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궁합 대신 코인 물어.. 정신과 상담 받으랬더니 계속 오네"
20·30대 10명 중 4명 "신점·사주봤다"
청년세대, 정신과보다 점집 더 찾아

김사주(32·가명)씨는 한 달에 1번꼴로 점을 보러 간다. 주말에 3번을 몰아서 본 적도 있다고 했다. “힘들게 취업난을 뚫었지만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해 보인다. 미래가 너무 막연하고 불안해서 자꾸 점을 보러 가게 된다.” ‘지속적인 불안’은 정신질환의 초기 아닌가. 김씨는 “그렇다고 정신과 진료를 받자니 사회적인 낙인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는 “내 주변에도 정신과 대신 점을 같이 보러 다니는 친구들이 꽤 있다. 무당이 웬만한 상담사보다 낫다”고 했다.
실제로 그럴까 궁금했다. 김씨는 다니는 점집 중에 업력 30년이 넘는 베테랑 무당이 있다고 했다. 베테랑 무당에게 휴대전화로 연락했다. “대선 앞두고 대통령 물어보려는 거냐? 남에 대해 안 좋은 소리 하는 것 싫어한다”며 인터뷰를 사양하겠다고 했다. ‘청년 불안 문제에 대해 묻고 싶다’고 설명했더니 그제서야 “안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고 했다.
◇“정신과로 가래도 자꾸 이리로 찾아오네”
‘양지암 천상선녀’ 이분임(62)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점집을 한다. 수백억짜리 빌딩들이 늘어선 도산대로 한쪽에 난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더니 ‘양지암’이라는 간판이 걸린 2층 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를 들어서면 평범한 가정집과 같다. 거실에서 TV를 보던 이씨의 남편은 “기다리고 있었다”며 이씨 사무실로 안내했다. 그제야 흔한 ‘점집 풍경’이 나타났다. ‘천상선녀’ 이씨는 동네에서 마주치는 그 나이대의 아주머니와 같은 차림이었다.
이씨는 “이 얘기는 꼭 얘기를 하고 싶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이 너무나 많아져서 걱정”이라고 했다. “들고 있는 주식 계속 갖고 있으면 대박 나겠네. 근데 연말에 낙상 사고는 조심해야겠다” 같은 얘기를 해주려나 내심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 점 보러 오는 청년들이 많나?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다 보니까 엄청난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청년들이 많아요. 요즘 청년들은 감정이 여리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해요. 사소한 일에도 마음 아파하고 쉽게 좌절하는 경우가 많지.”
- 점을 보면 좀 나아지나?
“자기 운명을 알고 맞는 방향으로 가면 좀 낫긴 하지. 운이 안 풀리는 게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희망을 주고 쓴소리를 좀 해주면 도움이 되지. 죽어라 노력하면 안 될 일도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나는 그걸 도와주는 거고.”
- 고민 상담소와 비슷한 느낌인데.
“그런 역할도 하는 셈이지. 자존감이 떨어져서 우울증이나 분노조절장애 호소하는 심각한 경우도 너무 많아. 살고 싶지 않다고 울고불고하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어.”
- 그 정도라면 정말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것 아닌가?
“자기들도 다 알더라고. 근데 정신병 치료받았다고 하면 불이익 받을까 봐 병원에는 못 가고 나한테 오는 거지. 너무 힘들어하는 젊은이한테는 내가 복채 안 올릴 테니까 우울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를 찾아오라고 하지.”
점집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이씨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복채를 5만원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옛날엔 결혼, 집 물어봤지만, 지금은 주식, 코인, 로또”
- 청년 고객이 원래 그렇게 많았나?
“코로나 이후로 눈에 띄게 늘었어. 우울한 생각만 하면서 집에 틀어박혀 있다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 청년들은 물어보는 질문부터가 달라. 예전에는 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될까요, 집 살 때 어디 사면 좋을까요, 이런 걸 많이 물어봤어. 지금은 주식, 코인, 로또 같은 걸 많이 물어.”
- 그런 질문에 답을 좀 내려주시나?
“당장 오늘 로또가 될지 어떨지를 어떻게 알아. 큰돈이 갑자기 떡 하니 생기기만 바라는 건데, 그런 사람들은 1등이 돼도 결국엔 불행해. 마음이 건강해야 돈 관리도 잘하는데, 그걸 모르니까 너무 안타깝지.”
그래도 어쨌든 이씨는 무당이다. 자연스럽게 귀신 얘기도 나왔다.
“한 번은 아들이 갑자기 등교를 거부하고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찾아온 사람이 있었어. 보니까 그 집터에 불에 타 죽은 귀신이 붙어 있더라고. 일단 굿을 지낸 다음에 엄마를 불러서 “아들한테 너무 공부 압박하면 안 됩니다. 그 대신 칭찬을 많이 해줘야 됩니다”라고 했지. 학생은 은둔 생활을 청산하고 검정고시를 봐서 명문대에 들어갔어.” (공부 스트레스 받는 아이에게 ‘공부 압박하지 말라’는 합리적 조언 덕분인지, 굿 덕분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 탓에 무속인
- 어떻게 하다가 무당이 됐나.
“30대 초반까지는 요리사로 평범하게 살았지. 결혼해서 아들 둘을 두고, 심지어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어. 친척 중에 무당이 하나 있었는데, 그 귀신이 우리 아들 중 1명한테 붙더라고. 아들 살리려면 내가 신내림을 받는 수밖에 없다고 해서.”
집안에 무속인이 있다면 반드시 가족 중 한 명에게 귀신이 붙게 되는 건지, 엄마가 신내림을 받으면 아들에게 붙은 귀신이 사라지는 건지,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무속인 세계에서는 그것이 상식인 듯했다.
“신내림 받고 나서는 아들이 멀쩡해졌어. 당시 회사 다니던 남편 반대가 심했는데, 지금은 상담 예약 받아주면서 도와주고 있다.”
- 지금 점집도 신내림 받고 나서 구한 건가.
“그렇지. 여기 자리를 잡으면 평생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다는 기운을 느껴서. 내가 샀을 때는 주변에 죄다 연립주택, 기사식당이라 투자 가치가 좋아 보이질 않았는데, 지금은 땅값이 제법 올랐지.”
- 점을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신한테 정성을 들여야지. 지금도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산에 찾아가서 기도를 올린다. 여유가 될 때는 남해 땅끝마을까지 가고, 여유가 없으면 근처에 아차산이나 남한산성에라도 가지.”

◇30년 넘게 불안한 사람들 상담하고 내린 결론, “결국 행복이란...”
이씨의 설명을 듣다 보니, 그의 업이라는 건 신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불안과 고민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일처럼 보였다. 그런 일을 평생 해왔으니 행복에 대한 어떤 깨달음도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나.
“결국 자기가 뭘 잘하는 줄 알고, 그 잘하는 걸 열심히 노력하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야. 남이랑 비교하고 부러워하는 게 행복을 가장 해치는 일이고. 손님 중에 정말 잘나가는 사람 많이 봤지. 근데 아무리 잘난 사람이어도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은 있기 마련인 거라. 계속 위만 보고 비교하면 불행할 수 밖에.”
- 본인은 행복하신가.
“나는 행복하지. 별 탈 없이 사니까. 마음이 어렵고 힘들어서 찾아오는 손님들 고민 들어주고, 해결에 도움을 줬을 때 큰 행복을 느끼지.”
이씨의 열성적인 설명에도 불구, ‘신점’이나 굿 같은 게 얼마나 ‘효험’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이씨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이 집을 찾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30대 ‘정신과’ 경험보다 ‘점집’ 경험이 2배

실제로 점집을 찾는 청년들은 어느 정도나 될까.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를 통해 20·30대 1010명에게 설문지를 돌려봤다. 10명 중 7명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사주나 신점을 본 적 있다’는 응답자는 41%나 됐다. ‘정신과 진료나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21%였다. 정신과 상담 경험자 수치의 2배가 점집을 경험한 것으로 나왔다.
점을 본 사람 중 87%는 ‘적어도 1년에 1번 이상 사주나 신점을 본다’고 답했다. 질문 내용은 재테크·로또가 42%로 가장 많았고, 진로·취업(39%), 연애·결혼(34%), 건강(32%) 등 순(중복응답)이었다. 현직 점집 주인 이씨의 말과 맞아떨어지는 결과였다. 정말 무속인이 정신과를 대신하고 있는 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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