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을 떠난 메이커들을 돌아보다 - 닷지 편

 

한국의 수입자동차 시장은 서로 다른 34개의 메이커가 격돌하면서 더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복마전과 같은 시장이다. 이러한 한국 시장에 발을 들였다가, 시장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철수한 몇 몇 메이커도 있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사라져간 메이커들의 부진과 실패를 되돌아보며, 한국 수입차 시장의 성격과 속성을 들여다 보자.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3개의 메이커-닷지, 사브, 스바루-들을 각각 하나의 Chapter로 구성하여, 연속으로 게재한다. 금주는 2004년부터 다임러-크라이슬러 코리아를 통해 론칭 후, 2011년 말에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닷지’에 대하여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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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닷지 브랜드의 역사는 19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영국 이민자 부모의 아들로 태어난 존 닷지(John Dodge, 1864년~1920년)와 호러스 닷지(Horace Dodge, 1868년~1920년) 형제가 디트로이트에서 자전거 공장을 운영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닷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닷지 형제는 미국 최초의 자동차 회사인 올즈모빌에 그들의 베어링 기술을 활용한 변속기를 납품했다. 그리고 자동차 대중화의 선구자, 헨리 포드와 인연을 맺고 포드에 엔진을 제작하여 공급하면서 자동차 부품기업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포드와의 인연은 ‘모델 T’를 만드는 과정에서 헨리 포드와의 의견 차이로 인해 끝나고 만다.

 

닷지 형제는 포드와 결별하게 됐지만 그 동안 포드와의 제휴로 인해 그들의 기술력은 이미 완성차를 제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닷지 형제의 부품은 이미 포드 차량의 대부분에 걸쳐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획득한 자동차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닷지 형제는 1914년 닷지 브라더스 사(Dodge Brothers Ltd.)를 설립하고 1호차 ’닷지 모델 30’을 내놓았다.

 

닷지 모델 30은 포드 모델 T보다 가격이 100달러가 더 비쌌다. 당시에 주로 사용했던 목재의 비율을 줄이고, 철재의 비율을 대폭 늘려 제작했기 때문이다. 닷지 형제는 모델 30에 29마력을 발휘하는 3.5리터 엔진을 장착하여 모델 T보다 우수한 성능을 끌어냈다. 거기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차체 색상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내세웠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고 닷지의 브랜드인식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했다.

 

닷지 형제의 엔지니어라는 배경은 닷지 브라더스사의 분위기 또한 자연스럽게 기술력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닷지 브라더스는 전기 전조등, 제동등, 도어록 등 현대의 자동차에 보편화되어 있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던 자동차 성능 시험장을 최초로 운영하여 주행 성능 테스트 후 자동차를 시판하는 체계를 확립했다. 이렇게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닷지는 1920년, 포드에 이어,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로 거듭났다.

 

그러나 1920년, 창업주인 닷지 형제가 폐렴으로 별세하는 바람에, 닷지 브라더스는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1929년 당시 미국 자동차 산업계의 신흥 강자로 부상한 크라이슬러에 인수되어 크라이슬러 산하의 디비전으로 탈바꿈했다. 크라이슬러의 창업주인 월터 크라이슬러는 생전에 “닷지를 인수한 것이 가장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회고할 만큼, 닷지 브랜드의 비중을 크게 여겼다.

 

 

크라이슬러에 합병된 이후, 닷지는 픽업트럭 분야에서 성장을 거듭했고,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닷지는 픽업트럭의 엔진을 제조하던 기술을 바탕으로, ‘차저’와 ‘챌린저’ 등의 머슬카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984년 최초의 미니밴인 ‘캐러밴’을 발표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냈다. 이는 부진했던 크라이슬러의 성장과 부활에 크게 기여하는 원동력이 되기도한다. 닷지는 1989년 다시한번 시장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 바로 본격적인 아메리칸 스포츠카 ‘바이퍼’를 공개한 것이다.

 

 

현재까지 닷지는 여전히 크라이슬러 산하의 디비전으로 남아있다. 닷지 산하의 픽업트럭 브랜드 ‘RAM’과 고성능 디비전이었던 SRT는 각각 분리시켜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SRT디비전에서 신형 바이퍼를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닷지는 2003년부터 다임러-크라이슬러 코리아(현 피아트-크라이슬러 코리아)의 산하 브랜드 형태로 한국 시장을 찾았다. 크라이슬러는 닷지 브랜드를 SUV와 픽업트럭 전문 브랜드로 시장에 소개하였고 꾸준한 판매고를 올렸다. 첫 진출한 2003년도에는 ‘바이퍼’ 5대를 한정 판매하는 형태로 수입하기도 했다. 



2008년도의 금융위기는 크라이슬러사를 존폐위기로까지 내몰았다. 여기에 미국차 특유의 무거움과 높은 연비, 만만치 않는 가격정책등은 더욱 국내에서의 입지를 약하게했다. 반면, 탁월한 경제성을 내세운 유럽차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시장점유율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결국 2011년을 끝으로 한국에 시판되는 모든 닷지 모델의 수입이 중단되었다. 닷지는 2003년 진출 이후 2012년 수입 중단에 이르기까지 총 2,157대를 판매했다.

 

 

 

강인함과 터프함이 매력적인 닷지 모델들


닷지는 미국의 픽업트럭 시장에서 GM의 쉐보레와 나란히 1,2위를 다투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머슬카의 황금기인 60~70년대에는 ‘차저’, ‘챌린저’ 등의 기념비적인 모델들을 출시했다. 승용 모델부분에서도 닷지만의 독특한 특성을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바이퍼의 출시는 닷지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결정체이기도 했다.

 

 

‘닷지 차저’는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주인공 역할을 해왔다. 영화속 닷지 차저는 말 그대로 ‘상남자’의 매력을 십분발휘했다. 1971년에 만들어진 영화, ‘배니싱 포인트(Vanishing Point)’에 출연한 ‘닷지 챌린저’의 명성과 인기도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2008년부터 레트로 스타일로 다시 태어난 챌린저는 머스탱과 함께, 미국 머슬카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델 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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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지 브랜드는 왜 한국을 떠나게 됐을까?


한국 시장에는 수입차 업계에서 유일무이한 픽업트럭인 ‘다코타’를 꾸준히 판매해 왔다. 저가정책을 내세우고 ‘캘리버’까지 등장하면서 닷지의 판매량을 크게 늘었다. 하지만, 2011년 말에 크라이슬러 코리아는 돌연 2012년부터 한국 시장에서 닷지 브랜드의 모델들을 공급 중단한다 소식을 타전했다. 왜 크라이슬러 코리아는 닷지 브랜드를 공급 중단시키게 됐을까?

 

 

 

 

 

 

고유가 시대의 도래와 2008년의 미국발 금융 위기

 

2008년 이전까지, 한국 수입차 시장은 미국차에게 관대한 편이었다. 독일차의 비중은 여전히 높았지만, 미국산 자동차들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수입차였다. 



현대자동차의 그라나다와 기아자동차의 머큐리 세이블은 라이센스 계약를 통해 국내 조립생산한 모델들이다. 국내에서의 판매량도 괄목할 만 했다. 이 모델들은 기성세대들에게 대중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를 주었다. 판매가격도 유럽차에 비해 합리적이었다. 게다가 배럴 당 15~20달러의 안정적인 국제유가도 판매 증대에 큰 요인이기도 했다. 당시의 국내 유가는 국민 소득에 비해 비교적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의 발발은 한국의 주요 원유 수입국들이 몰려있는 중동의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원유생산량의 막대한 감소는 국내를 포함한 전세계적에 폭발적인 유가 상승을 가져왔다. 게다가 중국과 인도의 급격한 경제개발에 따른 원유 수요는 나날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여파로 2011년 한때 WTI(서부 텍사스 산 중질유)의 배럴 당 가격이 120 달러를 넘을 정도였다. 차량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자들의 유류비에 대한 부담이 더욱 가중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흐름은 무겁고 연료 소모량이 많은 미국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점점 가볍고 연료 소모량이 적은 연비좋은 차쪽으로 움직이게 했다.  특히 다코타를 필두로 한, 대배기량 가솔린 엔진 중심의 닷지 모델들이 이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사태의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금융위기의 여파는 자동차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쳐, 닷지의 모회사인 크라이슬러가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당시 한국 수입차 시장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경제성’과 ‘디젤 파워트레인’이었다. 한국에 판매되던 닷지 모델들은 이에 초점을 맞춘 모델들이 없었다. 반면 디젤엔진과 하이브리드를 내세운 유럽과 일본 메이커들은 뛰어난 경제성을 주무기로 내세웠고 소비자들의 관심은 이들에게 집중됐다. 유럽차와 일본차들이 시장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닷지의 모델들은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하나, 둘씩 잊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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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의 요구에 맞추지 못한 제품군

 

닷지 브랜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장 ‘미국스러운’ 자동차를 만든다는 데 있다. 이 이야기를 바꿔 말하면, ‘한국 시장에 적합하지 않은’ 자동차라는 이야기가 된다.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인 닷지 모델들은 한국 시장의 요구와는 상충하는 부분들이 있다. 전반적으로 실내외 조립품질이 낮았고, 수입차 고객들이 원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디젤엔진의 채용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훗날 유류비에 극히 민감해진 한국 시장에서 약점으로 작용했다. 닷지의 대표적인 모델들인 ‘다코타’와 ‘캘리버’가 처했던 상황을 보면 이런 점들이 확인할 수 있다.

 

 

닷지의 픽업트럭 ‘다코타’는 2003년 출시해에 235대를 판매했다. 이는 당시에 서로 경쟁할 만한 픽업트럭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숫자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쌍용에서 ‘무쏘 스포츠(SUT)’가 등장하면서 픽업트럭 시장의 일부를 빼앗기기 시작했다. 다코타가 가지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점도 판매를 끌어올리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4리터를 넘는 대배기량 가솔린 엔진의 연비 때문이었다. 크라이슬러 측에서는 연료계통을 LPG로 교체해주는 이벤트를 벌여가며 판매에 열을 올렸지만, 배기량과 연비를 극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유류비가 저렴한 미국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모델인데도 한국의 높은 유류비는 다코타의 판매량을 더 이상 끌어올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2006년에 한국 시장에 등장한 ‘캘리버’는 ‘지프 컴패스’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닷지 모델이었다. 첫 해에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20대 정도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듬 해인 2007년에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크라이슬러의 공격적인 마케팅 덕에 2007년부터 2008년까지 500대를 넘게 판매했다.  닷지모델중 한국 시장에서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 된다. 



하지만 국제유가상승, 2008년 금융위기 등의 악재는 생활전반의 소비심리를 위축시켰다. 소비자들은 가솔린차량보다 디젤 또는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관심이 증대했다. 가솔린 2.0리터 4기통 엔진과 CVT변속기의 파워트레인은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다. 높은 연비와 비좁은 공간구성, 완성도 떨어지는 마감등도 캘리버의 판매에 걸림돌이었다.

  

 

 

닷지, 한국 시장에 돌아올 수 있을까?

 

2011년 말에 돌연 수입 중단을 선언하고 1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의 피아트-크라이슬러 코리아는 닷지 브랜드의 재진출에 관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다. 닷지 브랜드가 한국에서 시장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판매량으로 밝혀진 이상, 당분간 국내에서 정식으로 닷지 브랜드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시장에서 9년 동안 자리를 잡고 있었던 닷지 브랜드는 한국에서 픽업트럭 시장을 개척했고, 저가형 수입차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한국 시장의 성향이 변화하는 과정에 보조를 맞추지는 못했다. 그래서 2011년 말, 국내 수입차 시장의 선택지 하나가 이렇게 사라지게 되었다. 닷지 브랜드가 더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한국을 다시 찾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글: 박병하 기자 / 사진 및 자료 제공: 피아트-크라이슬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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