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민-정근우, 베이징 올림픽 이후의 엇갈린 운명
[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만 하더라도 향후 국내 최고의 2루수 자리를 놓고 끊임없이 다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한화 정근우(35)가 여전한 활약 속에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태극마크를 단 반면 고영민(33)은 현역 유니폼을 벗고 지도자의 길을 택했다. 프로의 세계는 이처럼 냉정하기만 하다.
고영민은 9일 지난 15년 간의 선수생활을 접고 kt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두산과의 재계약이 무산된 이후 고영민은 본인을 필요로 하는 팀의 연락을 줄곧 기다리며 현역 연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끝내 어느 팀으로부터도 연락을 받지 못했고, 두산 시절 은사였던 kt 김진욱 감독의 코치직 제의에 오랜 고민을 거친 뒤 더 이상 선수에 미련을 두지 않고 새 야구 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영민은 15년 간 프로생활을 이어왔으나 1984년생으로서 엄밀히 노장 대열에 합류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이른 나이다. 현재 두산 주전 2루수인 오재원보다 단 한 살이 많을 뿐이다. 타 구단 핵심 2루수를 살펴봐도 정근우, 손주인(34)은 고영민보다 나이가 더 많으며, 박경수, 서동욱도 고교 시절 1년 후배들이었지만 실질적인 나이로는 동갑내기들이다. 이들은 고영민과 달리 뒤늦게 기량을 꽃피우며 2016년을 화려하게 빛냈다.
특히 정근우는 고영민과 한 때 최고의 2루수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쳤던 선수였다. 고영민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기회를 확실하게 잡았던 2006시즌(타율 0.270 2홈런 29타점 38득점 14도루)에 정근우(타율 0.284 8홈런 42타점 69득점 45도루)가 생애 첫 골든 글러브를 먼저 수상했지만 이듬해에는 고영민(타율 0.268 12홈런 66타점 89득점 36도루)이 정근우(타율 0.323 9홈런 44타점 62득점 24도루)를 밀어내고 역시 처음으로 황금장갑을 품에 안았다.
두 선수는 이같은 활약을 통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나란히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안긴 주역으로도 활약했다. 특히 고영민은 수비에서 큰 힘을 불어넣으며 ‘2익수’라는 애칭을 보다 확실히 굳혔고, 쿠바와의 결승에서는 9회 1사 만루 위기에서 상대의 타구를 병살타를 만들어내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해내면서 우승을 확정짓는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고영민은 베이징 올림픽이 선수 생활 마지막으로 겪은 영광의 순간이나 다름없었다. 병역 혜택까지 받으며 장차 대표팀의 미래를 이끌 2루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2009년 WBC 출전 이후 후유증이 찾아오면서 리그에서 출발이 좋지 못했고, 이후에도 발목 및 허리 부상 등이 찾아오면서 슬럼프는 점점 길어졌다.
2009시즌 고영민이 타율 2할3푼5리 6홈런 29타점 59득점에 그친 반면 정근우는 타율 3할5푼 9홈런 59타점 98득점 53도루를 기록하며 144경기 체제 이전 대부분의 항목에서 커리어 하이에 해당되는 성적을 남겼다. 두 선수의 운명이 완전하게 엇갈린 시기다.
이후로도 고영민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2010년에는 타율이 2할5리까지 추락한 가운데 오재원이 점차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내부 경쟁에서도 밀려나며 2011년부터는 출전 기회도 급격히 줄었다. 그 사이 정근우-고영민-조성환 3파전으로 흘러가던 최고의 2루수 경쟁은 2011년 안치홍, 2012년 서건창 등 새 골든글러브 주인공의 탄생과 함께 판도가 완전히 새롭게 뒤바뀌게 됐다.

이후 고영민을 둘러싼 트레이드 루머가 종종 흘러나왔지만 끝내 반등의 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2015시즌 이후에는 FA 미아를 간신히 벗어났으나 1년 뒤 고영민은 다시 한 번 냉혹한 현실에 부딪혔고 결국 현역 유니폼을 벗게 됐다. SK 말년에 하락세를 나타내던 정근우가 한화로 팀을 옮긴 뒤 장타력을 보강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린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KBO리그에는 일찌감치 잠재력을 터뜨렸지만 그 기세를 오래 이어가지 못한 채 30대 초반 여전히 젊은 나이에 유니폼을 벗은 선수들이 많았다. 한 때 동포지션에서 최고를 다퉜던 고영민 역시 오랜 침묵 속에 팬들의 기억에서 조용히 지워질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는 선수가 아닌 지도자의 길을 택한 만큼 모든 것을 새로운 마음가짐 속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고영민이 앞으로 걸어갈 야구 인생의 종착점은 여전히 저 먼 곳에 놓여 있다.
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yuksamo@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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