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맛보기 힘든 게임 '유로트럭'의 매력 뭐길래
유로트럭 (상) - 레이싱이 아닌 드라이빙 게임의 재미
[게임의 법칙-15]레이싱이 아닌 드라이빙 게임, '유로트럭 2'
자동차 게임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굉음으로 바람을 가르며 속도의 향연을 벌이는 레이싱 게임들을 떠올릴 것이다. '니드 포 스피드'나 '그란투리스모'와 같이 게이머들에게 유명한 시리즈도, '마리오카트'나 '카트라이더'처럼 캐주얼하고 대중적인 시리즈도 모두 자동차를 이용한 순위경쟁, 타임어택 등을 다루는 레이싱 장르다.
그러나 자동차를 다루는 모든 게임이 레이싱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가 중요한 주제이면서도 레이싱이 곁다리 정도로만 들어가는 '그랜드 테프트 오토(GTA)' 시리즈는 속도 경쟁보다는 자동차로 돌아보는 도시라는 시스템 자체를 주제로 삼는다. 그리고 비레이싱 부문의 자동차 게임 중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게임이 있는데 바로 '유로트럭 시뮬레이터 2'다.
거대한 트럭을 운전해 각종 화물을 화주로부터 넘겨받아 배송지로 실어나르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유로트럭 시뮬레이터 2'는 제목에 등장하는 차량의 종류에서 알 수 있듯이 스피드와는 여러 모로 거리가 먼 게임이다. t 단위의 화물을 싣고 가야 하는 게임 속 트럭으로는 레이싱의 묘미를 즐기기 어렵다. 핸들 조작은 무겁고, 가속은 느리며 딱히 속도 경쟁을 벌여야 할 상대도 없다.
그런데 레이싱 요소가 없다시피 함에도 불구하고 '유로트럭 2'는 상당한 재미를 보여줘 많은 팬층을 낳았다. 유럽 고속도로의 지루할 정도로 고요한 풍경만을 바라보며 운전하는 것이 무슨 재미일까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기분을 내기 위해 모니터 위에 염주를 걸어놓고 화물연대 조끼를 입고 운전용 장갑에다가 옆에는 커피땅콩까지 갖다놓은 채 '유로트럭 2'에 몰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단지 지루해보이는 화물 운송이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팬층을 이룰 정도로 인기를 모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조금 다른 상상을 해보자. 화물 운송이라는 물류산업의 한 부분이 게임화되어 인기를 끌었는데, 시대와 장소를 조금 옮겨 보는 것이다. 조선 중후반기쯤 보부상이 화물을 등에 지고 한양에서 부산까지 걸어가는 활동을 게임으로 옮긴다면 어떨까? 어렵지 않은 질문이므로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게임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화물 운송과 유통 자체가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대한 자동차에 타서 달리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운전의 재미는 게임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드라이빙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알려져 있다. 이 재미의 원천은 아마도 감각의 확장에서 기인할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신체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속도감은 일종의 스펙터클로 다가온다. 네모난 프레임 안에서 인간이 처음으로 경험했던 스펙터클은 기차의 창문을 통해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바깥 풍경이었고, 이 색다른 경험은 훗날 네모난 스크린의 영화로 전이된 바 있다. 자동차는 그에 비해 운전자의 의지가 방향과 속도에 반영되면서 좀 더 사용자를 중심에 두는 형태이고,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속도의 쾌감은 그 자체로 드라이빙이라는 취미 요소가 될 정도의 스펙터클을 안겼다.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드라이빙이라는 재미는 게임 속 가상현실로 넘어오면서 일종의 추상 작업을 통해 재미만을 보강하게 된다. 드라이빙을 위해 필요한 현실적 제약들-기름값, 정비시간, 자동차 구매와 운전 라이선스의 획득, 현실적인 시간 확보 등-을 게임 속에서는 가뿐하게 넘어설 수 있다. '유로트럭 2'에서도 장시간의 운전으로 인한 피로감이 표현되는데, 이는 실제로 플레이어에게 수면을 취하는 형태가 아니라 게임 속 휴게소에서 '휴식'을 클릭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드라이빙의 재미를 즐기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과감하게 삭제된 것이다.
'유로트럭 2'는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한 드라이빙의 재미만을 구현한 것에 덧붙여, 쉽사리 접할 수 없는 경험인 트럭 운전이라는 대상을 소재로 삼으면서 일종의 '로망'을 경험할 수 있는 재미를 만들어 낸다. 소형 자동차만으로도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데, t 단위를 움직이는 거대한 트럭은 그 높이와 무게만으로도 이미 사람을 압도하는 포스를 풍긴다. 그러나 면허마저도 일반 면허와는 구별될 정도로 대형트럭 운전은 쉽게 접근할 수 없기에 게임을 통해서나마 접해보고 싶은 주제가 된다. '유로트럭 2'는 접근하기 어려운 드라이빙의 묘미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이것이 트럭 운전이다!"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재미의 영역을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보다 쉽고 편하게 트럭 운전의 스펙터클을 즐기기 위해 삭제된 현실의 불편했던 요소들은 다른 입장에서는 게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다음 편에서는 재미를 위해 배제되는 현실의 가치들로 인해 게임이 놓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살펴본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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