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쌍용 G4 렉스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한국은 바야흐로 SUV의 시대다. 소형부터 대형까지 모든 세그먼트의 SUV가 나날이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 팔리는 신차 10대 중 4대가 SUV다. 높은 지상고와 넓은 실내공간은 생애 첫 차를 보는 사회초년생부터 장년층 운전자까지 모든 이들에게 인기있는 비결이다.

이런 SUV 열풍이 반가운 건 역시 쌍용이다. 쌍용차는 체어맨을 제외한 전 라인업이 SUV와 RV다. 한때 회사가 풍파에 흔들렸지만 소형 SUV 티볼리의 대흥행으로 지난해 9년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여기에 안주할 수는 없다. 현대기아차가 티볼리의 라이벌이 될 코나와 스토닉 출시를 예고했고, 수익성이 뛰어난 중대형 라인업은 모델 체인지가 절실하다.

G4 렉스턴은 티볼리의 성공을 이어가기 위한 전략 모델이다. 수익성이 뛰어난 프리미엄 모델로 티볼리의 낮은 수익성을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야심은 당돌하지만 못내 걱정이 앞선다. 생존싸움이 끝나지 않은 쌍용에게 ‘프리미엄’이나 ‘럭셔리’같은 수식어는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우려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G4 렉스턴을 타 봤다. 고객 인도 물량이 달려 미디어 대상 시승도 한달여나 미뤘다는 게 쌍용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첫 달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2733대를 팔았고 아직도 대기물량이 5000대가 넘는다. 과연 G4 렉스턴은 오랜 기다림에 부응할 수 있을까?

G4 렉스턴은 특별하다. 근래에는 보기 드문 레이아웃이다. 바디 온 프레임 구조부터 그렇다. 최근에는 프레임 바디 신차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SUV 전문 브랜드인 랜드로버나 지프도 최신 모델은 대부분 모노코크 바디를 쓴다. 그런 와중에 전통적인 프레임 바디를 채택했으니 튈 수밖에. 프레임 바디를 쓰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보수적인 소비자들에게는 제법 긍정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올드한 구성이지만 공을 들였다. 초고장력강으로 프레임을 짜 무게는 줄고 강성은 높아졌다. 겉모습도 샌님같은 도심형 SUV 분위기보다는 선이 굵고 묵직한 전통적 SUV의 디자인 언어를 계승한다. 좌우로 벌어진 헤드라이트를 높히 배치해 웅장한 느낌을 주고, 근육질 어깨 선으로부터 따 온 크롬 라인이 헤드라이트와 라디에이터를 가로지른다.

옆에서 바라봤을 때 면분할 없이 넓은 면을 과감히 배치해 덩어리감을 높였다. 후면부에도 마찬가지로 테일램프를 상당히 높게 배치했고, 번호판 역시 제법 높은 자리에 위치했다. 실제로 전고가 1825mm에 달해 경쟁 모델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시각적인 무게 중심도 매우 높다. 실제 사이즈에 비해 차가 훨씬 커 보이는 인상을 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차가 껑충해 보여 시각적인 불안감도 느껴지는 건 단점이다.

외관 상도 그렇고 실제 전고도 높아 운전석에서 느껴지는 무게중심도 너무 높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자리에 앉아보면 제법 안정적인 게 반전이다. 너무 높지 않으면서 운전할 때는 넉넉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시트 포지션이 마음에 든다.

이번에 준비된 시승차는 최상위 트림인 헤리티지에 3D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시스템이 추가돼 가격은 4610만원이다. 꽤 비싼 가격이지만 그만큼의 값어치는 한다. 공들여 꾸민 가죽 시트는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 나파 가죽의 재질감도 좋고, 퀼팅 패턴의 만듦새도 나쁘지 않다. 시트 뒷편에 박힌 엠블럼 자수는 조금 뜬금없지만  용서할 수 있다.

센터페시아의 마감 품질은 기대 이상이다. 우드 트림이나 플라스틱 부품의 재질감이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우수하다. 특히 버튼이나 다이얼의 조작감은 역대 쌍용차 중 최고 수준. 사소하지만 소위 말하는 ‘감성 품질’에 영향을 많이 주는 부분이다.

AV 시스템에는 재미있는 기능이 많다. 라디오 주파수를 지역에 따라 자동으로 변경해 주거나 라디오 음원을 저장하는 기능등은 주 수요층인 중장년층 운전자들의 라디오 사용빈도가 높은 점을 노렸다. 3D 어라운드 뷰 기능은 흥미롭지만 시인성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실제 주차 시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짧은 시승에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을 확인하기는 빠듯했지만, 잠시 앉아본 2열 공간은 패밀리 카로서 충분한 수준이다. 2열 시트는 넓은 범위의 리클라이닝을 지원한다. 보다 심층적으로 시승할 기회가 왔을 때 2열 거주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예정이다.

G4 렉스턴을 시승하면서 가장 흥미를 가졌던 부분이 주행 성능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변화가 적은 부분이다. 이미 여러 모델에 사용 중인 2.2L 디젤 엔진에 메르세데스-벤츠제 7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성능 면에서 어떤 장점을 보여줄 수 있을 지, 플래그십 SUV에게 충분한 성능인 지 궁금했다.

2.2L 직렬4기통 디젤 엔진은 기존보다 성능을 조금 끌어올려 최고출력이 187마력, 최대토크가 42.8kg.m이다. 쌍용차는 최대토크가 1600~2600rpm의 실용 영역에서 발휘되는 점을 강조한다. 중저속 토크가 뛰어나 충분히 경쾌한 가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이 엔진의 고질적인 터보래그가 느껴진다. 1600rpm 이전까지는 다소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터빈이 제대로 회전하기 시작하면 제법 민첩하게 움직인다. 엔진의 회전질감은 매끄럽고, 기존에 비해 소음은 상당히 억제된 느낌이다. 특유의 카랑카랑한 엔진 사운드가 줄어들었다.

재미있는 건 변속기의 세팅이다. 부드러운 주행감각을 선호하는 타겟 고객의 취향을 반영한 탓인지, 7단 자동변속기는 변속충격을 최대한 줄이고 매우 부드럽게 변속하도록 설계됐다. 직결감은 떨어지지만 거의 CVT에 맞먹게 부드럽다. 보다 공격적인 업시프팅이나 다운시프팅이 아예 불가능한 점은 아쉽지만, 보수적인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겠다.

혹 힘에 부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몸집을 키우고 강성을 높였음에도 2000kg를 조금 넘는 수준에 억제된 중량 덕에 고속도로 주행까지도 답답한 느낌은 받을 수 없다. 순간적인 추월가속도 충분하다. 크고 고급스러운 차라고 반드시 배기량 큰 엔진을 실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왕이면 6기통’의 아쉬움은 남지만 4기통 엔진이 자격 미달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서스펜션은 충분히 롤링과 피칭을 허용하면서도 중고속 안정감을 포기하지 않았다. 도심 주행이든 비포장 주행이든 요철을 걸러내는 느낌이 제법이다. 문득 궁금해지는 건 하위 트림에 장착되는 리지드 액슬 리어 서스펜션의 승차감이다.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멀티링크 버전과 비교해 볼 생각이다.

기대가 큰 만큼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먼저 주행보조장치. 사각지대 경보와 차선이탈 경보, 전방추돌 경보와 능동형 긴급제동 등 여러 기능이 탑재됐지만 아무래도 준자율주행 기능인 차선유지보조(LKAS)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의 부재가 아쉽다. 현대차에서는 준중형급까지도 탑재되고 있는 기능이다. 이미 ACC는 체어맨에, LKAS는 티볼리에 탑재된 바 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상품성 개선을 통해 탑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차량 하부의 허술한 설계도 영 신경쓰인다. 짧은 비포장구간 체험 후 촬영을 위해 보닛을 열었을 때, 흙탕물이 엔진룸에 잔뜩 튀어 있었다. 엔진룸 하부에 오염을 막아줄 구조물이 아예 없다. 당장에야 고장나지 않겠지만 차를 오래 탄다면 부식이나 전자계통 고장을 유발할 수 있다. 언더커버 하나만 달려 있어도 막을 수 있는 문제다. 전통의 오프로더 강호라고 하기에 부끄러운 헛점이다. 개선이 시급하다.

그 밖에 시승 내내 풍절음이 크게 느껴진 것도 지적사항이다. 정숙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제품 소개가 무색하다. 노면소음과 엔진소음이 잘 억제돼 상대적으로 크게 들리는 걸까? 고속도로 주행이 많은 운전자라면 꽤 거슬릴 수 있겠다.

짧게 만나본 G4 렉스턴에는 쌍용차의 고민이 여실히 담겨 있다. 쌍용에게 G4 렉스턴은 사활을 건 차다. 위기를 벗어난 브랜드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다. 그만큼 제한된 여건 속에서 자신만의 장기를 살려 가성비와 상품성으로 틈새 시장을 노리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실제 초기 판매에서도 상위 트림 판매가 70%에 달해 수익성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흔히 기아 모하비가 경쟁상대로 지목되지만 실제 시장에서의 라이벌 스펙트럼은 그보다 넓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2.2 디젤이 얹힌 싼타페나 쏘렌토 수요층 중 보다 크고 넓은 차를 원하는 경우, 혹은 큰 차체 대비 작은 엔진의 포드 익스플로러 2.3을 고려하면서 수입차·가솔린의 유지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소비자도 G4 렉스턴의 잠재적 구매자가 될 수 있겠다.

한계도 분명하다. 다양한 엔진 라인업의 부재, 앞서 이야기한 몇 가지 사양 부족과 문제점들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결핍에 단념하지 않고 장기를 살려 자신만의 틈새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G4 렉스턴의 당돌함은 쌍용차의 개척 정신을 그대로 빼닮았다.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하니 유혹이나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의 소신대로 묵묵히 정진하라는 뜻이다. 모진 풍파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키워 나가는 쌍용차야말로 ‘무소의 뿔’이나 다름없다. 아직 성공을 단정짓기는 이르지만, G4 렉스턴만의 뚝심있는 방향성은 성공을 거머쥐기에 충분하다.


이재욱 에디터 jw.lee@globalms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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