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들과 모여서 노는 건 너무 좋지만 뭘 먹을지 고르는 건 늘 어렵다. 그럴 때마다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 중식당. 짜장면 먹을지 짬뽕 먹을지 밸붕 염려 따위 안해도 되고 가격도 다른 식당에 비해 저렴하다.

나무젓가락 포장지 뜯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중식당 이름 참 다양하구나 싶다. 코로나19 터지고나서 배달 앱으로 중국음식점 검색할 때도 중식당 이름이 이렇게 많았었나 싶었다. 이게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유튜브 댓글로 “중식당 이름엔 왜 ‘각’이 많이 들어가는지 취재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반가운 마음에 취재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끝이름에 ‘각’보다는 ‘반점’이나 ‘짬뽕’이 들어가는 식당이 훨씬 많았는데 숫자 말고도 그 이름에 놀라운 음식의 역사가 숨겨져 있더라.
중식당 간판 어디까지 세봤니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봤는데 중식당 이름을 글자별로 분석한 건 찾기 어려웠다. 그래, 이걸 각 잡고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을수도 있지... 그래서 직접 중식당 인허가 업무를 하는 구청에 요청해보기로 했다. 서울 25개 구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24개 구청에서 관내 중식당 리스트를 보내왔다.

모아보니 서울만 해도 중식당이 무려 3400곳. 이것도 양꼬치랑 마라탕 전문점은 빼고 계산한 거다. 취재대행소 왱은 이 중에서 ‘각(閣)’ ‘반점(飯店)’ ‘루(樓)’ ‘원(園·院)’ ‘장(莊)’ ‘관(館)’이 포함된 식당을 글자별로 집계해봤다. 요즘 00짬뽕, 00짜장 체인점도 많은 것 같아서 이것도 별도로 분류했다.
글자별로 보면 ‘반점’이 251곳으로 가장 많고, ‘각’은 127곳. 음~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동대문구에 ‘짬뽕각’이란 식당이 있는데 여긴 그 각은 아닌거 같아서 ‘짬뽕’ 쪽에 넣었다. 각 구별로 보면 영등포구와 구로구, 강서구에서 ‘각’이 들어간 식당이 꽤 있었다. 신기한 게 ‘짬뽕’이 들어간 식당도 196곳이나 됐다.
그런데 중식당들은 왜 ‘반점’이나 ‘각’ ‘루’처럼 특정 한자이름을 많이 쓰게 된 걸까.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짜장면박물관. 이 곳을 운영하는 인천 중구 시설관리공단의 김남희 학예사에게 물어봤다.

인천 중구 시설관리공단 김남희 학예사
인천이나 군산 이런 데 많이 분포한 데 있잖아요. 이런 곳들은 대부분 중국집이 숙식을 겸했어요. 거의 대부분 중국에서 오신 분들이고, 산동지방에서 오신 분들이 많았어요. 중국은 대부분 식당 이름 뒤에 각이나 루 자를 많이 붙여요. 그냥 집이란 뜻이거든요. 쓰던 거 그대로 갖고 오시더라고요.
초기 중식당은 지금과는 형태가 완전 달랐다고 한다. 식당과 숙박업소를 겸하면서 음식도 팔고, 손님들이 잠도 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2~3층 건물 형태가 많았고, 식당 이름에도 ‘각’ ‘루’ 이런 이름들이 붙었다. 한국에서 중식당이 생겨날 때는 중국에서 넘어온 이들의 영향으로 이런 이름이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서 ‘반점’이란 말은 고급 호텔을 의미한다.
이런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김남희 학예사
임오군란이 기점이고요. 임오군란을 기점으로 처음 들어오기 시작하고 중국인들이 인천 지역으로 많이 들어왔어요. 상업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 거에요.
중식당 이름 취재하다가 임오군란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임오군란이 한국 중식문화의 시작이란 얘기인데, 이게 무슨 말인지 잠시 부담스럽지만 알고나면 도움되는 우리 역사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임오군란은 1882년(임오년) 그러니까 구한말이라고 부르는 조선왕조 고종 시절 처우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이 일으킨 난을 말한다. 군인들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을 다시 권력의 중심에 복귀시켰는데 이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군대 파병 요청을 한 곳이 바로 청나라 지금의 중국이다.

당시 청나라 군인들이 조선에 들어올 때는 전투군인만 온 게 아니라 지원부대와 청나라 상인도 함께 들어왔다. 이후 개항지였던 인천을 중심으로 청나라 사람들의 거주지가 생겨났고 장사를 할 수 있는 권한도 보장받았다. 그러면서 1900년대초 공화춘이라는 중식당에서 한국 최초의 짜장면이 탄생한다.
한국외대 중국언어문화학부의 이민숙 교수도 중식당 이름이 공간적 의미와 관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민숙 교수는 “‘루’는 집 자체라는 뜻도 있고 찻집, 술집, 무대도 모두 ‘루’라고 불렀다”며 “누각이라고 할 때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나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곳이라는 뜻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중식당은 중국음식만 먹는 곳이 아니라 숙박도 하고, 사람들과 교류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었던 셈이다. 중식을 옛날엔 ‘청요리’라고 불렀는데 지금처럼 대중화된 음식이 아니라 상류층이 즐겨 먹던 고급 요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김남희 학예사
중국집 자체가 프라이빗하게 운영됐었던 거에요. 지금처럼 오픈홀에서 테이블에 의자 놓고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다 룸이 있어서 그 안에서 조용하게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공간인거죠.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선생님이 그랬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무심코 봤던 중식당 간판도 이제는 좀 더 관심있게 보게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