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에게 가는 길'
변규리 감독, 주인공 나비·비비안 인터뷰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내 자식을 넘어 모든 성소수자에 연대하는 앨라이(당사자가 아니라도 차별받는 소수자에게 연대하는 사람) 단체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부모들은 자식이 성소수자인 것이 당황스럽다는 고민을 품고 모임에 나서지만 다른 부모들의 환대와 지지로 점차 성소수자 인권 수호와 차별 철폐를 위한 활동에 나서게 된다.
여성주의 미디어 공동체인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에서 다큐를 만들고 미디어 활동을 하는 변규리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 '너에게 가는 길'에서 부모모임의 ‘FTM 트랜스젠더 한결의 엄마’ 나비와 ‘게이 예준의 엄마’ 비비안의 이야기를 듣는다. 무던하고 강한 엄마인 나비는 한결의 성별정정 절차를 같이 밟으며 다른 결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흡사 친구같은 엄마인 비비안은 아들의 파트너를 만나고 둘의 관계를 지켜보며 또 다른 가족을 상상한 다. 나비와 비비안이 가는 길은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변규리 감독은 말한다. 이들은 조력자가 아니라 ‘성소수자 부모’라는 고유의 정체성으로 활동하는 것이라고. 영화의 세 주역을 만나 '너에게 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영화제에서 선공개되고 “어디서 볼 수 있냐”는 질문이 줄을 이었다. 드디어 개봉하게 된 소감은?
○ 비비안 / 5월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시작했는데 호응이 좋았다. 그렇지만 영화제만 돌다가 개봉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고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올해 안에 개봉하게 돼서 마음이 편하다.(웃음) 이 영화를 찍은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생길 거 같다.
◎ 변규리 / 영화를 찍을 때는 개봉을 할 수 있을까보다도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내부에서는 열심히 준비해서 만든 거지만 관객분들과 배급사에서는 어떻게 봐주실지 알 수 없었는데 다행히 배급사에서 많은 연락을 주셨다.(웃음) 영화의 제작 협력을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도와주셨는데 배급사, 제작사와 한마음으로 개봉을 준비하게 돼서 기쁘다.
● 나비 / 드디어 개봉을 하게 됐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과 맞물려서 하느님의 뜻인가 싶다.
◎ 변규리 / 이 영화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법에 대해 알리는 여정에 함께하면 좋겠다.

Q.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멤버들 중에서 두 분이 주인공이 된 이유는?
◎ 변규리 / 처음부터 두 분을 정한 건 아니었고 다른 분들도 다 담았다. 특히 부모모임 운영위원 분들은 다 생애사 인터뷰를 했는데 사실 마음속에서는 한두 달이 지나고 나비 님, 비비안 님이 주인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추가 촬영이나 세부적인 기획 촬영을 두분이랑 많이 했는데 두 분만 하고 있으시다는 건 정확히 모르셨을 거다.(웃음)
● 나비 / 우리 둘의 가족이 대조적이다. 우리 애는 트랜스젠더고 비비안 님네 아들은 게이다. 또 우리 집은 한부모가정이고 자식과의 사이가 진짜 ‘현실 가족’인데 비비안 님네 집은 어디 소설에 나올 것처럼 살갑다.(웃음) 아마 집마다 공감하는 사람들이 다를 거다.
◎ 변규리 / 다양한 가족의 모습과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게 다큐멘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나비 님이 부모모임에서 “우리 아이는 바이젠더, 팬로맨틱, 에이섹슈얼”이라고 천천히 설명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나이가 들다 보면 학습과 변화가 더욱 힘든데 자식을 위해 노력한다는 게 멋지더라.
● 나비 / 우리 애가 앉혀놓고 하나하나 의미를 알려줬다. 처음엔 성질이 확 나고 ‘내가 이걸 왜 공부하고 있어야 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웃음) 많은 성소수자 부모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식이 스승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감독님이 말하신 건데 ‘너에게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자식에게 가는 길이기도 하고 자식을 이해하고자 하는 또 다른 나, 좋은 어른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Q. 지난 몇 년간 부모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변한 점이 있다면?
○ 비비안 / 회사에 일이 있어서 노조에서 집회를 하는데 자연스럽게 집회에 나가게 되더라.(웃음) 전엔 부당함에 대해 내 목소리를 내는 게 튀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부모모임 활동을 하면서 익숙해진 거다.
노조도 들어가고 간부도 하고 생활이 아예 바뀌었다. 다른 데서 소수자들이 권리를 침해당해서 연대 서명 해달라고 하면 무조건 하고 주변에 돌린다. 함께 잘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 나비 / 성소수자로 살면 힘든 일이 많으니까 우리가 같이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 처음엔 자식이 계기가 되었지만 자식을 위해서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좋은 세상의 한 부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움직이게 되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영화에 우리 집까지 공개해가면서 찍었다.(모두 웃음)

Q. 보통 성소수자를 조명할 때 커밍아웃 이후 원가족과 단절되는 서사를 더 많이 봐왔던 것 같은데, <너에게 가는 길>은 커밍아웃 이후에 더 단단해지는 가족을 다룬 것이 특별했다.
◎ 변규리 / 부모모임의 부모님들을 팔로우하면서 느꼈던 것은 그분들에게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내 자식이 성소수자라서 부모님들이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 특성상 성소수자 부모라는 위치에 섰을 때 당사자만큼이나 많은 질문을 받게 되는 거다. 남에게 관심이 많고 성소수자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아들 결혼했냐, 여자 친구 있냐?’ 질문을 계속 받고 어떻게 커밍아웃해야 할지를 끝없이 고민한다. 성소수자 부모의 위치를 이야기하는 게 지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겠더라.

Q. 두 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커밍아웃하나.
○ 비비안 /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회사고 팀이 매일 바뀌어서 커밍아웃할 대상이 굉장히 많다. 매일매일이 커밍아웃인데 활동을 하면서 인터뷰, 기사, 방송 같은 데 보이니까 알게 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불편할까봐 먼저 말 못 꺼내는 분들이 있어서 밥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얼마 전에 아홉 시 뉴스 보셨어요?’ 하고 말을 꺼낸다. 친한 사이였는데 종교적인 신념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연락을 끊은 사람도 있다. 처음엔 너무 상처받았는데 나비 님한테 얘기했더니 이 참에 인간관계 정리하라고 하더라.(웃음) 큰 위로가 됐다. 이번에 영화 나온다고 영상이 퍼지니까 몇 년 전에 그만둔 후배한테도 연락이 왔다. 잃은 관계보다 얻은 관계가 더 많다.
● 나비 / 나는 ‘우리 아이가 트랜스젠더인데 주변에 트랜스젠더 봤어?’ 하고 물어본다. 특히 우리는 제복 복장에 특이한 걸 하면 지적을 하는데 프라이드 뱅글을 차면 그게 뭐야? 하고 묻더라. 그러면 우리 아이가 트랜스젠더라 여름 프라이드 시즌에는 같이 하고 다닌다고, ‘어쩔 거야’라는 표정을 하고 설명한다. 왜 사람들이 모르지? 하는 자세로 너무나 마땅히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다닌다. 내 앞에서 혐오 발언하면 ‘혼구녕’을 내줄 거다.(웃음)

Q. 반면 두 분처럼 지지적인 부모가 흔치 않다 보니 영화를 본 누군가는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 변규리 / 원래는 부모님들만 등장시키려 하다가 이것에 대한 보완으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전해야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예준 님과 한결 님이 영화 초반에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하기로 했다. 두 분이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 어렸을 때 가졌던 고민이나 갈등의 지점들은 나비 님, 비비안 님 탓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다. 그걸 밝히고 예준님은 파트너를 비비안 님에게 소개하고, 한결 님은 성별정정 과정을 나비 님과 함께하며 가족들이 관계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두 분이 어떻게 자식과 관계를 재정립할 건지 매순간 고민하셨다고 했는데 영화에서 그게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 나비 / 우리도 이렇게 자식을 지지한다는 것이 가족의 정상성을 강조하거나 좋은 가족의 모델로만 비춰지면 어떡하냐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이라도 나에게 나쁘면 그런 가족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고 혈연이 아니라도 사회 안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지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 그런 이야기가 충분히 나눠졌으면 좋겠다.
○ 비비안 / 출발은 내 아이가 성소수자라고 하니까 엄마로서 마땅히 아이가 사는 세상을 내가 바꿔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가족주의에서 탈피해서 부조리하게 권리를 침해당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 변규리 / 그런데 당사자들이 꼭 커밍아웃을 해서 부모님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가? 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나비 님이 전에 커밍아웃이라는 것도 내가 준비됐고 안전할 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Q. 엄마의 입장에서 아직 부모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에게 커밍아웃 팁을 귀띔한다면.
● 나비 / 커밍아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부모라는 친밀한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는 건 굉장히 무거운 일이다. 하지만 얘기를 했다가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크면 안 해도 좋다. 그럼에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말하고 싶으면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공간적으로 독립할 수 있고 나를 지킬 수 있을 때 하는게 좋겠다. 방법은 부모님에 따라서 책이나 편지를 활용해서 눈치채게 할 수도 있고 한번에 확 터트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만약 부모님이 거부했을 때 절대 죄책감을 느끼거나 부모를 힘들게 했다고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커밍아웃도 다 받을 만한 부모라고 믿어서 말하는 건데 부모가 감당할 수 없다면 사랑이 부족하거나 세계관이 좁은 거다. 좋은 부모가 아닌데 자식이 좋은 자식이 될 필요가 있나.
○ 비비안 / 나도 부모지만 보면 정말 훌륭하지 않은 부모도 되게 많다. 그냥 자식들보다 조금 더 많이 살아왔을 뿐인 인간이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따라서 너무 다르다. 자식들 입장에선 당연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용해주고 사랑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부모들도 많다. 나는 커밍아웃이 아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고 새로운 삶의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선물로 못 받아들이는 부모면 진짜 나비 님 말대로 우리 부모가 굉장히 별로인 어른이라 이런 걸 모르는구나, 하고 절대 죄책감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게 될 관객분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 변규리 /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부모모임과 연분홍치마가 4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다큐멘터리다. 당사자분뿐만 아니라 앨라이, 퀴어 이슈를 알아가고 싶은 분들이 같이 보면 좋을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극장 밖에서 뭔가를 같이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거나,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으면 좋겠다. 무대인사나 GV에 찾아와주시면 반갑게 인사하겠다.
● 나비 / 영화에는 퀴어 부모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퀴어들이 퀴어의 존재는 부모나 가족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항상 박수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 비비안 /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 장면을 주목해주면 좋겠다. 부모나 가족에게 상처받았거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해 외로우신 분들이 그 장면을 봤으면 좋겠다. 정말 많은 사람이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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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수복 | 사진.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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