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타투'에 투자하게 만든 '아재 3인방'

배우 함연지가 팔과 가슴, 배에 물을 묻혀 쓰는 타투를 한 채 사진을 찍고 있다. / 함연지 인스타그램 캡처

함영준 오뚜기 회장의 장녀이자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함연지는 최근 파격적인 사진으로 화제를 모았다. 평소 밝고 명랑한 이미지였던 그가 팔과 가슴, 배에 강렬한 문신을 새긴 것. 하지만 이 문신은 알고보니 물을 묻혀 피부에 붙이는 타투 스티커였다.

함씨처럼 요즘은 스티커를 이용해 타투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피부에 바늘을 찔러 넣어 모양을 그려 넣는 타투와 달리 아프지 않고 며칠만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커 타투는 가까이서 보면 스티커 티가 나고 며칠 못 가 조금씩 떨어져 지저분해 보인다.

인체에 무해한 잉크를 사용해 피부에 즉석에서 타투를 새겨주는 프링커. 계곡, 바닷물에서도 지워지지 않지만 비누를 이용해 문지르면 간편하게 지울 수 있다./ 프링커코리아

일반 타투와 스티커 타투의 단점을 모두 보완한 프링커(prinker)가 주목받는 이유다. 프링커는 가벼운 소형 프린터로 신체 부위에 올려놓고 쓱 밀어주기만 하면 원하는 모양의 타투를 새길 수 있다. 한 번 그려 놓으면 24시간 정도 유지된다. 지우고 싶을 땐 비누로 간단히 지울 수 있다. 계곡, 바닷물에서도 문지르지만 않으면 지워지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 제품은 삼성 출신 아재 셋이 만들었다. 셋 모두 어쩐지 타투와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실제로도 이 제품을 개발하기 전까지 타투를 해본적도 없단다. 이 아재들이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나와 어떤 일들을 벌인 건지 이종인(51) 프링커코리아 대표를 인터뷰했다.

프링커코리아 이종인 대표./ 프링커코리아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직장 생활을 20년하고, 스타트업을 창업해 6년째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 50대 아재입니다. 대학 3학년 아들, 중 2 딸을 둔 평범한 아버지기도 해요.”

-프링커 개발 배경이 궁금합니다.

“공동 창업자 윤태식(41) 운영이사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어요. 고통 없고 디자인이 다양하며, 원할 때 지울 수 있는 타투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삼성 사내벤처 조직인 C-Lab을 통해 콘셉트를 검증한 뒤 2015년 스핀오프 기업으로 나와 새롭게 출발했어요.”

프링커코리아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데일리 타투 기계 프링커./ 프링커코리아

-세계 최초 데일리 타투 기계라고 하는데 개발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 신경쓴 부분은 어떤 건가요?

“기존에 한 번도 본 적 없던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이기에 기기, 잉크, 프라이머(잉크가 피부에 잘 고정되도록 도와주는 액체), 서버, 앱 개발 등 모든 부분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어요.

새 스마트폰을 개발한다고 하면 기존 시장의 스마트폰을 분석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겠지만 프링커의 경우에는 참고 제품이 아예 없었어요. 시장과 잠재 고객을 분석하고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할 지, 해당 제품의 인증이나 규제, 수출 신고 항목은 또 무엇인지 등 모든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검토해야 했어요.

이 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화장품 잉크 제조였어요. 피부에 직접 닿는 것이기 때문에 안전해야 하고 또 타투의 특성상 쉽게 번지거나, 지워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해서 신경 쓸 부분이 많았어요. 이 기술은 저희의 가장 큰 경쟁력이기도 해서 개발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프링커코리아 공동창업자들. 왼쪽부터 이규석 개발이사, 이종인 대표, 윤태식 운영이사./ 프링커코리아

이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9년간 잉크젯용 프린터 잉크를 개발했다. 윤 운영이사는 사업기획에 몸담았다. 이규석(43) 개발이사는 하드웨어 엔지니어였다. 핵심 기술인 잉크 부문의 전문가와 기계 전문가, 사업 기획까지 사업에 필요한 3박자가 고루 갖춰진 팀이었다.

-아이디어와는 별개로 20~30대가 주로 하는 타투 영역에 아재들이 뛰어들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타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시제품 개발 때는 몸 이곳저곳에 그림을 그리고 다녔다고요.

“프링커는 영구적인 타투와 직접 경쟁을 하진 않습니다. 타투는 한 번 하면 지우기 어렵지만 프링커는 데일리 타투로 피부에 원하는 그림을 그려 축제나 이벤트를 마음껏 즐기고 다음날 깨끗이 지운 상태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죠.

시제품 개발 당시 몸 이곳저곳에 타투를 한 사진./ 프링커코리아

시제품 개발 때는 우리 몸이 그냥 캔버스고 실험도구였습니다. 한창 개발할 때는 양쪽 팔과 다리에 빈틈없이 그림을 그리고, 내구성 평가를 위해 그대로 퇴근하기도 했습니다. 온 몸에 그림을 그리고 퇴근하는 모습이 이상해보였을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뭐 어떤가요. 이게 우리의 일인데요.”

-프링커의 주 타겟층이 궁금합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여러 목적으로 프링커를 사용하고 있어요. 기업 부문(B2B)으로 보면 이벤트, 행사 운영 회사부터 과학관이나 천문대 같은 일반 관람객 대상 전시 공간,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나 방과 후 수업, 학원 등에서 활용을 하고 있어요. 스포츠 경기를 운영하는 구단이나 테마파크, 워터파크에서도 프링커를 찾고요. 저희 제품을 이용해 해변이나 공연장 같은 곳에서 서비스를 해주고 1회당 비용을 받는 소규모 사업자들도 있어요. 해외 브랜드와 협업을 하기도 했어요. 루이비통, 샤넬, 지방시, 입생로랑, 구찌 등 명품 브랜드를 포함한 다양한 회사들도 홍보에 프링커를 활용했죠.

일반 고객(B2C)은 개인적으로 개성을 표현할 때나 홈파티 때 많이 활용해요. 가장 큰 매출처인 북미 시장의 경우 홈파티를 열면 아이들을 위해 페이스 페인팅이나 광대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시간당 약 200달러 정도가 들어요. 여기에 돈을 쓰는 대신 프링커를 사용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죠.”

CES 2020 프링커코리아 부스를 방문한 이들이 프링커를 이용한 데일리 타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링커코리아

-해외에서 인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뭘까요.

“지난해의 경우 해외 매출이 85% 이상이에요. 52개국에 102만달러를 수출했어요. 아무래도 피부 표현이라는 문화에 다소 보수적인 국내 시장보다 해외 시장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공략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실제로 프링커는 해외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해외 매체에 더 많이 소개됐어요. 그래서 해외에서 개발, 생산된 제품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한국 제품이에요.(웃음) 최근에는 국내 시장에서도 인지도를 쌓으면서 판매 활동을 강화하고 있어요.”

-코로나로 모임, 외부활동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어려운 점은 없나요.

“코로나로 이벤트, 축제, 전시 등 많은 이들이 모이는 환경 자체가 급격히 줄었어요. 지난해의 경우 미국 최고의 뮤직 페스티벌로 알려진 ‘코첼라’의 초청을 받아 홍보를 겸한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이것도 코로나로 인해 취소됐어요. 국내외에서 계획 중이던 여러 행사와 고객들의 사업 계획 등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어요.

프링커를 이용해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인체에 무해한 잉크를 사용해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프링커코리아

하지만 코로나 이전에 비해 매출은 오히려 증가했어요. 코로나로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울감, 무력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졌잖아요. 저희는 이 부분에 주목해 실내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활동 중 하나로 프링커를 홍보했어요. 실제로 고객들 중에는 프링커로 다양한 그림이나 문구를 피부에 그리고 이를 SNS에 올리거나, 아이와 함께 다양한 타투를 재밌게 즐기는 분들이 많았어요.

프링커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8000여가지 타투 디자인을 제공한다. 사용자는 원하는 이미지나 문구를 직접 디자인해 쓸 수도 있다./ 프링커코리아

프링커는 기기와 연동된 애플리케이션에서 제공하는 8000여가지 타투 디자인 외에도 직접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나 문구를 그리거나 새겨 넣을 수도 있거든요. 교내 과학수업, 체험활동 등에도 프링커가 적극적으로 활용돼요. 이런 부분들 덕에 코로나에도 매출이 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프링커가 소비자들의 개성을 마음껏 표출하는 토탈 피부표현 솔루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제품 개발과 상품화에 주력할 예정이에요. 또 피부에 원하는 디자인을 안전한 화장품 잉크로 표현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메이크업 기기 개발도 진행 중이고요. 접착식 메모지를 대표하는 포스트잇처럼 프링커도 이 분야의 대명사로 거듭나는 게 저희들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글 와이낫 포도당
newckddjq@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