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이 떠난 지 3년 〈노회찬 6411〉이 도착했다

7월23일이면 3년이다. 고 노회찬이 떠난 지 3년이 지났고, 우리 곁에 영화 〈노회찬 6411〉이 곧 도착한다.
노회찬과 6411. 많은 이들이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그의 당대표 수락 연설을 기억한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를 출발해 강남구 개포동으로 향하는 노선버스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이 버스는 강남 빌딩으로 출근하는 청소 노동자로 금세 자리가 꽉 찬다. 노회찬은 6411번 버스를 예로 들면서 한국 사회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진보정당을 호명한다. ‘6411 연설’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노회찬의 삶과 진보정당 운동, 정치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목을 〈노회찬 6411〉로 하자는 데 의견이 쉽게 모아졌다.
이 다큐의 공동 제작자는 명필름·시네마6411·노회찬재단. 7월14일, 심재명 명필름 대표·최낙용 시네마6411 대표·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이 9월 개봉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노회찬 6411〉은 어떤 영화인가?
김형탁(이하 김):노회찬이라는 사람을 통해 진보정치가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되었고,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노회찬은 노동운동의 연장으로 진보정치를 생각했고,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여전히 노동운동가로서의 이상을 정치에서 실현하려 했다. 민환기 영화감독(중앙대 영화학과 교수)이 이런 노회찬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담으려 했다. 이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제작 지원을 받고, 지난 5월에 3시간짜리 ‘영화제 판본’으로 상영되었다.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최낙용(이하 최):전주영화제 버전이 첫 번째 편집본이다. 현재 열 번째 편집본이 나왔다. 9월에 개봉하는 버전은 후반작업 중이다. 러닝타임이 2시간 조금 넘을 듯하다. ‘전주 버전’보다는 내면 이야기가 좀 더 풍부하게 들어갈 것이다.
지난해 3월, 심재명 대표가 노회찬재단을 방문해 다큐 제작을 제안했다고 들었다.
심재명(이하 심):한 방송사 PD가 명필름 사무실에 왔는데 이런 말을 했다. ‘방송사에 노회찬 의원 관련한 영상 자료가 꽤 많은데, 영화계에서는 왜 노회찬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을 안 하냐.’ 그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서 정치인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희소하구나 싶었다. 노회찬 다큐를 만들면 의미 있겠다 싶어서 재단에 제안했는데, 재단에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 당시에 다큐 〈노무현입니다〉를 제작했던 최낙용 대표와 다른 프로젝트를 논의 중이었다. 다큐 제작 경험이 많은 최 대표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했다. 그러고 나서 굉장히 빨리 제작이 진행되었다.
김:재단에서는 노회찬 관련 문서 아카이빙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영상 아카이빙’은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명필름의 제안이 반가웠다. 또 3주기를 앞두고서 ‘노회찬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으니, 정말이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웃음).
최:사실 저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또다시 돌아가신 정치인을 다룬 다큐를 만드는 게 조심스러웠다. 이 다큐가 노회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와 같은 꿈을 꾸었던 ‘우리 사회의 수많은 노회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작자로서 영광스러운 기회다.
민환기 교수가 감독을 맡았는데.
심:민 교수는 오랫동안 다큐 작업을 해온 분이다. 이 영화 만들기 전부터 다른 프로젝트 논의를 해왔다. 명필름보다 다큐 작업 경험이 많은 최 대표와 민 교수를 믿고, 의지하면서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공동 제작을 하며 서로 합의한 가이드라인 같은 게 있나?
김:민환기 감독이 처음 재단에 왔을 때 ‘영웅담처럼 그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재단의 생각도 같다. 노회찬이라는 사람이, 그 모습 그대로 관객에게 다가가기를 원했다. 민 감독이 나중에 ‘영웅처럼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스럽다’고 말하더라(웃음). 민 감독이 ‘좀 흐트러진 모습의 영상이 없냐’고 묻는데, 일부러 안 준 게 아니라 정말 없었다(웃음).
심:지나친 감상주의로 흐르지 않고, 인간 노회찬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리자. 그러면서도 진보정치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주관적 해석과 감정이 앞서는 영화는 되지 않게 하자고 했다.
최:민환기 감독이, 한 사람의 고뇌·생각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주자고 했다. 공동 제작사 사이에 소통이 잘되고, 감독과의 호흡도 잘 맞는다. 다큐 작업이 기획에서 제작까지 통상 3년은 걸린다. 이번은 1년 조금 넘은 기간이니 3배속으로 작업하는 셈이다(웃음).
제목은 누가 정했나?
심:(최낙용 대표가 ‘심재명 대표가 제안했다’고 하자) ‘6411번 정신’이랄까, 노회찬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이미지 같았다. 영화 제목을 정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금세 합의했다.
김:첫 제목에서 바뀐 것은 ‘쉼표’ 하나 빠진 정도? 〈노회찬, 6411〉이었는데(웃음). 다큐 제작 전에 마침 이광호 전 〈레디앙〉 편집국장이 〈노회찬 평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친구까지 포함해 꽤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그 자료를 제공했다. 그 밑 작업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최:지난해 7월부터 3개월가량 사전 인터뷰를 했는데, 이광호 작가가 길을 참 잘 잡아주었다. 감독과 조감독 두 명이 몇 개월 동안 방송사에 있는 영상 자료를 거의 다 봤다. 노회찬 의원이 활동했던 1980년대의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을 다룬 프로그램을 한학수 MBC PD가 오래전에 만들었는데, 당시 인터뷰 촬영본 전체를 ‘나중에 역사적 자료가 된다’고 생각해서 다 모아놓았더라. 그 인터뷰 영상 자료가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 영화를 만들면서 노회찬을 잘 아는 이들 30명가량을 인터뷰하고 촬영했다. 한 명당 3~5시간 인터뷰했다. 이 영상은 나중에 재단에서 아카이빙을 할 것이다.
‘6411 서포터즈’를 모집하던데?
심:시민들이 뜻을 같이하거나 응원하고 싶은 영화에는 후원자로 제작에 참여한다. 명필름에서 전태일 열사를 다룬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만들고 있는데, 시민들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참여했다. 이번에도 ‘6411 서포터즈’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이 제작에 참여한다. 신청한 분의 이름을 영화 엔딩크레디트에 올린다(7월19일 현재, 목표로 했던 6411명을 넘어섰다. 7월 말까지 ‘6411 서포터즈’ 가입 신청이 가능하다).
김:이 영화는 상업영화의 개봉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 20개 지역에 〈노회찬 6411〉 무슨 무슨 지역 상영위원회를 꾸리고 있다. 지역의 단체, 노동조합, 시민이 참여하고 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정치를 이야기하는 공간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
최:다큐나 독립영화는 2년 넘게 만드는데, 극장에 걸리는 건 2주를 넘기 힘들다. 그게 한국의 극장 상황이다. 통상적인 배급·상영 방식으로는 이 영화도 2~3주 개봉에 그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극장에서 더 버티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영화 볼 관객을 미리 모아서 극장에 틀어달라고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9월부터 적어도 3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재단의 조직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제작에 참여한 세 사람에게 ‘노회찬이란’?
김:참 어려운 질문인데… 진보정당 활동을 하며 한 공간에서 활동했던 기억이 꽤 있지만 혼연일체가 되어 호흡을 맞추면서 일했나, 자문하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노회찬은 노동운동에서 시작해 진보정당 운동을 했고, 저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진보정당으로 왔다. 상당히 겹치지만 확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때 당시 호흡을 좀 더 맞추었으면… 그가 먼저 간 게 밉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다. 재단 사무총장 일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아쉬운 마음과 상처가 많이 다스려졌다.
최:시종일관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 영화 제작을 위한 인터뷰를 다 지켜보았다. 그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젊은 시절 자신의 꿈을 위해 단 한 번의 벗어남 없이 걸어온 사람이구나’ 싶었다. 살아생전 그 결과를 볼 수 없는 진보정당 운동에 자기 생을 던진 사람. 뜻을 세우고 끝까지 간다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시종여일했던 사람이었다. 내 삶도 돌아보게 되었다.
심:한 시민으로서 저에게 ‘숙제를 안겨준 사람’이다. 그의 마지막이 정말 많은 사람에게 상처와 슬픔과 고통과 회한을 한꺼번에 던져주었다. 이번 영화에서, 그와 인민노련 활동을 함께한 최봉근씨의 인터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노회찬 의원이 사는 것과 하는 것의 불일치, 겉과 속의 불일치, 이런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했고 그런 불일치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 말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말로 다가왔다. 그 불일치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과 숙제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이런 무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 숙제의 일환으로 다큐 제작에 나서지 않았나 싶다.
각자 분노하고 울분에 차 있고 서로를 차별하는 세상에서 공정한 세상을 꿈꾸었던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낀다. 노회찬이 꿈꾸었던 세상을 많은 사람들이 확인하고 환기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치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다면 제작자 입장에서 의의가 있지 않을까.
최:〈노회찬 6411〉을 응원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노회찬재단 홈페이지(http://hcroh.org)에 접속하는 게 제일 빠른 길이다. 개봉 이후에 지역 상영 상황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를 보고서 따뜻해진 마음으로 미래를 생각할 수 있으리라고, 그런 다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영화 〈노회찬 6411〉 예고편: https://youtu.be/sP4ftnIPpG8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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