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33) 서점, 사라져가는 영혼의 주유소

임병걸 2017. 3. 7. 15: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점, 책들과 묵언의 대화로 행복한 공간

시간이 나면 골목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게 취미인 제게 서점은 제일 신나는 곳입니다. 새 책을 파는 서점이던 시에 묘사된 것 같은 중고 책방이던 벽마다 책이 빼곡하게 꽂혀있고 더러는 복도와 입구에 수북이 쌓여있는 책방은 우선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장석주 시인처럼 책을 밥처럼 먹고 물처럼 마시고 옷처럼 입고 이불처럼 덮는 독서광이 아니면서도 그냥 하루종일 이 책 저 책, 이 갈피 저 갈피 뒤적이고 싶습니다. 그렇게 골라 온 책 가운데 아직 절반도 읽지 못한 책이 책꽂이에 수두룩하지만, 주말만 되면 또 책과의 은밀한 데이트를 위해 만 원짜리 몇 장 호주머니에 넣고 책방을 두리번거립니다. 그런데 갈수록 서점 간판은 가물에 콩 나듯 하고 시인의 표현처럼 서점은 섬처럼 떠 있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지갑이 가벼운 시인들 역시 서점이나 도서관을 자신의 두 번째 집으로 삼는 사람들일 겁니다. 이광석 시인도 아마 저처럼 동네 한 바퀴 어슬렁거리다 단골 서점에 들러 이 책 저 책 집어 들고 온갖 세상의 보석을 캐내 더러는 품에 넣기도 하고 더러는 머리에 넣기도 했겠지요. 그러나 점점 낡은 여인숙처럼 서점은 화려한 도시에서 밀려나고, 서점과 비슷한 신세가 돼 가는 주인을 보게 됩니다. 제 나이도 잊은 채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과 임자를 구하지 못한 책들이 안쓰러워 책 제목을 호명해보는 주인을 번갈아 봅니다. 손님이 오지 않는다고 투덜대기에는 너무 엄혹한 현실을 아는 늙은 주인은 마치 참선에 든 수행자처럼 촛불 하나 켜고 책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눕니다. 시인의 눈에 책방 주인은 비록 돈을 벌지는 못해도 인류의 지혜가 차곡차곡 담겨 있는 책들과 평생 함께하니 행복하게 보였나 봅니다. 하긴 같이 늙어가는 사물 가운데 책만큼 든든한 도반(道伴)이 따로 있을까요?

곰곰 생각해보니 책방처럼 수행하기 좋은 곳은 없지 않나 합니다. 우선 책방에서는 다들 활자와 대화하느라고 입을 뻥긋하지 않으니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습니다. 책 속에 꽉 들어찬 지혜로운 인물들이나 문장들도 다만 자신을 드러내 보일 뿐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지 않으니 스스로 사유하고 성찰하기에 좋습니다. 또 책 속에는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과 슬픔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하니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도 큰 용기와 힘을 얻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로 언론인이신 김성우 선생님은 가끔 책방을 가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자신이 책을 얼마나 안 읽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자신이 책을 쳐다보는지 책이 자신을 쳐다보는지로 구별한다고 합니다.


서점, 무언가 삶의 흔적을 남기라고 영혼을 자극하는 곳

책방은 특히 시인들에게 다른 이들이 걸어간 흔적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자신도 흔적을 남겨보고 싶은 자극을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책을 뒤적이다가 쇠망치로 머리통을 내려치는 듯한 문장이나 시구를 읽다 보면 자신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되니까요. 막노동과 노점상, 부랑자와 지게꾼 등 온갖 험한 일을 하면서도 시를 써 온 김신용 시인에게도 책방은 살아가는 힘이 되는 장소입니다. 고단한 노동이 끝나면 쓴 소주 한 잔으로 피곤한 몸을 달랬던 시인은 술만으로는 달래지지 않는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책방을 들렀나 봅니다. 그는 책방에서 다시 배배 꼬인 삶을 한 올 한 올 문자로 풀어 시를 쓸 용기를 얻습니다.

정말 글을 쓰면 쓸수록 배가 고파지는 세상입니다. 잘 나가는 뮤지컬이나 대중들이 열광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대본을 쓰는 몇몇 작가를 뺀다면 요즘처럼 글 써서 먹고 사는 일이 힘겨워진 세상은 있었을까요? 막노동판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노동자 시인에게 그야말로 시를 쓰는 일은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치는 명품 핸드백을 사려다가 지갑을 도로 닫아 억제할 수 있는 그런 사치가 아닙니다. 막걸리를 마셔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봐도 방 한구석에 쌓아둔 시집을 다 꺼내 성냥불을 그어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영혼의 사치입니다. 일거리가 많아지고 일당이 좀 올라 호주머니가 좀 두둑해졌다고 없어질 사치도 아닙니다.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강렬한 존재증명의 욕구. 헤겔식으로 얘기하자면 '인정투쟁'의 욕구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지금은 일기도 쓰지 않고 편지도 쓰지 않고 그저 카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곳에 간단하게 몇 자 적거나 사진 몇 컷이나 이모티콘으로 세상 사람들과 접속하지만, 문득 삶을 좀 긴 호흡으로 풀어놓고 싶을 때, 좀 구구절절 기록해놓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바로 그런 충동이 일어나는 곳이 책방이고 서점입니다.


서점, 사라져 가는 지식의 곳간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식의 곳간, 영혼의 안식처인 책방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1907년 예수교서회가 세운 지금의 종로서적이 우리나라 최초로 종로에 문을 연 이후 서점은 지식에 목마른 한국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소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물밀듯 밀려오는 근대 과학 문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우물터 같은 곳이었고, 영상매체와 인터넷이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동네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책방이 없는 동네는 옹달샘이 없는 숲이라고도 했고,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이라고도 했습니다. 밥을 먹지 않은 육체가 힘을 쓸 수 없듯이 책을 읽지 않는 영혼은 녹슬어갈 수밖에 없으니 책방은 영혼의 주유소였습니다.

책방은 또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로도 그만이었습니다. 가진 돈도 없고 들어갈 음식점도 마땅치 않던 대학 시절. 책방은 친구나 연인을 만나려는 학생들의 단골장소였습니다. 이 책 저 책 마음껏 읽을 수 있으니 좋고, 기다리는 사람이 좀 늦게 와도 책을 실컷 읽었으니 그리 화낼 일도 없습니다. 어떤 때는 재미있는 책에 빠져 만나기로 한 사람이 아예 안 왔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으니까요. 우리에게는 '1984년'과 '동물농장' 같이 예지가 번득이는 소설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도 "책방이야말로 돈이 없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자전적 에세이에서 적고 있습니다.


1999년에 개봉됐던 멜로 영화 '노팅힐'을 기억하시나요? 런던의 뒷골목에서 여행책을 전문으로 파는 작은 책방을 꾸려가지만 아무런 재미도 비전도 없었던 청년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는 문을 열고 들어온 세계적인 여배우 안나 스콧(줄리아 로버츠)과 그야말로 소설같은 사랑에 빠집니다. 2004년 개봉된 영화 '비포 선셋'에서 유명한 소설가가 된 주인공(에단 호크)이 사랑하던 여인(줄리 델피)을 우연히 다시 만난 곳도 저 유명한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입니다. 그러니까 서점은 사랑을 찾아 헤매는 청춘남녀에게도 어느 장소 못지않은 로맨틱한 장소라는 말입니다.

출판 전문지 '출판문화'에 따르면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해 우리나라에는 52개의 서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 한 차례 서점계는 외판제도가 발달하면서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19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교육 열풍이 불어닥치고 교육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대형서점이 잇달아 들어섰습니다. 1980년대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대학가 앞의 서점은 민주화를 외치는 대학생들에게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해주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영상매체에 이어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책을 멀리하게 되고 책의 유통방식도 인터넷 주문으로 바뀌면서 서점은 급격히 쇠퇴하게 됩니다.


지난 1995년 5천4백 개였던 전국 서점은 2005년에는 2천백 개 정도로 줄었고 2015년에는 천5백50개까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20년 만에 서점 세 군데 중 두 군데가 문을 닫았다는 얘깁니다. 미용실과 음식점, 커피숍 등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과 비교한다면 지난 20년 동안 우리들의 가치중심이 정신에서 육체로 얼마나 많이 옮겨왔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서점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최초로 문을 연 종로서적의 폐점이었습니다. 2002년 너도나도 월드컵에 열광하던 그해 여름 1907년 문을 열었던 우리나라 최고의 서점이 95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종로서적을 밥 먹듯 드나들었던 제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2008년에는 76년 역사를 자랑하던 광주의 삼복서점도 간판을 내렸고, 2009년에는 52년 버텼던 대전의 대훈서적도 문을 닫았습니다. 올해 초에는 전국의 크고 작은 서점에 책을 공급해주던 업계 2위의 '송인 서적'이 부도를 내고 쓰러져 가뜩이나 영세한 서점들의 연쇄 부도가 우려되기도 합니다.

동네 책방이 문을 닫는 이유는 우선 사람들의 책 구매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발품을 팔아 동네 서점이나 대형서점을 돌아다니는 대신 인터넷 서점을 통해 주문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출판산업연합회의 집계를 보면 2015년의 경우 온라인을 통해 판매한 책은 1조 6천113억으로 전체 서적 문구류 판매액 5조 5천4백억 원의 20%를 넘었습니다. 온라인 판매 비중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업계는 예상합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이 갈수록 책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열면 온갖 정보와 지식이 난무하고, 영화와 드라마 만화와 게임 등 말초적 쾌락을 자극하는 오락물이 난무하니 굳이 책을 들춰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으니 책을 살 이유가 없고, 살 이유가 없으니 서점을 안 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책을 볼까요? 지난 2008년 성인 한 사람이 1년에 11.9권 그러니까 한 달에 한 권 정도 봤지만, 2015년에는 9.1권으로 줄었습니다. 통계청의 가계소비동향 조사로도 이런 추세는 뚜렷합니다. 2014년 가구당 월평균 서적 구입비는 만8천154원이었는데, 2015년에는 만6천623원으로 2천 원이 줄었습니다. 이런 추세는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2010년에 비해 5년 후인 2015년 우리나라의 가구당 소비지출은 12.1% 증가했고, 소비지출 가운데 문화오락비는 18.4%나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에 비해 2015년 가구당 서적 구입비는 되레 24.1%나 감소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외식을 즐기고 여행을 가는 데는 돈을 갈수록 많이 쓰고 있지만 책 사는 비용은 계속 줄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비교적 책을 많이 읽는 영국이나 프랑스 스웨덴 같은 유럽 나라들이 월평균 10권 안팎, 미국도 6.6권, 일본도 6권 정도 책을 읽는 데 비하면 우리나라는 정말 너무 책을 읽지 않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인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1년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을 정돕니다.

다시 부활하는 동네 서점들


그러나 이런 비관적인 세태를 뚫고 다시 부활하는 동네 서점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관광명소가 돼 버린 서울 서촌에는 '길담 서원'이라는 작은 책방이 9년째 문을 열고 있습니다. 그리 번화한 곳도 아니고, 서점을 먹여 살린다는 참고서와 수험서, 주간지와 월간지, 그 흔한 처세와 힐링 관련 책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형 서점과 미디어가 선정하는 베스트 셀러와 무관하게 만만찮은 깊이와 내용을 담은 인문학과 사회과학, 예술 서적을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서점이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파는 책들의 성격 때문만은 아닙니다. 스무 평 남짓의 이 책방에서는 '서원'이라는 간판이 암시하듯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지식의 향연이 벌어지는 곳입니다. 철학자와 역사가 소설가와 시인, 미술가와 건축가가 정기적으로 강연을 하면 주부와 학생, 직장인들이 모여 강의를 듣고 밤새 토론을 이어갑니다. 책방 한 켠 작은 공간은 '화랑'으로 꾸며 비싼 대관료 때문에 전시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미술가들의 작품을 걸어주고 또 독자들과의 만남도 주선합니다.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로 헤밍웨이와 니체, 생텍쥐페리의 작품을 읽고, 때로는 벚꽃 향기 날리는 봄밤에 청아한 피아노와 첼로의 선율이 울려 퍼지기도 합니다. 입시를 위해 박제된 지식을 억지로 넣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좀 천천히 제대로 넣어주는 청소년 인문학 교실도 열립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지는 않지만,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의 마중물을 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문학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이 향기로운 책방을 저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서울 은평구 소방서 옆 지하에 있는 작은 헌책방도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직접 읽은 책만을 판매하는 이 책방에서도 각종 강연과 흥미로운 공연이 열립니다. 평소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지역 주민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책을 매개로 경험과 인식을 공유하는 지식의 장터가 되고 있습니다. 이 책방 주인 윤성근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돈이나 명예, 권력인가요? 아닙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과 함께 하는 인간적인 어울림입니다. 책방은 바로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공간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건 대형서점에서 할 수 없습니다. 동네 사람들하고 독서 토론하고, 청소년들하고 독서 퀴즈대회를 해 보는 겁니다. 책 하나를 사면 그것 가지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요."


임대료가 워낙 비싸 서점이 좀처럼 발붙일 수 없는 강남에서도 최근 광고회사 임원까지 지낸 최인아 씨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방을 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출판사나 미디어의 선정 기준과는 다르게 그녀가 알고 있는 사회 저명인사들에게 추천받은 책 천6백여권을 전시하고, 또 각종 강연이나 강좌,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과 대구, 광주와 대전 등 지역에서도 나름대로 특색을 지닌 서점들이 예전과는 다른 개념과 콘텐츠로 무장하고 서점에서 멀어져 간 사람들의 발길을 되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진열해 놓고 손님이 오기만을 우두커니 기다리던 수동적인 책방에서, 책은 물론 다양한 인문과 예술의 잔칫상을 차려놓고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오도록 하는 적극적인 책방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책보다 사람을, 이윤보다는 소통을 중시하려는 책방 주인들의 철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2002년 문을 닫았던 종로서적 근처에 대형 서점이 지난해 12월 23일 다시 문을 열어 침체했던 서점의 부활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가장 큰 서점인 교보문고도 오디오, 그림, 기념품, 음료, 음식 등 다양한 것들을 보고 즐기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서울과 전주의 일부 서점에서는 맥주를 마시며 책을 보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제가 잘 가는 경의선 숲길 공원 홍대 부근에는 열차 칸 모양으로 꾸민 책방 거리가 생겨 철길 따라 산책을 하다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시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런 다양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서점은 단순히 책의 부활뿐만이 아니라, 고립 파편화되는 현대 사회에 섬처럼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을 묶는 동아줄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독서와 토론 등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또 심화시켜 무너지는 사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복원하는 데도 큰 몫을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서점의 이런 사회적 기능에 주목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서점을 병원이나 학교 같은 지역 기반시설로 간주하고 공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인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빈사 상태의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지역 내 도서관에서 구입하는 책의 50%를 동네 서점에서 구입하도록 하는 조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인천의 경우 지난 2010년 400개였던 서점이 5년 만에 340개가 문을 닫아 겨우 60개가 남았습니다. 그나마도 참고서나 수험서를 파는 문구형 서점을 뺀다면 순수 서점은 30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다른 지역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지 않으면 자생적으로 다시 작은 서점이 부활하기란 꽤 힘들어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알라딘이나 예스24, 인터파크 등 대형 온라인 서점들도 다시 오프라인 서점을 잇달아 열고 있습니다. 책의 특성상 만져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책을 사고 싶어하는 구매자의 욕구를 감안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접목해 시너지를 내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막대한 재고량을 강점으로 동네서점이 문을 닫으면서 떠나갔던 오프라인 구매자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대형 온라인 서점들의 오프라인 진출은 책으로부터 멀어진 독자들을 다시 책으로 끌어들인다는 긍정적인 면과 그나마 연명하고 있는 영세 동네 서점들의 숨통을 죈다는 비판을 함께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책방이 지식의 곳간으로, 다양한 문화 학습장으로, 소통의 공동체로 거듭나려고 몸부림을 쳐도 결국 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인류의 지혜가 담긴 '책'을 친구처럼 애인처럼 때로는 자기 자신처럼 아끼고 들여다보는 습관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서점을 살리는 첫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갈수록 강력해지는 인터넷과 휴대폰 같은 사이버 세상은 인간의 손에서 책을 강탈해갑니다. 이제는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고 공항 대합실에 앉아 있어도 책을 든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동창회든 동아리 모임이든 비즈니즈 모임이든 책이 화제가 되는 모임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아니 책을 보는 것이 무슨 희귀한 동식물 수집하는 것처럼 기이한 취급을 받거나, 책을 읽는다는 말이 잘난 체한다는 말과 동의어가 돼 버릴 지경입니다.

책은 그런 게 아닙니다. 현학을 위한 장식품도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도 아닙니다. 책은 김현승 선생님의 시처럼 메마른 영혼에 푸근히 내리는 눈이고, 가난한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먼 내일의 언덕으로 양떼를 이끌고 가는 발 없는 선지자입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서울 청계천 책방골목이나 명맥을 근근이 유지해가는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 등이 다시 밀려드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장면을 그려봅니다.

이번 주말에는 다시 한 번 동네 한 바퀴 천천히 돌면서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서점이 있다면 듬뿍 책을 집어 신선한 공기도 한번 넣어주고, 풀죽은 주인 아저씨에게는 김현승 선생님의 시도 한번 들려주어야겠습니다. 힘 내시라고요.


[연관 기사] [임병걸의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시리즈

임병걸기자 (kbslimbk@hanmail.net)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