를 잃었고, 가족들과도 멀어졌다. 새 동반자인 이정희(61) 씨를 만나 의욕적으로 식당과 체육관 등을 운영했지만 이마저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2012년에 ‘IBF 30년을 빛낸 복서’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강연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는 “링에 오를 때는 팬티만 입고 수천 명 앞에 서는데도 긴장하지 않았는데 강연 때는 100여 명 앞에서도 떨리더라”면서 “파워포인트 등의 장비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다른 강연자들을 볼 때마다 주눅 들곤 했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코치 겸 트레이너’로 나선 것은 부인 이 씨였다. 미리 강연 대본을 외우도록 했고 동작 하나하나까지 점검하며 복서 시절 못지않게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내조 덕분에 박 씨의 강연 기술은 일취월장했고 섭외도 이어졌다. 강연료를 물어보자 박 씨는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는 데 부족함 없이 받는다”고 껄껄 웃었다.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매일 집 근처 불암산을 오르며 체력을 유지한다. “어려울 때는 ‘어디서 떨어지면 고통 없이 죽을까’를 생각하며 남몰래 산에 올랐는데 요즘은 살기 위해 산을 탄다”고 했다. 새 삶을 살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단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박 씨는 “집 근처에 ‘힐링센터’를 만들 것”이라며 “한때 KO 같은 ‘한 방’만 노리다 다운이 됐지만, 마지막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아 ‘판정승’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남양주=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 문화닷컴 바로가기 | 소설 서유기 | 모바일 웹]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