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라이온즈의 황금기, 그 1루에는 그가 서있었다. 약간은 부정적인 수식어가 뒤따르던 시기도 있었으나 팀이 주목한 자신의 재능을 끝내 폭발시켰고, 팀과 자신의 전성기를 함께 보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영원하진 못했다.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노력했던 과정. 새 둥지에 적응하는 과정. 유쾌함 뒤에 숨겨져 있던 채태인의 야구인생에 귀를 기울여보자.
Photograper 황미노 Editor 권형석 Location Arizona Surprise Stadium

어느덧 베테랑. 특별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새 시즌
“올해는 비시즌이 특별했어요. 11년간 프로 신분으로 야구를 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운동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딱 한 번 있을 FA(Free Agent, 자유 계약 제도)를 맞으니까요. 아프지 않기 위해서 운동을 더 열심히 했어요. 잘 될 거라고 믿어요.”
기나긴 비시즌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트레이드로 새로운 유니폼을 입었고, 4년 만에 3할에 못 미치는 타율(0.286)을 기록하며 부진했던 채태인은 “트레이드 시기가 빨랐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삼성 라이온즈 2군 전지훈련지였던 괌에서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챘거든요. 어느 팀으로 언제 가는지도 모르니 불안한 마음이었죠. 머릿속이 복잡하니 준비도 잘 못했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그마저도 발휘를 잘 못했어요”라며 씁쓸한 표정으로 지난 시즌을 회상했다. 하지만 “올해는 팀 적응도, 준비도 잘 됐어요. 좋은 시즌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라며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사실 2016년의 부진은 예상외란 의견도 있었어요. 2013년 이후로 채태인이란 이름에 거는 기대치가 높아졌잖아요.
사실 그 전에는 구단에 야구를 그만두고 싶단 얘기까지 했었어요. 그만큼 부진했죠. 그리고 2013년을 시작하면서 이전 시즌에 비해 연봉이 많이 삭감됐고,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복잡했어요. 그런 저에게 감독님께서 “열심히 해봐라. 연봉 다시 많이 올려줄게” 하셨죠. 때마침 강기웅 코치님께서 “내가 가르치는 대로 친다면 너는 무조건 3할을 칠 수 있다. 믿어보겠느냐”고 하셨어요. 더 떨어질 성적도 없는데 당연히 믿었죠. (웃음) 타격 전에 다리를 들었던 걸 교정했고, 공을 좀 더 내 쪽에 두고 치는 타격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컨택이 좋아졌고, 그 바뀐 폼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이후 3년간 3할대 타율을 기록했고, 현재까지의 통산 타율도 3할에 근접(0.299)한데, 통산 타율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통산 3할…. 작년에 너무 못 쳐서 떨어진 게 아쉬워요. (웃음) 그런데 통산 타율에 대한 욕심보다는 1000안타와 100홈런을 꼭 달성하고 싶어요. 많이 남진 않았거든요. (2016년까지 채태인 통산 855안타, 88홈런) 잘하는 선수들에게는 우스울 수 있는 기록이지만 저한테는 정말 의미가 커요.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 채태인은 부산상업고등학교(이하 부산상고, 현 개성고등학교)에서 윤성환(삼성)과 함께 투수로서 활약했던 선수다. “성환이 형이 제 1년 선배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부산에서 야구 하는 선수들이 부산고등학교나 경남고등학교를 주로 선택했죠. 그런데 저는 아버지가 부산상고에서 야구 하셨기 때문에 그 뒤를 따르게 됐고요. 사실 투수로 아주 잘 던지진 않았는데 운 좋게도 팀이 이기면서 에이스 소리를 듣게 된 거예요. 컨트롤에 자신이 있었지만 빠른 공을 던지진 않았어요.”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좋은 투수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그의 행보가 증명했다. 부산상고를 졸업한 채태인은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을 맺었다. 채태인은 그때를 회상하며 “보스턴 딱 한 팀이 저를 원했어요. 사실 미국 진출을 희망했던 이유 중 하나가 부상 때문이에요. 중∙고등학생 때 많이 던지면서 어깨가 너무 아파서 의학이 더 발달한 미국에서 수술을 받고 재활 후에 도전할 수 있기를 원했거든요. 그런데 당시엔 메디컬 테스트가 활성화되지도 않았었고, 구단과 저도 제 상태에 대해 확실히 파악하지 못 한 상태로 바다를 건너야 했죠. 그러고는 수술 후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서 포기해야 했어요.” 미국 땅을 밟았던 젊은 채태인은 결국 꿈의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 한 채 귀국해야 했다. 이어서 그는 “어깨가 많이 아파서 투수에 대한 미련은 없었어요. 그런데 만약 타자 전향을 미국에서 생각했더라면, 미국에서 타자로 프로 무대를 밟았더라면”이라며 아쉬웠던 당시의 심정을 털어놨다.
한 차례 꿈을 접은 채 한국으로 돌아온 채태인의 야구 인생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당시 삼성 사장)과의 인연이 계기였다. “저에게는 은인이시죠. 야구를 하게 해주신. 제가 부산상고에 재학하던 시절에 선배님(김응용 회장 역시 부산상고 출신)은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 감독이셨는데, 부산상고 선수 다섯 명을 해태 훈련에 데려가셨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선수가 저였죠. 아마 그때부터 저를 좋아해주신 것 같아요.” 오래 된 은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큰 듯 채태인은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삼성 2군 훈련장이 있는 경산에서 테스트를 받아 볼 수 있게 한 것도 김 회장이었고, 해외파 특별지명을 통해 삼성이 그를 지명하게 한 배경에도 김 회장이 있었다.
야구선수들은 야구장 안에서 살아간다.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인연을 접하고, 그들과 함께 지내거나 경쟁한다. 김응용 당시 해태 감독의 눈에 들어온 선수 다섯 명 중 경쟁을 통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채태인, 김 감독은 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 했다.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가 되는 프로 무대에서 이런 인연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돋보인 재능, 기회를 마주한 ‘천재’
그렇게 삼성에 입단한 후에는 타자로 전향했고, 이후 그대로 정착했다. 꿈을 품고 바다를 건넜던 채태인은 한국 땅으로 돌아와 타석에서 야구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엄청 놀랐어요. 공이 너무 빨라서 ‘와아…’ 했죠. (웃음) 이걸 어떻게 치나 했는데 결국 답은 적응이었던 것 같아요. 시속 130km짜리 공에 적응하면 140km짜리 공을 볼 수 있고, 150km에 적응하고 변화구에 적응하고…. 하나둘씩 적응을 하다 보니 술술 잘 풀린 것 같아요. 사실 고교시절에도 특출하게 잘 쳤던 타자는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잘했던 타자가 아니란 말과는 달리 그라운드 안 그의 별명은 ‘채천재’였다. 다수의 코칭스태프가 그의 타격 재능에 주목했고, 많은 기회가 부여됐다. 하지만 채태인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부상 때문이었다.
데뷔 초반에 주목받았던 타격 재능만큼이나 잔부상이 많았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타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 무작정 훈련을 소화하려고 했던 게 발목을 잡은 것 같아요. 기초체력이 부족한건 물론이고 야수 경험이 있지도 않았으니까요.
부상으로 인해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아무래도 2013년이죠. 제가 그해 규정타석을 채우는 순간부터 거의 한 달을 리그 타격 1위에 이름을 올렸어요. 그런데, (웃음) 참 웃긴 게,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다이빙캐치를 하다가 다쳤어요. 회복해서 돌아온 이후에도 타격을 정말 잘했는데 ‘만약 다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런데 지금은 그 넥센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네요. (웃음)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꼽았지만 채태인에게 2013년은 특별한 해다. 삼성 구단이 주목한 자신의 타격 재능을 폭발시킨 것은 물론, 2012년 국내로 복귀한 ‘라이언 킹’ 이승엽과의 포지션 경쟁에 불을 지피며 팀이 강팀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 크게 기여했다. “아쉬운 순간이기도 한데, 가장 좋았던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공이 수박만 하게 보였거든요”라는 그의 말처럼 2013년의 채태인은 리그 최정상급 화력을 뽐낸 타자 중 한 명이었다.
2013시즌부터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2013년 한국시리즈예요. 1승 3패로 뒤지고 있던 시리즈에서 5차전을 이겼고, 6차전엔 삼성 타선이 전체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던 더스틴 니퍼트(두산 베어스) 선수가 등판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역전 투런 홈런을, (박)한이 형이 쓰리런 홈런을 치면서 이겼어요. 그대로 7차전도 이기면서 우승했잖아요. 확률이나 기록을 완전히 뒤집은 승부였죠.” 이어서 채태인은 본인의 2013년을 ‘채태인 이름 석 자를 알린 해’라고 평했다.
이후 채태인의 야구 인생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팀의 주전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고, 팀은 승승장구했다. 4년 연속 통합 우승의 쾌거를 이룩했으며, 그 5년째가 된 2015년 시즌에도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하지만 꿈과 같던 시간이 끝나기라도 한 듯 팀은 논란 속 연패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고, 채태인의 야구 인생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반환점, 새 옷을 입다.
채태인은 2016시즌을 앞두고 넥센 투수 김대우와 트레이드됐다. “스프링캠프 내내 분위기가 뒤숭숭했어요. 11월쯤부터 기사에 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보내려거든 빨리 보내달라‘는 생각뿐이었죠.” 트레이드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날은 2016년 3월 22일. 시범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낯선 새 소속팀의 분위기에 채태인은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기사가 뜨고 넥센으로 옮겨 온 이후에도 ‘뭐지?’하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적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죠. 감사하게도 나중에는 코치님들께서 너무 잘 해주셔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생활하다 보니 젊은 팀, 편안한 팀의 이미지가 무엇 때문인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부산 출신, 한동안 대구 남자였던 채태인이 갑자기 서울 연고의 구단으로 적을 옮기는 것은 단순히 야구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상생활에도 불편함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서울에서 혼자서 생활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솔직히 많이 힘들었죠. 혼자 살고 혼자 이동하다 보니 팀 동료들이 있어도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채태인 역시 여느 가장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함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FA를 앞두고 있는 입장에서 또다시 거처를 옮겨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선뜻 가족을 서울로 불러와 함께 살게 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2007년 입단. 프로 11년차를 맞이하게 됐어요. 팀 내 고참으로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저는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쌓였다고 해서 분위기 잡고 무게감 있는 역할을 자처하는 건 별로라고 생각해요. 같이 야구를 하는 건데 다 같이 즐거우면 되죠. 베테랑이란 이유로 무게를 잡으려고 하면 젊은 선수들이 불편하잖아요. 제 성격상 무섭게, 아니면 분위기 잡는 역할을 못하는데 그게 넥센 선수단의 젊은 분위기랑 잘 맞는 것도 같아요.
89년생인 서건창이 주장 역할을 맡고 있는데, 클럽하우스 리더로의 서건창은 어떤가요?
(서)건창이는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띄워주는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넥센보다 삼성에 오래 있었으니 이런 분위기를 아직 다 파악 못한 것도 있지만요. (웃음)
나이 차가 나는 어린 선수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함께 야구를 한다는 점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제 야구를 추구하고 싶어 해요. 젊은 선수들이랑 함께 한다고 해서 특별히 어려워지지는 않아요. 오히려 다함께 즐거우니 더 좋은 점도 있는 것 같고요.

말은 아닌 척 하지만 ‘넥센의 채태인’은 팀의 분위기에 빠르게 녹아내린 듯 보였다. 2016년 5월 7일 KIA전을 앞두고 더그아웃에 누워있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는데. “사람들마다 보는 눈이 다르니 오해를 하실 수 있는데, 빨리 시합을 하고 싶은데 팀에 합류한지 얼마 안 돼 더그아웃 안에 들어가 있자니 어색했어요. 같이 앉고 싶은데 그럴 자리는 없어서 혼자 따로 누워있었죠. 근데 그게 저만 누운 게 아니고 삼성 시절에 (박)석민이가 먼저 그랬어요. 저만 눕는 건 아니거든요. 너무 나쁘게 생각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약간은 다급해진 말투였다. 야구팬들에게 채태인은 보통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고 증명하는 듯 유쾌한 분위기였다.
혹시 ‘채럼버스‘라는 별명도 알고 있나요?
아…. 그 얘기는 2011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들었어요. (한숨) 1루에 주자로 나가있던 상황이었거든요. 타구를 보고 2루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베이스를 밟고 보니까 외야수가 타구를 잡았어요. 그래서 돌아가려는데 타자였던 (신)명철이 형이 가라고 하대요? 급한 마음에 그대로 뛰었죠. (웃음) 제가 잘못한 건 잘못한 거지만 이 별명을 제일 싫어해요.
6월 26일, 후배 임병욱 선수가 같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바로 들었던 생각이, ‘분명히 내 얘기가 나오겠구나’ 했죠. ‘내 후배 선수가 했으니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나 뉴스에 내 이름도 나오겠구나!’ 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임병욱 선수에게는 어떤 얘기를 해줬나요?) 제가 무슨 얘기를 해요. (웃음) 내가 쪽팔린 얘긴데.
그렇게 정신없었던 넥센에서의 한 시즌을 보냈고,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구단에 완전히 적응 되었느냐’는 질문에 “작년에는 어색한 게 많았는데, 지금은 돌아가는 시스템을 다 아니까 편해요. 100점 만점에 100점 적응했어요”라고 답했다.
뒤이어 그는 후배들과의 이야기도 꺼내놓았다. 특히, 그가 친하다고 밝힌 고종욱과 박동원에게는 유독 장난을 많이 친다고 하는데. “(고)종욱이가 재밌으니까. 제가 장난을 치면 잘 받아줘요. 나이 차이가 좀 있지만 그런 후배가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주지 못하면 오히려 제가 뻘쭘(?)하잖아요. 종욱이가 착하고 잘 받아주니까 좋아하는 거죠. 종욱이 외에는 고등학교 후배 (박)동원이랑 친해요. 8년 후배인가? 그럴 거예요. 종욱이나 동원이는 밥을 먹는다든지 하는 이유로도 종종 만나요.” 후배들과의 유쾌한 일담, 이를 통해 그의 팀 분위기 적응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선수들에게 정말 큰 의미를 가지는 FA를 앞두고 있어요. 시즌을 준비하는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다면요?
다들 FA를 ‘퐈’라고 부르잖아요? 저도 그 ‘퐈’ 대박이란 걸 터트려보고 싶어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큰돈을 벌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텐데, 물론 돈을 벌자고 야구를 하는 건 아니지만 프로야구선수는 직장인이나 다름없잖아요. ‘이번 한 번쯤은…’ 하는 생각이 있죠. 그래서 올해는 2013년이나 2015년 때처럼 잘 보고 잘 쳤으면 좋겠어요.
잘 해내리라 기대합니다. 좋은 결과 낳는 데 보탬이 될 팀 동료 선후배들에게도 한마디 해주세요.
음…. 제가 웃긴 사람, 재밌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화내면 무섭다고 말하고 싶어요. (채태인 웃음이 터져서 생략) 너희들 내가 한 번은, (웃음) 봐주는데, (웃음) 두 번은 안… (웃음) 봐줘?!
지금껏 야구를 하면서 가장 고마웠던 사람을 꼽아보자면 누구인가요?
아내요. 그런데 우선 지금의 가족을 만나게 해준, 그리고 가족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야구라고 하고 싶어요. 야구선수였기 때문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됐고, 아내 덕분에 야구를 놓지 않아서 결국 지금의 기회가 마련됐으니까요. 젊을 때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던 와중에도 백수나 다름없던 (웃음) 저를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좋아해준 사람이에요. 너무 힘들었을 텐데도 저를 지지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넥센 팬들에게도 한마디 해주세요.
솔직히 말해서 가끔 제 기사의 댓글을 찾아봐요. 작년 트레이드 당시에도 (김)대우가 저보다 많은 팬에게 사랑을 받았고, 더 솔직해지자면 대우가 아까운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도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적어도 야구장에서는 대우 생각이 나지 않도록 잘 하겠습니다. 많이 기대해주시고 응원 부탁드릴게요.

그동안 ‘인간 채태인’의 이야기는 잘 다뤄지지 않았다. 야구장에서의 부진에는 조명이 비춰지지만, 설령 그 원인이 그라운드 밖에서 겪는 고충이 이유라고 할지라도 그라운드 안에서는 핑계가 된다. 그래서 채태인이 풀어놓은 자신의 이야기는 더 값지다. 평소 다루지 않던 야구장 밖의 모습으로 팬들이 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까. 그 모든 이야기를 등에 업은 채로, 채태인은 선수 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FA를 앞두고 있다. 물론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라운드 안에서는 최고의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 것이 프로의 역할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팬들이 채태인의 첫 FA를 향한 여정(?)을 응원하는 근거’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7년 3월호(71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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