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탄생한 순간
20세기를 통틀어 대중음악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을 꼽으라면 1982년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두번째 앨범 <Thriller>가 발매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이 앨범이 가진 역사적 의미는 두말하면 잔소리죠.

이 앨범의 의미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라거나, ‘가장 훌륭한 뮤직비디오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사실이나, ‘그래미에 가장 많이 노미네이트된 앨범’ 따위가 아닙니다. 이 앨범의 가장 큰 의미는 흑인이 미국 대중음악, 아니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마이클 잭슨은 유년 시절 이미 ‘The Jackson Five’라는 형제자매로 구성된 그룹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어린 시절 스타의 삶을 살았던 것이죠.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홀로서기에 나서게 되는데요. 그의 판단은 적중했죠.

1979년 퀸시존스가 프로듀싱한 그의 정규 1집은 총 2,000만장이 팔리면서 흑인음악인의 미국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성공은 단순히 앨범 판매량으로만 평가된 것이 아니었죠. 평단에서도 그의 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래미 어워드’만큼은 그의 성공을 반가워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자 평단에서의 좋은 평가를 받은 앨범이었던 마이클 잭슨의 정규 1집은 그해 그래미에서 ‘최우수 남자 알앤비 보컬 퍼포먼스 상’ 단 하나 받고 ‘땡’이었죠.
그의 앨범에 대한 이러한 저평가가 ‘흑인’이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이클 잭슨은 음악종사자들 사이에서 자신을 향해 대하는 태도에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결국 정규 1집 성공에 부족함을 느끼고, 더 큰 성공에 목말라하죠.
그리고 3년이 흐릅니다. 1982년 11월, 그는 다시 한번 퀸시존스와 손을 잡고 <Thriller>라는 이름으로 정규 2집을 발표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세상이 뒤집혔죠. 그야말로 황제의 탄생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전 세계 150개국에서 발매되어 현재까지 1억 5,000천만장이 팔려나갔습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었습니다. 아마 이후에도 이런 이력을 가진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해보일 정도죠.
이후에 발표된 <Bad>, <Dangerous>, <History>까지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 성과물은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단적으로 그가 가장 실패했다고 느꼈던 앨범인 생전의 마지막 앨범 <Invincible>은 고작(?) 800만장을 팔아치웠죠.
심지어 마이클 잭슨은 <Invincible> 앨범의 실패(?)에 대한 충격으로 오랜 칩거에 들어가기도 했죠. ‘대중음악’의 황제란 그런 자리였습니다.
흑인을 넘어, 미국인으로
황제라는 단어는 아무에게나 쓸 수 없죠. 마이클 잭슨은 여느 팝 가수들과는 뚜렷하게 달랐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쓰는 가사는 지향점이 뚜렷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향하는 음악 또한 명확했습니다. 인종차별에서부터 편견에 대한 도전, 그리고 평화까지. 마이클 잭슨은 ‘사랑 노래’ 일색이던 당시의 대중음악 시장을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진 ‘지향성’있는 음악으로 뒤집어 버렸죠.

뿐만 아닙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80년대 이후 댄스음악의 기본이자 기초가 됩니다. 아직까지 마이클이 쌓아온 음악적 범주에서 벗어난 댄스음악은 단언컨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마이클 잭슨이 만들어낸 댄스음악의 기본적 퍼포먼스도 마찬가지였죠. 그야말로 댄스음악의 ‘교과서’가 되어 버린 것이죠. 춤 좀 춘다는 사람들이 40년이 지난 아직도 문워크로 시작해서 빌리진의 골반 댄스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이 춤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흑인이라는 그의 인종이죠. 대중음악의 중심을 만든 사람은 흑인이라는 점입니다. 마이클 잭슨 이전까지 흑인은 미국 대중음악의 변방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은 지금까지도 여전한 미국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Motown’이라는 흑인 기획사의 성장 또한 한 몫을 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황제가 될 수 있는 발판은 ‘Motown’이라는 기획사가 마련했다고도 할 수 있죠.(‘Motown’의 성공과정은 영화 <드림걸스>를 보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마이클 잭슨의 성공 이후 미국 사회의 흑인들은 미국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80년대 이후가 되어서야 흑인음악인들이 본격적으로 그들의 활동 범위를 미국 전역으로 넓혀나갈 수 있었죠.
‘마이클 잭슨’이라는 장르
더욱 기억해야 할 점은 마이클 잭슨이 성공 이후에도 인종차별 문제를 항상 그의 음악에 녹여냈다는 부분입니다.
유색인 지위향상협회(NACCP Image Award)에서는 그의 공로를 높이사 유색인들의 인권신장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했죠.

이렇듯 그의 활동 영역은 단순히 음악 활동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음악 하나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면서 인종 문제에서부터 세계 평화의 문제, 환경에 대한 문제, 언론에 대한 비판의식 또한 함께 팔려나가게 되었던 겁니다. 그가 만든 음악 하나로 세계가 변화될 수는 없었겠지만, 그가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가치’는 수억 장이 팔려 나갈 수 있었죠. 그는 그냥 음악을 했지만, 음악 그 이상을 보여줬던 겁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굳이 장르로서 구분하면 ‘댄스’일 겁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락’이라고 부른다고 어색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의 노래 <Beat it>은 훌륭한 기타 리프까지 지니고 있는데요.
그 부분은 연주한 기타리스트는 무려 Eddie Van Halen입니다. 당시 최고의 락 밴드였던 ‘Van Halen’의 기타리스트였죠. 이후에도 <건즈 앤 로지즈>(Guns N' Roses)의 기타리스트였던 Slash가 마이클 잭슨의 앨범에 참여하는 등 그의 음악에서 ‘락’의 냄새가 짙게 묻어나게 되죠. 무엇보다 마이클 잭슨이 지향했던 음악적 가치는 ‘사회의 변혁’에 있었습니다. 음악으로 세상이 더 좋아졌으면 했던 것이죠.
이런 음악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댄스음악이면서, 락 밴들의 기타리스트들이 참여했고, 가사는 사회적 변혁을 꿈꾸는 음악?
그냥 이 음악은 ‘마이클 잭슨’의 음악입니다. 그의 이름이 곧 장르였던 겁니다.
‘마이클 잭슨’을 넘어설 음악을 기다리며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삶은 무엇보다, 누구보다 굴곡이 많았습니다. 경제적인 보상으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들과 폭력으로 얼룩진 삶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그는 흑인이라는 정체성과 사회적 약자로서 느꼈던 스스로의 과거를 성공 이후에도 음악에 녹여내려 했을 겁니다.
2009년 6월 25일. 팝의 황제가 죽었습니다.
엄청난 뉴스였죠. 그에게 등을 돌렸던 언론이 그를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죠. 사망 소식을 최초로 보도했던 TMZ와 뉴욕타임즈는 서버가 폭파했습니다. 구글은 마이클 잭슨 검색어가 갑자기 폭등하자 DDoS 공격으로으로 오해하고 30분동안 마이클 잭슨 관련 검색을 차단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조문 신청객이 전세계적으로 3억명이 넘었으며 장례식을 생방송으로 시청한 사람이 미국에서만 3,000만명을 넘었습니다.

그에 대해 악의적 보도로 일관했던 언론 또한 그를 애도했습니다. 1차 아동 성추행 사건의 당사자는 그의 부모가 합의금을 목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고 양심선언까지 했죠. 그에 대한 오해가 벗겨질수록 그에 대한 추모는 열을 더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다시금 제대로 기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던 것이죠.
그가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에 거대한 변환을 시도했던 때는 1982년이었습니다. 그의 도전은 엄청난 성공으로 돌아왔고 대중음악의 중심에 흑인이 설 수 있도록 만들었죠. 어쩌면 그가 만든 이러한 기반은 ‘흑인’만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백인‘만’이 독점했던 대중음악 시장에 돌멩이를 던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판이 뒤집어지고, 40년이 지났습니다. 언젠가부터 미국의 음악시장에 아시안 7명이 차트를 휩쓸고 있습니다. 댄스음악인지, 힙합인지 모를 장르를 통해 말이죠. 거기에 가사는 너무나도 희망찹니다. ‘허세’와 ‘못된 짓’으로 점철되었던 최근 노랫말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죠.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죠.

앞으로 마이클 잭슨에 비견될 변화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7명의 아시안, 정확히는 방탄소년단이라는 한국인들을 지켜보면 될 듯합니다. 이들이 만들어 갈 거대한 시장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