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재들 "은행은 개발자 무덤".. 온갖 러브콜에도 외면
"은행 IT 옛날 언어 '코볼' 사용
자신만의 커리어쌓기 어려워"
영업점 의무근무도 기피 이유
"디지털 인력, 지원인력 인식
체질변화 없으면 생존 어려워"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사들은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디지털 인재를 구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최근 개발자 수시 채용 공모에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업계에서 화제가 됐을 정도다. 개발자들은 “금융권에 입사하면 커리어가 끊긴다”는 인식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커리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발자 생태계를 알아야 한다. 개발자들은 이직이 잦다.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라고 불리는 IT 기업 입사가 최우선 목표이며, 작은 회사라도 자신의 성과를 쌓아 좋은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싶어한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개발자들은 만들어진 계획을 실행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라 개발 초기 의사결정 과정부터 참여한다”며 “회사 인력의 40%가 디지털 인재라 할 수 있으며 수시로 인력을 채용할 때마다 개발자가 1순위”라고 설명했다.
기존 은행권은 다르다. 최근 디지털 금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금융권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전략과 혁신 방향이다. 개발은 전략에 따라 구현만 하면 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외주 인력으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런 상반된 분위기 탓에 개발자들은 시중은행에선 신기술이나 신사업에 도전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은행권 업무는 오래된 시스템의 유지보수에 그쳐 개발 실력을 늘릴 수 없다는 인식도 있다.
오래된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카뱅과 토스 등 신생 업체들의 시스템은 자바나 파이썬 등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최신 언어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금융사 전산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구축된 1990년대 많이 쓰이던 코볼을 아직까지 쓰는 은행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옛날 언어로 개발된 시스템을 유지·보수해야 하는 업무적 한계와도 맞닿아 있다.
입사 직후 영업점에서 근무해야 하는 것도 개발자들이 금융사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영업점 근무 기간만큼 기술 트렌드에 뒤처지게 된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전환은 금융사에 생존의 문제가 됐다. 한국은행은 지난 8일 발표한 ‘디지털 혁신에 따른 금융부문 패러다임 전환 가능성’ 보고서에서 “디지털 전환에 뒤처지는 금융회사는 빅테크나 인터넷 전문은행에 의존하거나 해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나 기술 개발을 완수하지 못하는 금융회사는 제한적인 금융서비스만 제공하게 되거나 금융산업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플랫폼 금융시대가 도래한 상황에서 개발인력의 중요도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며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싶어하는 MZ세대 디지털 인재들을 핀테크 기업에 모두 뺏기지 않으려면 보수적인 은행 문화를 180도 바꾸고 다양한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젊은 디지털 인재의 핀테크 쏠림이 가속화할 경우 전통 은행들이 지속하기 어렵다는 경고가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는 “금융권이 혁신을 주창하며 디지털 인재 영입, 조직개편 등에 나서고 있지만 디지털 인력을 주력이 아닌 지원인력으로 여기는 문화는 여전하다”며 “플랫폼 개발기술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관리자가 되어 완전한 디지털 체질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한국 전통 은행들은 수년 안에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연, 김희원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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