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호, 간절한 자에게는 '도깨비'가 나타난다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오지원 기자] 두 아이의 아빠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 회사의 경력직 채용 면접장 앞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적처럼 최종합격된 남자는 더욱 기적처럼 번듯한 집과 차를 선물 받았다. 이런 걸 왜 주냐고 물으니, 회사 사장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기 때문"이라고 이상한 대답을 했다. 드라마 '도깨비' 속 한 장면이다. 두 아이의 아빠를 연기한 배우 윤경호는 "내가 살아온 순간들과 겹치더라"고 말했다.
윤경호는 최근 종영한 케이블TV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극본 김은숙∙연출 이응복)에서 김신(공유)의 부하로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신의 충직한 부하는 전생에서는 김신의 명을 받아 직접 김신을 죽이고, 현생에서는 김신에게 큰 선물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인물이다.
특히 현생에서 김신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장면은 따뜻한 분위기와 묵직한 울림 덕분에 종영 후에도 회자됐다. 당시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다"던 대사를 하며 윤경호와 호흡을 맞췄던 배우 조우진은 해당 장면을 여러 인터뷰에서 언급하며 윤경호의 연기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윤경호는 "정말 감동이었다. 그렇게 직접 얘기를 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고 마음을 전했다.
해당 장면을 촬영하던 당시 윤경호는 분위기 설정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가벼운 버전과 묵직한 버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준비한 걸 모두 촬영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재미있게 하려고 해도 왈칵 눈물이 났다. 함께 대사를 주고 받은 조우진 형님도 제 리액션을 보고 가볍게 받기 어려웠다고 하더라"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10개월 된 딸이 있는 가장인 윤경호는 그 캐릭터의 상황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순간 깊게 이입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무명 생활을 오래 했고, 딸도 있는 내 상황과 드라마 속 장면이 겹치더라. 그 순간 '이게 진짜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윤경호는 2002년, 스물 셋 나이에 드라마 '야인시대'의 보조출연자로 처음 카메라 앞에 섰다. 이를 발판으로 주인공까지 올라서겠다는 포부가 있었던 그는 '왜 보조출연이라고 해서 시선을 피하고, 도망치듯 연기해야 되지?'라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는 "어느 날은 일본 순경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액션' 소리가 들리자마자 카메라에 잘 보이는 자리로 가서 애드리브로 대사를 했다. 그러자 감독님이 촬영을 멈추더니, '너 대사 있어?'라며 혼내시더라"고 열정 어렸던 20대 초반의 에피소드를 풀어놨다.
곧 윤경호는 보조출연자에서 주인공까지 올라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이뤄질 수 없는 희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빨리 데뷔를 하고 싶었던 그는 "장진 감독이 있는 영화사 필름있수다의 문을 무작정 두드렸다. 계속 거절당했지만 지겹게 찾아갔다. 겨우 영화 스태프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직장인 연극반, 기업 연극 등 연기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했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는데, 번번히 '설익은 상태에서 연기하지 마라'는 말이 돌아왔다"고 상처가 많았던 과거를 털어놨다.
연기자가 되는 일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아버지마저도 윤경호의 연기를 반대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네가 연기 잘한다고 하는데 네 착각인 것 같다"며 연기를 그만두고 기술을 배울 것을 종용했다. 윤경호는 "용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아버지는 본인이 일하시는 건설 현장에 나와서 일을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난 돈을 받으면 대학로로 향했다"고 이야기했다.
윤경호가 영화사 오디션, 극단, 단편영화 제작, 무대 제작 아르바이트 등 오로지 연기를 이어가는 데에만 몰두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를 성장시켰던 건 좋은 인연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대학로를 떠돌면서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하면 누군가의 추천으로 다른 작품에 들어갔고, 그 다음에 또 누군가의 추천으로 일을 이어나갔다"며 그간의 성장 이야기를 설명했다.
윤경호를 가장 많이 바꿔놨던 건 원로 연극배우 김성옥이었다. 교수와 제자로 대학에서 김성옥과 연을 맺은 윤경호는 졸업 후 그의 부름에 따라 목포시립극단으로 향했다고 했다. 연극 '만선'의 주인공이 된 윤경호는 "'만선' 초연의 주인공이었던 김성옥 선생님이 연출을 맡으셨었다. 판소리 사사 받듯이 매일 혼났고, 울면서 연습했다. 7개월을 그렇게 보냈지만 정작 공연은 2일밖에 올리질 못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공연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오니, 내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불어 윤경호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대학로 연극 무대를 떠돌던 때에 만난 배우 김민교를 또 하나의 중요한 인연으로 꼽았다. 윤경호는 과거 연극 '광수생각'으로 대학로에서 유명했던 김민교의 팬이었다. 윤경호는 "우연히 무대 작업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김민교 형을 알게 됐다. 그때 형이 연출한 연극 '발칙한 로맨스'에 서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김민교 덕분에 처음으로 상업 연극 무대에 선 윤경호는 배우 김수로와도 친분을 쌓게 됐다. 연극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던 김수로의 소개로 윤경호는 지난 2012년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에 출연하며 스크린으로 행보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인연이 인연의 꼬리를 물고 자신을 성장시킨 이야기를 풀어놓던 윤경호는 "김민교가 지금 있는 회사에도 날 데려온 것"이라며 자신을 지금 이 자리까지 끌어준 김민교에 대한 애정과 동경의 눈빛을 보여줬다.
최근 윤경호는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있었다. 특히 영화 '옥자'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윤경호 속에 감춰진 캐릭터를 알아봐 준 사람이다. 윤경호는 "봉준호 감독님이 내게 '억울한 사람이 잘 어울리는 연기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전까지는 내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잔혹함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내 캐릭터를 어떻게 개발해야 될지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연기에 대한 생각 하나만으로 고된 시간을 보내온 윤경호는 지난 2015년 드라마 '기억'을 시작으로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비치고 있다. 그 중 종영을 앞두고 있는 케이블TV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극본 마진원∙연출 김홍선)에서는 흉기난동범으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더불어 현재 tvN 새 드라마 '비밀의 숲' 촬영에 매진하고 있다.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연기자라는 끈을 놓지 않았던 윤경호. 좋은 인연이 쌓여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한 그는 "질리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10년 뒤 더욱 빛을 발하고 있을 자신의 미래를 그렸다. "사람들이 제 연기는 늘 진솔하고, 연민과 인간미가 느껴진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티브이데일리 오지원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조혜인 기자]
도깨비|보이스|윤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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