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 골프소설 12] 로마와 중국의 기원설

2021. 8. 7.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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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카로 불린 게임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그렇게 따지자면 잉글랜드가 홀란드보다 골프 비슷한 놀이는 더 먼저 있었다고 해야죠.”

바닷가를 등지고 다시 박물관 건물로 향하면서 엔젤라 관장은 금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네덜런드의 기원에 대한 논란을 일축하듯 그녀는 잉글랜드의 골프에 대해 힘을 주어 말했다. 잉글랜드에서도 독자적으로 행해진 캄부카(CAMBUCA)라는 놀이가 있었다.

런던 인근의 서쪽에 위치한 글로스터 성당은 앵글로 색슨족들이 서기 7세기경에 세웠는데 그 성당의 뒷뜰에서는 늘상 사람들이 모여 공치기를 하곤 했다. 일종의 필드하키같은 형식으로 진행됐거나 비슷한 류의 놀이였고, 주로 상류사회나 귀족, 왕실에서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성당의 동쪽 뒷뜰에 위치한 거대한 창문을 가리켜 ‘위대한 동쪽창문’(THE GREAT EAST WINDOW)이라고 불렀다. 그 창문은 성 요한, 성 마리아등 성당과 관계된 인물들이 대형의 스테인드글래스로 새겨져 있었다.

수많은 창문 그림들 중 아래 쪽에는 둥그런 모양의 창문에 막대기를 들고 공을 치려는 사람이 새겨진 스테인드 글래스가 특이하게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그 주변의 전투 장면이 새겨진 스테인드 글래스들은 1350여년에 제작됐고 특별히 ‘크래시 전투의 창문’ ‘THE BATTLE OF CRECY WINDOW’라 불렸다. 골프와 비슷한 형상을 묘사한 창문의 그림이 크래시 전투와 연관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전체 창문은 크레시 전투를 상징하고 있었다.

크레시 전쟁이란 1347년 잉글랜드와 프랑스간의 영토 싸움이었는데 프랑스의 영토인 크레시에서 보기 드문 전투가 벌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전쟁에서 잉글랜드군은 신무기로 새로운 활을 제조했고, 프랑스군은 예전의 전통적인 기사들의 기병이 선발대였다. 숫자도 잉글랜드군은 1만2천여 명이었지만 프랑스는 3만5천여 명으로 3배에 다달았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만든 2미터가 넘는 길이의 새로운 활은 프랑스 기사들의 갑옷을 뚫고 들어가 말과 기사들을 죽였고 사기가 오른 잉글랜드군이 대승을 했다.

이 전투 이후로 중세시대의 군 전략은 새로운 형태로 바뀌게 됐고 위엄당당하던 기사의 시대가 몰락하는 계기가 된다. 이 전투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지리했던 백년전쟁의 초반에 있었고 1337년에 시작한 백년전쟁은 1453년까지 1백16년 동안 계속됐다.

“잉글랜드는 기원설에 대해 별반 이의나 주장을 제기하지 않았나 보죠?”

제임스가 엔젤라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전방을 향해 눈을 떼지 않은 채 엔젤라는 “캄부카라는 이름이 엄연히 있었고 또 스코틀랜드건 잉글랜드건 그레이트 브리튼은 한나라였다”고 답변했다. 다시금 박물관 카페로 들어간 두사람은 좀 전에 바닷가가 보이는 창가의 일인용 의자에 각각 앉았다. 다시 커피를 주문하면서 그녀의 부연 설명은 계속됐다.

오래된 전설에 의하면 로마군들이 골프 비슷한 놀이를 즐긴 시기는 BC300년 경 부터로 알려졌다. 기원전 1세기 케사르(CAESAR)가 통치하던 로마제국은 전 유럽을 통치하고 있었고 그 정복사업이 한창이던 5세기 쯤 스코틀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마원정병들이 당시 스코틀랜드를 점령하고 야영지에서 행했던 놀이 중에 파가니카(PAGANICA)라는 놀이가 있었다.

두 편으로 갈라서 공을 몰아 상대방의 진영에 있는 목표물을 맞추거나 집어넣으면 이기는 경기였다. 당시의 공은 새의 깃털을 짐승 가죽에다 집어넣어 꿰맨 뒤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군들은 이 경기를 전쟁만큼이나 재밌어 했고 이 경기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려 정복 사업에도 힘이 절로 났었다는 전설도 있었다는 것이다. 증거가 될 만한 역사적인 기록이나 고증에 대해서는 엔젤라도 말끝을 흐렸다. 골프와의 연관성을 찾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 차이가 있는것 같다는 의미였다. 스코틀랜드를 침략해 4백년 이상 캘트족을 점령하고 스코틀랜드의 야영지 한쪽에서 그렇게 행해졌던 로마군들의 놀이가 2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용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는 신화적인 전설에 그친다는 의미였다.

중국의 추이환이라 불린 게임

기원의 마지막 가설 중국, 그 진실은

제임스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원설의 마지막이며 최근들어 인터넷에 올라있는 중국의 골프 기원설에 대한 주장을 엔젤라가 아는지 궁금했다.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타고 전래된 놀이라는 설은 일축해도 되죠?”

단정적이듯이 던지며 제임스는 엔젤라의 반응을 살폈다. 엔젤라는 재론의 여지는 없다는 듯 제임스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요. 주장은 아무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자유 의사니까 말이죠.”

인터넷에 떠 있는 중국의 주장은 이랬다. 궁궐에서 막대기로 공을 때리던 놀이가 있었는데 여자, 혹은 남자들끼리 함께 걸어가면서 공을 쳤으며 어느 한 지점에 있는 작은 구멍에 그 공을 집어넣는 놀이라는 것이었다. 그 시기는 서기900년 경의 당나라 말, 혹은 남당 시절부터 명나라 초기인 서기1300여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놀이가 중국 상인들이나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얘기였다. 만약 7백 년도 훨씬 전에 그 무역상들이 이 놀이를 유럽으로 가져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실크로드를 타고 티벳의 고원지대와 네팔의 험준한 히말라야까지를 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스코틀랜드보다 최소한 5백 년 앞섰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당나라가 멸망하던 서기 9백 여년 경 ‘추환도 벽화’라는 당시의 그림에서 골프치는 모습이 있다는 설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12세기부터는 ‘추이환’이라는 이름으로 골프경기가 성행했으며 ‘환경’이라는 골프 규칙 책자도 만들어져 전해왔다는 설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들의 문헌인 환경에 따르면 공이 놓여져 있는 평지는 ‘평’, 비탈은 ‘요’, ‘철’, 아웃 오브 바운스는 ‘외’ 등으로 나눴다.

나무로 만든 공은 ‘권’, 클럽은 ‘구봉’, 그리고 티샷은 모래 등에 볼을 올려놓고 티를 할 수 있는 ‘초봉’이라 불렸고 둘째샷은 ‘이봉’이었다. 한 홀은 파 3이고 버디를 할 경우 ‘일주’, 홀인원은 ‘이주’라 불렸다. 무승부이면 오늘날의 연장전이나 서던 데스처럼 다음날 재경기를 했다고 한다.

엔젤라는 별 관심없다는 투의 반응을 보였다. 기원만 주장하고 그 이후 수백 년 동안 골프에 대한 연결 고리가 없는 상황에서 말해본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투였다. 영국이 19세기 후반 아시아 여러 식민지에 골프를 전파했는데 그러다 보니 심지어는 캄보디아에서 골프가 기원됐다는 말도 있다면서 엔젤라는 그런 근거를 가지고 몇 백년 전을 더 거슬러 가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임스를 쳐다보는 엔젤라의 눈빛이 중국의 기원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말들이라는 뜻을 내포했다. 내친김에 제임스는 골프가 전파되던 19세기의 아시아 국가 중에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물론 알고는 있죠. 홍콩과 일본을 위시해서 한국에도 19세기말에 골프장이 생긴걸로 알고 있지만 상세한 내용에 대해선 별로….”

미안하다는 투로 엔젤라는 말끝을 흐렸다. 하긴 골프 역사에 대한 저서를 수십 권 이상 들여다 본 제임스 역시 영어로 된 골프 역사책에는 한국에 전래된 골프에 대한 내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단지 한 두권의 책에 “1889년 원산항에 영국인들이 세관을 건설하면서 6개 홀을 지어 골프를 쳤다”라는 짤막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다시 주문한 스코틀랜드 커피의 향이 은은하게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완벽한 증거를 가지고 있죠. 바로 6백 여년 전에 있었던 스코틀랜드 제임스2세 국왕의 골프금지령이 문서로 기록된 엄연한 증거이죠.”

커피 한모금을 마시며 엔젤라는 골프금지령으로 오늘 아침의 만남에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보였다. 그 녀는 다시 6백 년 전의 목동 헨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 필자 이인세 씨는 미주 중앙일보 출신의 골프 역사학자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우승을 현장 취재하는 등 오랜 세월 미국 골프 대회를 경험했고 수많은 골프 기사를 썼고, 미국 앤틱골프협회 회원으로 남양주에 골프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저서로는 <그린에서 세계를 품다> <골프 600년의 비밀>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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