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방민호의 현대문학 명장면 20] (16)"문화는 국경을 넘어 뒤섞인다"..제3의 길

김성곤 | 문학평론가 한국문학번역원장 2017. 1. 17. 21: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ㆍ포스트모던 소설의 등장과 탈식민주의의 시작 토머스 핀천과 에드워드 사이드

토마스 핀천(왼쪽)과 에드워드 사이드.

평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프랑스에서 활동한 아일랜드 작가 사무엘 베케트, 그리고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한 러시아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꼽는다. 그러나 미국 최초의 포스트모던 작품을 논할 때, 문학비평가들은 주저 없이 토머스 핀천의 <브이를 찾아서>(1963)를 1순위로 뽑는다. 과연 1960년대의 시작과 함께 핀천이 발표한 이 소설의 등장은 미국문단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를 알리는 문학의 명장면으로 기록된다.

예술지상주의와 이성중심주의, 그리고 엘리트주의로 집약되는 모더니즘에 반발해서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은 세 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첫째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회의, 둘째는 중심과 주변의 자리바꿈, 그리고 셋째는 사물의 경계해체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신만 옳고 자기만 진리라고 생각하는 눈먼 절대적 신념을 해체하고, 소외된 주변부를 포용하며, 문화적 국경과 사고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모든 문화와 학문과 예술장르가 크로스오버를 통해 융합되고, 작가들은 제3의 길을 추구하는 두 세계 사이의 지식인이 된다.

토머스 핀천의 ‘브이를 찾아서’(왼쪽)와 ‘중력의 무지개’.

■핀천, 경직된 이데올로기 싸잡아 비판

존 바스와 더불어 미국 최초의 포스트모던 작가로 꼽히는 토머스 핀천은 <브이를 찾아서>, <제49호 품목의 경매>(1966), <중력의 무지개>(Gravity’s Rainbow)(1973) 등 자신의 초기 소설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념을 멋지게 구현했다. <브이를 찾아서>는 외교관이던 아버지의 수수께끼 같은 죽음을 조사하던 아들 허버트 스텐실이 아버지가 가는 곳마다 “브이”라는 신비한 여인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여자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구 제국주의의 폐해를 깨닫는 이야기다.

핀천은 20세기 인류문명을 파멸시킨 것은 서구 제국주의와 나치즘이라고 지적하면서, 동시에 똑같이 나쁜 것이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대항하는 제3세계의 국수주의라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둘 다 인간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제49호 품목의 경매>에서 핀천은 “산업자본주의와 마르크시즘은 둘 다 똑같이 소름 끼치는 공포일 뿐이다”라고 실망을 표출하고 있으며, <브이를 찾아서>에서는 “우리는 20세기의 유산인 좌파와 우파의 대립 속에서 살아왔다. 좌파는 성난 군중을 조종해 거리에서 정치적 이념을 실현해왔고, 우파는 거리를 외면한 채 과거의 온실에서만 칩거해왔다”고 두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핀천은 좌파는 거리의 질서를 회복하고, 우파는 온실에서 나와 거리의 소리와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핀천은 이제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적 선택의 시대는 끝이 났고, 지금은 “이것도 그리고 저것도”의 포용시대라고 선언한다. 보잉사의 컴퓨터 기사였던 핀천은 1966년에 출간한 <제49호 품목의 경매>에서 벌써 매트릭스 이론을 펼치고 있으며, “우리는 컴퓨터의 조합인 0과 1 사이에서 벗어나 그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제3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고 주창한다. 제3의 길을 찾는 것은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 명제 중 하나다.

<중력의 무지개>에서 핀천은 모든 경직된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이 소설에서는 청교도주의, 파시즘, 나치즘, 제국주의, 공산주의, 서구의 이성 중심주의 등이 모두 비판의 대상이다. <중력의 무지개>에서 핀천은 백색과 무지개색을 대비시키는데, 백색은 창백한 시체나 화장실 변기 같은 부정적인 색으로 제시되는 반면, 현란한 무지개색은 삶의 풍요, 또는 변화와 다양성을 상징하는 긍정적인 색으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 무지개가 이 세상을 파멸시키지 않겠다는 신의 약조임을 생각하면, 각기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일곱 가지 무지개색은 더욱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핀천은 우리를 잡아당기는 경직된 이데올로기의 중력을 초월해 창공으로 비상할 때, 비로소 다양한 색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무지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세계를 놀라게 한 책, ‘오리엔탈리즘’

문학의 명장면을 논하면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저 <오리엔탈리즘>(1978)의 등장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서구 문헌에 나타난 동양에 대한 서구인들의 편견을 고발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서구 문단과 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우리가 미처 제국주의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서구의 작가들과 지식인들이 사실은 자기도 모르게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이 지적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리엔탈리즘>을 피해갈 수 있는 19세기 유럽의 명사들은 거의 없다. 이 책에서는, 아라비아 편인 줄 알았던, “아라비아의 로렌스” 즉 T. E. 로렌스도, 또는 약자인 동양 편인 줄 알았던 카를 마르크스조차도 동양은 미개한 지역이고 서구화되어야 한다는 편견을 가진 제국주의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가장 비정치적이고 비제국주의적인 작가로 알려진 조지프 콘래드나 찰스 디킨스나 제인 오스틴조차도 사이드의 예리한 화살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이 책이 “오리엔탈”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편견을 지적했기 때문에, 미국대학의 “오리엔탈 스터디스” 학과들은 이 책 출간 이후 모두 학과 명칭을 ‘동아시아학과’로 바꾸는 일도 일어났다.

1995년 서울대학교 초청강좌로 왔을 때, 경복궁에서 필자 김성곤 교수와 함께한 에드워드 사이드.

사이드의 위대함은 그가 단순히 오리엔탈리즘만 비판한 것이 아니라, 서구에 대해 동양이 갖는 옥시덴탈리즘도 똑같이 비판했다는 데 있다. 그는 서구 제국주의로 인해 나라를 잃고 평생을 타국에서 망명객으로 살았지만, 자신이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아랍 편을 들지는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들도 비판했지만 동시에 아랍의 극단주의자들도 비난해서 양쪽에서 비난과 협박을 받았던, 또 다른 의미에서의 망명객이었다.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사이드는 핀천이 그랬던 것처럼 “서구 제국주의와 제3세계 국수주의는 서로를 좀먹어 들어간다”라고 비판했으며, 서구 제국주의로 인해 나라를 빼앗겨 돌아갈 곳도 없으면서도, 서구에 대해 원한을 갖는 대신 이렇게 멋진 말을 남겼다 - “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서구교육을 받은 아랍인으로 태어나 자랐다. 나는 언제나 그 둘 중 하나에만 속한다기보다는 그 두 세계에 다 속하는 것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내가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부를 때, 그것은 슬프거나 박탈당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제국이 나누어놓은 두 세계에 다 속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두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이드는 가해자를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식민지 경험을 긍정적으로 바꾸어보자고 제안한다. - “제국주의는 나쁘지만, 그래도 성과가 있다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증오와 원한과 복수보다는, 그 역사적 경험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핀천처럼 사이드 또한 문화는 국경을 넘어 부단히 서로 뒤섞인다고 보았다. - “부분적으로는 제국주의에 의해 모든 문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어느 문화도 단일하거나 순수할 수는 없다. 모든 문화는 혼혈이며 다양하고 다층적이다.” 그래서 사이드는 자기문화 우월주의나 문화적 순혈주의를 경계한다. “편집증적인 국수주의자들은 유감스럽게 교육현장에서 청소년에게 자신들의 문화적 독창성을 숭상하고 찬양하며, 타문화는 비하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문화는 우열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김성곤 | 문학평론가 한국문학번역원장

사이드는 문화가 겹치는 영역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제시하며 대위법적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사이드는 아랍인이면서 기독교도였고, 동양인이면서 서구교육을 받았으며, 팔레스타인의 옹호자이면서도 아라파트와 결별했다. 그의 이름 에드워드 사이드 또한 서양 이름과 동양 이름의 혼합이다. 프로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였던 사이드는 이스라엘인 작곡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같이 분쟁지역에서 연주회를 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를 추구했으며, 백혈병에 걸렸을 때도, 뉴욕의 유대계 병원인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르네 웰렉상을 받은 <세상과 텍스트와 비평가>(1983)에서 사이드는, 비평은 ‘현세적(worldly)’이어야만 한다며 ‘세속적 비평(secular criticism)이론’을 주창한다. 사이드는, “문학비평은 우리의 현실이나 역사적 삶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세속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다”라고 말한다. 명저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와 제국주의>를 통해 탈식민주의의 원조로 부상한 사이드는, 격동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망명객이었고, 자신의 삶 자체가 문학의 명장면이었던 영원한 경계선상의 지식인이었다.

<김성곤 | 문학평론가 한국문학번역원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