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매트릭스: 리저렉션> (The Matrix Resurrections, 2021)
글 : 양미르 에디터

<매트릭스>(1999년)는 여러모로 세기말의 감성을 잘 담은 SF 블록버스터의 수작이었다.
당시 'Y2K'가 올 것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설정과 이를 저지하려는 구원자의 존재에 열광했다.
<매트릭스>는 기술적으로도 한 단계 진보한 작품이었는데, '불릿 타임' 기법(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그 장면)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받는 일등 공신이었고, 단골 패러디 소재가 됐다.
여기에 마릴린 맨슨의 'Rock Is Dead', 롭 두건의 'Clubbed To Death', 람슈타인의 'Du Hast' 등 하드코어 테크노, 인디스트리얼 계열 뮤지션의 히트곡들로 채워진 OST는 영화의 독특함을 배가하는 요소였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답게, <매트릭스>는 2편 <리로디드>(2003년)와 3편 <레볼루션>(2003년)을 만들면서 '3부작'의 형태로 이어졌으나, 마지막 <레볼루션>은 평단의 호평을 끌어모으는데 실패했다.
로튼 토마토 기준(12/22 현재) 1편 88%, 2편 73%로 '프래쉬 인증' 마크를 획득했으나, 3편은 35%를 기록하며 '실망스럽다'라는 총평을 얻었던 것.
<매트릭스>를 통해 '워쇼스키 형제(현재는 자매)'가 할리우드에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그들도 할리우드의 속편 제작 시스템이나, 자본력에 의해선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부제 '레볼루션'(혁명)이 사실상 1999년에 등장한 1편에 어울리는 것이었고, 3편의 부제는 '컴프로마이즈'(타협)가 되었어야 옳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이후, '워쇼스키즈'는 새로운 도전을 줄곧 펼쳐왔으나, 모두 <매트릭스>의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스피드 레이서>(2008년),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년), <주피터 어센딩>(2015년)의 포스터엔 "<매트릭스> 감독의 새로운 영상 혁명"이 필수적으로 언급되어야 했다.
심지어 <주피터 어센딩> 당시엔 "깨어나라 1999"라는 노골적인 캐치프레이즈가 포함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세 작품 모두 흥행엔 참패하면서, 할리우드에선 '삼진 아웃'이라는 평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초기 넷플릭스를 이끌었던 드라마, <센스8>(2015년~2018년)을 통해 '워쇼스키즈'는 명예회복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의 아이디어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이 <센스8>이 끝난 지점이었다.
'워쇼스키즈'는 이 작품을 이후로, 독립 활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릴리 워쇼스키 감독이 드라마 <워크 인 프로그레스>(2019년~) 작업에 나서는 동안, 라나 워쇼스키 감독은 쇠약한 부모를 모시기 위해 시카고로 이사한다.
안타깝게도 2019년 부모는 세상을 떠나고, 라나 워쇼스키는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이야기를 상상하던 중 '네오'와 '트리니티'를 되살렸고,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라나 워쇼스키 감독은 자신의 작품은 모두 감정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감독은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예술적으로 내게 진정한 돌파구였고, <센스8>은 내가 만든 것 중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었다"라면서, "<매트릭스> 3부작에도 같은 것을 담고 싶었다. <매트릭스>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인류의 투쟁, 삶의 의미가 전부 담겨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젊었을 때는 작품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다루기가 어려웠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지금의 나이가 든 나 또한 <매트릭스> 3부작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게 내가 <매트릭스>로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렇게 나온 4편의 부제는 '부활', '부흥'의 뜻이 담긴 '리저렉션(Resurrections)'.
하지만 뚜껑을 여니 4편은 '리저렉션' 보다는 '리바이벌'(재연)에 가까웠다.
<리저렉션>은 한 마디로 "사랑은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엔드 크레딧 자막처럼, '사랑의 위대함'을 기존의 내용을 재활용해 만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부작으로 완결을 낸 이후 만들어진 속편의 대표 사례로 <토이 스토리 4>(2019년)가 있다.
<토이 스토리 4>가 단순히 사족과 추억 소환으로만 느껴지지 않고, 새로운 서사의 결말로 관객이 충분히 납득할 전개를 보여준 것과 달리, 슬프게도 <리저렉션>은 '사족만 있는 팬 서비스'처럼 느껴졌다.

'토머스 앤더슨'은 게임 회사의 프로그래머였고, 그의 대표작은 <매트릭스> 3부작이었다.
'네오'가 인류와 기계의 평화를 내걸면서 목숨을 바쳤다는 3부작의 내용이 게임의 시나리오였다는 것.
게임 제작사 '워너브러더스'(이 시리즈의 배급사이기도 하다)는 '토머스'에게 속편 제작을 원했고, '토머스'는 새 게임 개발 과정에서 점차 혼란을 느낀다.
'토머스'는 '애널리스트'(닐 패트릭 해리스)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이 혼란을 해결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던 중 '토머스'에게 자신이 만들었던 게임 속 캐릭터 '모피어스'(야히아 압둘 마틴 2세)가 접근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인공지능에게 세뇌를 받아 '네오'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네오'라는 전지자도 세월의 무게를 버티기는 힘들었을까?
중년이 된 키아누 리브스처럼, '네오'는 예전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었고, '젊은 요원'들과의 대결에서도 버거운 싸움을 해야 했다.
영화는 이런 '네오'가 다시 온전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원동력을 '사랑'에서 찾았던 것.

<리저렉션>의 전개는 1편의 구성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친절하게도 <리저렉션>은 "처음 본 것을 이미 본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데자뷔'를 대놓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게임 회사 직원들의 회의 중에 나오는 대사나, 프랜차이즈나 속편, 리부트 등이 잘 팔린다는 언급을 통해, 계속해서 관객, 평단, 제작사, 혹은 감독 본인을 조소한다.
문제는 이런 할리우드의 시스템을 스스로 비꼬는 대사들을 넣은 속편들이 으레 결과물이 좋지 않았다는 것.
대표적으로 <엑스맨: 아포칼립스>(2016년)에선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 중 마지막 편인 <제다이의 귀환>(1983년)이 별로였다"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는 셀프 인증 사례가 되고 말았다.
한편,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새 관객을 불러 모으는 요소가 그렇게 많지 않다.
작품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기존 3부작을 관람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한데, 자료화면으로 3부작을 잠깐 보여주긴 하지만, 이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진실과 거짓'이나, '정신과 물질'과 같은 시리즈의 핵심 개념을 설명하는 과정 자체가 20년이 지난 <매트릭스>보다 느려 아쉬움을 준다.
다행히 '네오'가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순간부터 '그나마' 제작비를 아끼지 않은 액션(촬영 중 12개 블록의 거리를 모두 막았다고)이 터져 나오지만, 이는 150분에 가까운 시간을 인내한 관객에게 큰 보상이라고 하기엔 부족할 수 있다.
2021/12/20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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