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SKY)' 대학 출신 20대 여성은 왜 도배사가 됐을까 [인터뷰]

문주영 기자 입력 2021. 7. 14. 10:57 수정 2021. 7. 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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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청년도배사 배윤슬씨가 지난 10일 경기 남양주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도배 작업을 하다가 잠시 일을 쉬고 있다. ⓒ배윤슬

자그마한 체구의 한 여성이 있다. 그는 통이 넓은 작업복과 안전화를 착용하고 매일 새벽 5시 집을 나서 경기 신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출근한다. 오늘도 새로운 벽 앞에 서서 벽지를 붙이는 그는 놀랍게도 20대 여성이다. 그것도 소위 ‘스카이’로 불리는 명문대 출신이다. 한때 사회복지사였던 그는 도대체 왜 도배사가 됐을까.

청년도배사의 삶을 2년째 살아가는 그는 올해 28살의 배윤슬씨다. 그는 최근 전화인터뷰에서 “졸업 후 사회복지사로 일했지만 업무가 내 이상과 달랐고, 조직문화의 불합리성을 느껴 기술직을 찾아보게 됐다”며 “비록 도배일이 사회적으로 아직 크게 인정받지 못하지만 이 일을 시작한 후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이화외고와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그가 일명 노가다로 불리는 도배사로 ‘전향’한 데는 불투명한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배씨는 “솔직히 도배 일은 도전이었다기보다는 퇴사를 위한 도피처로 선택했던 일”이라며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잘 맞았고 무엇보다 투자한 만큼 실력이 늘어 일터에서 내 가치를 인정받는 게 좋았다”고 밝혔다.

“고교 시절 꿈이 사회복지사여서 대학도 관련 학과로 갔고, 첫 직장도 노인복지관이었어요. 일 자체는 재밌었지만 폐쇄된 조직문화가 영 익숙하지가 않았어요.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고 하면 ‘그냥 하던 거 열심히 하라’고 하고, ‘너 없이도 이 일 할 사람 많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조직 안에서 제 존재가치를 찾기가 힘들었죠.”

다행히도 부모님은 딸의 선택을 지켜볼 뿐 큰 반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시 퇴사 이유와 향후 계획 등을 담은 퇴사계획서를 작성해 부모님께 드렸더니 제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구나라고 느끼셨던 것 같다”며 “이후 도배 학원에서 일을 익힌 뒤 곧바로 건설현장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도배사로서 초보 딱지는 뗐지만 기술자라고 불리기엔 갈 길이 멀다는 그는 현재 도배 소장·반장·팀원 등 총 5명으로 이뤄진 팀에서 일당을 받으며 일한다. 가정집 일보다는 벌이가 적지만 건설사를 통해 안정적으로 일감을 제공받고 소비자 응대를 직접 하지 않는 것 등은 장점이다.

그러나 힘든 일도 적지 않다.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해 일을 시작한지 2개월 만에 7㎏가 빠졌고, 온 몸은 성한 곳이 없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주 6일 근무라 친구들 만날 시간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도배 일은 노력한 만큼 성장하는 것이 보이고 회식이나 모임 등 다른 사회생활의 비중은 적어서 만족스럽다”며 “또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스스로를 돌아보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과거와 현재의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배씨는 도배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던 친구들까지 요즘엔 자신을 응원해준다고 밝혔다. 그는 “친구들의 경우 부모님이 권해서, 또는 당시 얼떨결에 특정 회사 채용이 나오니 시험봐서 현재 직장에 들어간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보니 적성에 잘 맞지 않는 것 같고 그런 상황에서 기술직으로 전향한 나를 통해 자신들의 직장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귀한 딸이 험한 일을 할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던 배씨 부모님들도 이제는 그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고 있다. 배씨는 “얼마전 새로 이사간 집 도배를 직접 했더니 부모님들이 기뻐하시더라”며 “지인들에게 입소문도 내주시고, 밖에서 들은 도배 관련 이야기들을 전해주시며 조언해주신다”고 말했다.

배씨는 도배사로서의 경험을 담아 <청년 도배사 이야기: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궁리출판)이라는 책으로 최근 출간했다.

“가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젊고 똑똑한 아가씨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말하는데 남들의 평가와 시선은 한순간이잖아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몸쓰는 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지만 몸으로 터득한 기술도 가치있고, 어떤 부분에선 경쟁력이 있음을 다른 청년들도 생각해봤으면 해서 책을 내게 됐어요”

향후 계획을 묻자 그는 “단기적으론 1~2년 내 소장님으로부터 독립해 아파트 한 동을 책임지고 맡고 싶다”며 “또 내 팀원을 뽑아 가르치는 것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여행과 집꾸미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두 분야를 접목해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는 것이 장기적인 꿈”이라고 밝혔다.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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