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디자인 규제, 조선시대에 박제된 '21세기 한옥'
새로운 소재 못 쓰고 모습 판박이
기준 안 지키면 지원금 일부 깎아
"한옥 살림집을 문화재처럼 규제"
전통 지키며 현대화할 기회 잃어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북촌·서촌·은평 한옥은 왜 비슷할까
![캔틸레버 콘크리트가 한옥을 받치고 있는 은평한옥마을의 '낙락헌'. [사진 박영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4/joongangsunday/20210814002117296rpyv.jpg)
한옥에 사는 주민들은 서울시가 한옥 디자인 규제를 해서 어쩔 수 없이 판박이 한옥을 만들고 있다고 입 모아 말한다. 은평한옥마을의 주민 박성수(48)씨는 “은평한옥마을이 한옥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실험장이 될 수 있었는데 서울시의 심의제도가 결국 똑같은 한옥 마을을 만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규제는 역설적이게도 한옥 지원정책에서 출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8년 한옥선언을 하면서 본격적인 육성정책을 펼쳤다. 서울의 미래자산으로 한옥을 육성하겠다며 은평한옥마을도 그 일환으로 조성됐다.
![1.5층 한옥인 낙락헌은 아래에 양옥, 위는 한옥을 둬서 활용도를 높였다. [사진 박영채]](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4/joongangsunday/20210814002118453trst.jpg)
서울시의 한옥 비용지원 심의 기준에 따라 서울시건축자산전문위원회가 한옥 심의를 하는데 조선시대식 디자인 규제를 하는 게 문제다. 따르지 않으면 지적사항마다 지원금을 5%씩 깎는다. 서울시 한옥관리팀 관계자는 “법에 한옥은 주요 구조가 기둥·보 및 한식 지붕틀로 된 목구조로 우리나라 전통양식이 반영된 건축물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전통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의 지원금을 받지 않더라도 한옥을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자치구마다 엇비슷한 디자인 규제를 한다. 따르지 않으면 인·허가를 받을 수 없다. 1930년대 지어진 북촌 한옥과 2010년대에 지어진 은평 한옥의 모습이 점점 조선시대 한옥으로 박제되고 있는 까닭이다.
통유리 금지해놓고 공공 한옥엔 허용
![낙락헌은 주방의 두면이 통유리창이지만 서울시는 전통을 이유로 창호살을 대도록 규제하고 있다. [사진 박영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4/joongangsunday/20210814002119632olzp.jpg)
집은 은평한옥마을에 주를 이루는 2층 한옥과 달리 이른바 1.5층 한옥이다. 반지하 부분이 양옥, 지상은 한옥인 구조다. 양옥의 콘크리트 구조가 한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밖에서 보인다. 집을 설계한 조정구 건축가(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2층 한옥이 하자 문제 등 아직 불안정해서 양옥과 한옥이 결합한 1.5층으로 지었고 한옥 주방 아래를 띄워서 주차장으로 활용했는데 이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의 콘크리트 기단을 심의위원회에서 전통이 아니라며 문제 삼았다”고 말했다.
통유리창도 시빗거리였다. 낙락헌의 주방은 두면이 통유리다. 마치 정자처럼 주방의 개방감이 뛰어나다. 하지만 서울시 심의 기준에 따르면 전통적인 창살이 있는 목창호만 써야 한다. 즉 유리에 띠살, 아자살, 완자살처럼 복잡한 나무 살대를 대야 한다. 그나마 간결한 용(用)자살은 쓰지 못하게 규제한다. 조 건축가는 “한옥의 본질적인 특성인 개방감과 투명성이 통유리라는 재료와 잘 맞아 떨어지는데도 이를 전통이 아니라고 제한하니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래 창호 살은 유리가 없던 시절에 쓰던 창호지를 고정하기 위해 필요했다. 외부에 면한 창은 보안을 위해 더 촘촘한 창호 살을 썼다. 하지만 신소재인 유리가 보급되면서 창호 살은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창호 살이 한옥 내부를 더 답답하게 했던 터다.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종로구 필운동 홍건익 가옥은 1930년대 지어진 한옥인데 안채에 살대가 없는 통유리창을 썼다. 하지만 유리 새시가 보편화한 오늘날에는 쓸 수 없다.
![서울시가 규제하고 있는 타일 외관을 유지한 서촌의 한옥. [사진 박영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8/14/joongangsunday/20210814002121925zqin.jpg)
민간한옥에서는 통유리창을 엄격히 규제하지만, 공공 한옥에서는 통유리창을 쓴다. 고무줄 심의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서울시는 최근 심의 기준을 바꿨다. 비주거용 한옥의 경우 가로 측 입면에 1~2개 범위에서, 주거용 한옥은 밖에서 안 보이는 대청이나 누마루에 1개만 통유리를 쓸 수 있다. 물론 심의위원회가 필요성을 검토해 허가해야 한다.
한옥마다 똑같이 생긴 대문도 규제 탓이다. 무엇보다 대문을 위한 공간, 대문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문을 열고 바로 실내로 들어갈 수 없게 규제한다. 꼭 마당을 거쳐야 한다. 문도 양쪽으로 열어젖힐 수 있는 대칭형 양개문(兩開門)만 써야 한다. 서촌이나 북촌의 도심 한옥은 집 자체가 작다 보니 대문간을 따로 두는 것이 버겁지만 조선 시대 규정을 따라야 한다.
조선시대처럼 대문 양쪽으로 열어야 허가

최근 수선을 한 종로구 옥인동의 한 한옥은 다른 집과 달리 옥빛의 아름다운 타일 외벽을 갖고 있다. 옛날 그대로 보존했고, 이를 위해 집주인은 일부러 서울시 지원금을 받지 않았다. 서울시의 심의 규정에 따르면 타일이나 벽돌을 못 쓰기 때문이다.
은평한옥마을에는 서울시가 한옥 등록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한옥이 한 채 있다. 이 한옥의 주요 구조부는 철골이다. 그런데 나무기둥처럼 보인다. 철골을 얇게 자른 나무로 다시 감쌌기 때문이다. 집주인 최원선(48)씨는 “나무가 수축·팽창하면서 발생하는 한옥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공간 활용을 하기 위해 시도했다”며 “다른 재료와 복합해 사용할 때 마감을 목재로 하면 된다는 방침에 따라 지었다”고 전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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