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건너온 비운의 명차, 쌍용 칼리스타


1990년대에는 수많은 명차가 등장했다. 어찌나 많은지 일일이 이름을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덕분에 과거 국산차 시장은 세그먼트를 불문하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파격적인 모험을 시도한 차가 있었으니, 바로 쌍용 칼리스타다.


칼리스타의 탄생 배경

1976년 등장한 리마(Lima)

칼리스타의 역사는 영국의 백야드 빌더(Backyard Builder) ‘팬더 웨스트윈즈(Panther Westwinds, 이하 팬더)’에서 시작한다. 백야드 빌더란 말 그대로 뒷마당에서도 조립할 수 있는, ‘키트 카(Kit Car)’를 만들어 파는 소규모 제조사를 뜻한다. 1972년, 재규어 SS100의 레플리카 J72로 재미를 본 팬더는 3년 뒤 부가티 로얄(Royale)을 재해석한 드빌(De Ville)을 선보이며 조금씩 인지도를 쌓았다. 그리고 이듬해, 칼리스타의 전신 리마(Lima)를 출시했다.

리마의 특징은 재규어 SS100 등 고전 영국 스포츠카를 오마주한 디자인과 경량화 설계, 단순한 기계 구조다. 보닛 아래에는 복스홀 비바(Viva)에 들어갔던 직렬 4기통 2.3L 가솔린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108마력을 냈다. 3년 뒤에는 직렬 4기통 2.3L 가솔린 터보 엔진을 품은 고성능 버전도 선보였다. 최고출력은 178마력. 0→시속 100㎞까지 6초 만에 달렸다.

그 시기, 업무차 영국을 방문했던 진도모피 김영철 부회장은 리마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소위 ‘자동차 덕후’였던 그는 팬더에 대해 수소문하던 중, 회사가 파산 직전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김영철 부회장은 팬더를 인수해 드빌과 J72 생산을 중단하고 리마 판매에 집중했다. 그리고 1982년, 리마의 후속 모델 칼리스타를 출시했다.

칼리스타는 그해 10월 영국 버밍엄 모터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선주문만 120대를 기록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칼리스타의 차명은 그리스어로 ‘작고 예쁘다’를 뜻하는데, 그에 걸맞은 아담한 덩치를 자랑했다.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3,920×1,760×1,300㎜로 1세대 기아 프라이드 베타(3,935×1,605×1,455㎜)만큼 작았다.

안팎 디자인은 클래식하다. 메시 타입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 커버, 길게 늘인 보닛으로 예스러운 느낌을 살렸다. 마차에서 유래한 두툼한 좌우 펜더도 인상적이다. 실내는 이탈리아 호두나무 원목 우드 트림과 원형 다이얼 계기판, 나르디(Nardi) 스티어링 휠, 천연 가죽시트로 구성했다.

파워트레인은 세 가지. 포드에서 가져온 직렬 4기통 1.6L 가솔린 엔진과 V6 2.8L 가솔린 쾰른(Cologne) 엔진, V6 2.9L 가솔린 쾰른 엔진을 마련했다. 최고출력은 각각 96마력, 135마력, 145마력을 냈다. 변속기는 3단 자동변속기와 4단 수동변속기, 5단 수동변속기 중 고를 수 있었다.


한국으로 들어온 칼리스타. 결과는?

1980년대 중반부터 판매 및 경영 부진을 겪던 팬더는 1987년 쌍용차 손에 들어갔다. 당시 김석원 쌍용차 회장은 제작 공정을 익히기 위해 한국 엔지니어를 영국에 파견하는 등 투자를 진행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장에선 수작업 조립 방식이 맞지 않다고 판단해, 팬더의 생산 설비를 평택 공장으로 옮겨 제작에 들어갔다. 그렇게 1992년 3월, 칼리스타가 국내에 데뷔했다.

파워트레인은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엔진과 V6 2.9L 가솔린 쾰른(Cologne) 엔진 두 가지. 최고출력은 각각 119마력, 145마력을 냈다. 변속기는 5단 수동변속기 또는 4단 자동변속기를 짝지었다. V6 2.9L 가솔린 모델은 0→시속 100㎞까지 7.9초 만에 다다랐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208㎞였다.

차체는 보디-온-프레임 구조. 겉 패널은 알루미늄 합금과 플라스틱으로 빚어, 공차중량은 1,100㎏으로 가벼웠다. 서스펜션은 앞 더블 위시본, 뒤 5링크 리지드 액슬 구조다.

쌍용차는 연간 ‘내수 100대, 수출 200대’를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가격. 쌍용차는 2.0L 가솔린 3,170만 원, 2.9L 가솔린 모델은 3,670만 원으로 책정했다. 당시 판매하던 대형 세단 기아 포텐샤 3.0(3,130만 원)과 현대 뉴그랜저 3.0(3천490만 원)보다 비쌌다. 차의 매력을 떠나,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더불어 2인승 로드스터에 대한 인식 부족과, 당시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았던 디자인은 소비자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부진을 면치 못하던 칼리스타는 1994년, 출시 2년 만에 후속 없이 단종했다. 총 78대를 생산‧판매했으며, 그중 대부분은 해외로 수출했다.

글 최지욱 기자
사진 각 제조사, 최지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