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50] 세계 최고 더비매치: 5~1위
[포포투]
축구가 경기라면 더비매치는 대결이다. 대한민국이 볼리비아를 만나면 축구이고, 일본과 만나면 대결이다. 축구의 속살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교과서.
월드 No.1 풋볼매거진 <포포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매치 50건을 모아 정리했다. 50위부터 시작된 랭킹 질주는 이제 대망의 톱5에 다다랐다. 세계 최고의 더비 다섯 경기를 소개한다.
#5. 라치오 vs 로마 (이탈리아)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수도 더비). 리그 우승 향배에 영향을 끼치진 않아도 이탈리아 수도 로마 안에서 상대 팬을 놀려 먹기에는 딱 좋은 더비다. 라치오에서 뛰었던 파올로 디 카니오는 “로마와 라치오 팬들은 리그 최종 순위보다 더비 결과를 중시한다”라고 말했다.
양 팬들의 위트도 재미있다. 2000년 더비에서 로마 팬들은 자기 선수들에게 “위를 봐. 너희보다 큰 것은 하늘밖에 없어”라고 쓴 거대 티포를 선보였다. 이를 본 라치오 팬들은 다음 더비에서 거대한 티포에 “맞아. 파란색과 흰색이지”라고 써서 응답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로드리고 카초 교수(로마 팬)는 “로마-라치오 더비는 이탈리아 최고의 쇼”라고 말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모욕”이 적합한 표현일지 모른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현장에서 최초의 사망 사건이 1979년 이 더비에서 발생했다. 로마 팬들이 던진 홍염에 맞은 라치오 팬 빈첸초 파파렐리가 목숨을 잃었다. 2004년 더비에서는 경찰차에 치인 소년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프란체스코 토티가 경기 연기를 요청했고, 양쪽 팬들이 거칠게 맞붙어 150명 이상이 다쳤고, 13명이 체포되었다.
2013년 코파이탈리아 결승전을 앞두고는 양쪽이 뜻을 모은 적도 있었다. 식전 축하 무대로 싸이가 등장해 <강남스타일>을 불렀는데, 로마와 라치오 팬들이 합심해 노래가 흐르는 내내 그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이탈리아 통신원 탄크레디 팔메리는 “로마에만 로마-라치오를 다루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15개나 된다. 축구가 아니라 오로지 로마-라치오에 관한 주제만 다룬다”라고 말했다.
#4. 나시오날 vs 페냐롤 (우루과이)

클라시코 델 풋볼 우루과요(우루과이 더비). 더비의 구성요소에서 보면 가장 완벽한 더비라고 해도 좋다. 역사, 양 팀의 성취, 역사적 배경, 전설적 경기장, 엄청난 티포에 발랄한 장난까지 갖췄다. 새로운 더비를 설계하고 싶다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이 더비를 보면 된다.
페냐롤은 1891년 ‘센트럴 우루과이 철도 크리켓 클럽’으로 창단되었는데, 이후 홈그라운 소재지명으로 개칭했다. 그걸 물고 늘어져서 나시오날(1899년 창단)은 자기들이 가장 오랜 축구 클럽이라고 주장한다. 페냐롤은 외국인이 만든 클럽, 나시오날은 내국인 주도였다는 차이도 라이벌 의식의 한구석을 차지한다.
1900년 시작된 리그 역사에서 총 112시즌 중 둘이 92차례 타이틀을 차지했다. 페냐롤이 47회, 나시오날이 45회를 각각 기록 중이다. 코파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페냐롤이 5회, 나시오날이 3회 우승했다. 나시오날은 남미 최고(最古) 경기장인 ‘파르케 센트랄’(1900년 개장)에서 뛰고, 페냐롤은 1930년 월드컵 원년 대회 결승전 장소였던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를 홈구장으로 사용 중이다.
1933년 우루과이컵 결승전에서 벌어진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페냐롤의 크로스가 골대 뒤에 놓여있던 나시오날 주치의 의료 가방에 맞고 다시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고, 이어진 상황에서 득점이 나왔다. 골대에 맞은 것으로 착각한 주심이 득점을 인정하자 나시오날이 거칠게 항의하다가 두 명이 퇴장당했다. 여덟 명이 싸운 나시오날이 끈질기게 무승부를 만들어내 재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1990년 더비에서는 레드카드 한 장이 대형 패싸움을 초래해 선수 20명이 한꺼번에 퇴장당해 경기가 중단되었다. 2000년에도 양쪽 선수들이 주먹다짐을 해 9명이 한 달 동안 철창 안에 갇혀야 했다. 2014년에는 네 명이 퇴장 당했고, 경기 후 패싸움을 벌어져 선수 9명이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냈으며 17명이 축구협회의 징계를 받았다. 그 경기는 친선전이었다.
#3. 셀틱 vs 레인저스 (스코틀랜드)

올드펌. 라이벌의 출발점은 의외로 평화로웠다. 레인저스가 1888년 셀틱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글래스고 남쪽으로 홈그라운드를 옮겼다. 소외계층 지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두 클럽의 첫 만남에서 셀틱이 5-2로 이겼는데, 뜻밖에도 관중이 2천 명이나 들어왔다. 경기장 안에만 머물던 경쟁심은 1920~30년대 사회, 종교, 정치적 대립 심화를 거치며 심화되면서 글래스고 경찰청장 퍼시 실리토우는 올드펌을 금지하겠다며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아일랜드계와 소외계층이 주를 이루는 가톨릭 신자들은 사회적 차별 대상이 되어갔다. 가톨릭계 교육기관에 대한 정부 지원법 개정은 개신교 기득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셀틱은 점점 자신들의 가톨릭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레인저스도 개신교만의 울타리를 높이 쌓아갔다.
스코틀랜드 리그에서는 병, 캔, 주류의 경기장 내 반입이 금지되어 현장에서 폭력사태는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었지만, 험악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레인저스는 오랜 기간 가톨릭 신자를 영입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정책을 고수했다. 하지만 셀틱은 문호를 개방했다. ‘레전드’ 조크 스타인 감독이 개신교도였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그래엄 수네스 감독이 셀틱의 모 존스턴을 영입함으로써 레인저스의 공공연한 비밀도 막을 내렸다.
더비의 승부 결과가 리그 우승 향배에 직결되어 올드펌의 매력을 더한다. 레인저스에서 뛰었던 고든 스미스는 1979년 경험을 잊지 못한다. “리그 최종전이 셀틱 원정이었다. 우리는 비기기만 해도 됐지만, 그 경기에서 패하는 바람에 셀틱에 우승을 빼앗겼다. 셀틱 파크 라커룸에 앉아서 그 환호성을 들었던 것이 내 인생 최악의 경험이었다”라고 말한다.
#2. 바르셀로나 vs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엘클라시코. 바르셀로나의 지휘봉을 잡았던 보비 롭슨 감독은 이 더비를 “카탈루냐는 한 국가이고, FC바르셀로나가 그 군대다”라며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마드리드 풋볼 클럽’은 1902년 창단되었고, 1920년 왕실의 후원을 받아 ‘레알’ 호칭을 획득했다. 바르셀로나는 1899년 스위스, 영국, 카탈루냐 팬들이 모여 만들었다.
독재자 프랑코 장군의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은 지역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금지했다. 억압받을 수밖에 없었던 바르셀로나와 달리 레알 마드리드는 중앙정부의 선전도구로서 중흥했다. 프랑코 독재 시대가 막을 내리며 카탈루냐 지역도 자유를 얻었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강하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국내 리그 84시즌 중 55차례 우승(레알 32회, 바르셀로나 23회)을 차지하고 있다. 독자적인 TV중계권 계약은 두 클럽의 입지를 더욱 강화해준다. 엘클라시코의 생중계 시청 인구는 전 세계 약 5억 명으로 추산된다. 단일 클럽 경기로서는 지상 최대 규모다.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지네딘 지단으로 이어진 화려한 스쿼드 전통은 현재 MSN과 BBC로 이어진다.
1943년 컵 결승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가 3-0으로 승리했다. 2차전이 있기 전, 프랑코 장군은 직접 바르셀로나 선수단을 찾아 ‘2차전까지 뛸 수 있는 것은 오직 중앙정부의 자비심 덕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2차전에서 레알이 11-1로 이겼다. 1953년에는 바르셀로나가 아르헨티나 천재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영입하자 리그가 외국인 영입 금지 규정을 도입했다. 우여곡절 끝에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디 스테파노는 유러피언컵 5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1. 보카 주니어스 vs 리버 플레이트 (아르헨티나)

수페르클라시코. 축구는 계층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보카와 리버가 대표적이다. 단순한 라이벌이 아니다. 그들 관계에는 지역감정과 우월 의식이 뒤섞여있다. 보카는 노동자들이, 리버는 부르주아 계층이 팬층을 이뤘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더비가 되었다.
보카 팬들은 리버 팬들을 ‘닭(Gallinas; 겁쟁이)’이라 부른다. 1966년 코파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 리버가 페냐롤에 2-0으로 앞서다 2-4로 역전당한 일을 풍자한다. 반대로 리버 팬들은 보카 팬들더러 ‘새끼 돼지(chanchitos)’ 또는 ‘거름쟁이(bosteros)’라 놀린다.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선수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보카의 레전드 후안 로만 리켈메는 “아침에 일어나 붉은색과 흰색 물건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리버를 상징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2015년 보카로 돌아간 카를로스 테베스는 더비에서 골을 넣고는 ‘치킨 댄스’를 췄다.
아르헨티나 스포츠 매거진 <엘 그라피코>는 이렇게 말했다. “100년 전 이 더비는 귀족과 노동자의 싸움이었다. 오늘날은? 그냥 서로 싫어한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찰 2,000명이 투입된다. 경기장에선 늘 심한 욕설이 오간다. 경기당 레드카드가 평균 두 장씩 나올 정도로 과격하다. 보카와 리버의 맞대결은 살면서 한 번쯤 꼭 봐야 할 경기다. 특히 라봄보네라에서 열리는 경기를 추천한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을 경험하게 될 거다. 닭 깃털로 온몸을 감싼 사람부터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돼지 풍선까지!”
사진=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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