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공소권 남용 '그 검사'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전광준 입력 2021. 10. 15. 18:26 수정 2021. 10. 1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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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이두봉 인천지검장. <국회TV> 갈무리

이두봉 인천지검장. 지난 14일 오전과 밤, 각각 서울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발생한 이례적인 일을 꿰는 연결고리입니다. 먼저 이날 국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밤 11시께 지방검찰청을 대상으로 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두봉 지검장을 증인석으로 나오라며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사과할 생각 없으시죠?”라고 묻습니다. 이 지검장은 사과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업무처리에 유의하겠다”라고 말합니다.

이날 오전 대법원은 검찰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한 이례적인 판결을 내놓습니다. 대법원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할 정도였는데요. 국회의원이 지검장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과 대법원 판결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요.

먼저, 시계를 2010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당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의 대북 송금업무 대행 혐의를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은 유씨를 기소유예 처분합니다. 유씨는 탈북자 대북송금을 주선하는 일명 ‘프로돈’ 사업을 통해 13여억원을 북한으로 밀반출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유씨의 가담 정도가 가볍고 그가 범행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기소하지 않은 겁니다.

사실상 끝난 사건이 2014년 5월 다시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한 탈북자 단체의 고발에 유씨를 같은 혐의로 기소합니다. 재북 화교 출신이지만 ‘탈북자 전형’으로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고 탈북자 정착금을 부당하게 받은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도 추가됩니다. 당시 유씨를 기소한 검사가 바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이었던 이두봉 지검장입니다.

이듬해 1심 재판부는 두 혐의 모두 유죄로 판단해 유씨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합니다. 그러나 2심 판단은 달랐습니다. 서울고법 형사5부(당시 부장 윤준)는 “검찰 기소에 어떤 의도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함이 타당하다”며 “고발은 각하됐어야 할 사안”이라고 판결합니다. 2심 판결문 10쪽에 걸쳐 적시된 이유를 짧게 정리하면, ‘사정변경’이 없었다는 겁니다. 검찰이 2010년 기소유예된 사건을 번복하고 2014년에 다시 기소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그 사이에 있었던 ‘사정변경’이라고는 유씨가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렸다가 2014년 1월 국정원 직원과 담당 검사를 고소했고 그 다음달 국정원 직원의 출입경 기록 증거조작이 밝혀졌던 일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유씨 변호인이었던 김용민 의원이 검찰의 기소를 두고 “보복성 기소”라고 비판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법원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에 대한 불법 대북송금 혐의를 공소기각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건물에서 유우성씨가 나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14일 있었던 상고심에서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기소유예 처분을 번복하고 공소 제기해야 할만한 의미 있는 사정변경이 없었다”며 “(보수 탈북자 단체의) 고발은 검찰사건사무규칙에 따라 각하됐어야 한다”고 판시합니다. 기소된 두 혐의 중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한 겁니다. 그럼 ‘공소권 남용’을 저지른 검사들은 공소권 남용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걸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부장검사이던 이두봉 지검장의 결정이 아니라 ‘윗선’의 결정이었을 가능성이 큰데 이를 들쑤실 수 있겠냐는 설명이 검찰 내부에서 나옵니다. 당시 부장이었던 이두봉 검사 지휘라인으로는 이미 퇴직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신유철 당시 중앙지검 1차장검사와 김수남 당시 중앙지검장이 있습니다. 한 검찰 간부는 “당시 기소도 ‘윗선’이 결정했을텐데 (대법원 판단은) 검찰과 법원의 견해 차이 정도로 여겨질 것”이라며 “만약 이 지검장에게 불이익이 가더라도 인사고과 상 벌점 1~2점만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근데 이미 검사장 신분이라 얼마나 영향이 갈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검장은 2014년 이 사건 이후 승승장구합니다. 2019년 윤 전 총장 취임 직후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으로 승진하기도 합니다. 그가 이른바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7년 동안 유씨는 공소권 남용으로 인한 재판에 시달려왔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던 이 지검장이 지난 7년 동안 공소권 남용으로 고통받은 유우성씨의 삶을 존중할지는 모를 일입니다. 유씨는 14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당시 검찰 간부들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유씨는 과연 지난 7년 동안 겪은 고통에 대해 사과받을 수 있을까요?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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