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할머니 위안부 피해 증언 30년.."일본이 날뛰는데 뭘 망설이냐!"
[경향신문]
성폭력 개념도 희미한 시절
1991년 8월14일 기자회견
증거를 대보라는 이들에게
“살아있는 내가 바로 증거”
일본군 만행 ‘최초의 외침’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아니다, 이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누가 나오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
1991년 8월14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서 열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기자회견.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 가운데 이날 처음 공개석상에 나온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이같이 말했다. 김 할머니는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고 한국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한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다. “증거를 대라”는 이들에게 김 할머니는 “살아 있는 내가 바로 증거”라고 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 고통받았던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일본은 위안부를 끌어간 사실이 없다고 하고 우리 정부는 모르겠다 하니 말이나 됩니까”라고 했다.
■오랜 침묵…부둥켜안고 울었다
김 할머니 처음 본 윤영애씨
“증언, 정말 좋은 소재지만
두번 죽이는 일…망설였다”
그 후 피해자 238명이 모여
운동 펼쳐 활동가로 거듭나
김 할머니가 입을 연 당시는 위안부가 피해자로 읽히지 않던 때였다. ‘성희롱’ ‘성폭행’ 등 성폭력 피해 개념이 막 등장하던 시기였다. 오로지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윤락’이라는 단어만 존재했다. 윤락의 문법 속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의 식민지배 때 ‘처녀공출’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해결해야 할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다. 이헌미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2일 “그분들(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살아온 시대는 여성이 강간을 당해도 그 여성의 수치, 가문의 수치가 되던 때”라며 “피해자들이 말할 수 있던 사회적 문법이 전무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근로정신대로 끌려간 남성들은 자신들이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해방 이후 알리고 피해를 증언했다. 그러나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당시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다녔던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이를 두고 “전쟁이 끝났는데 여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시대의 긴 침묵을 깨고 김 할머니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991년 7월, 자료나 증거가 없어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데 애를 먹던 정대협에 김 할머니가 찾아왔다. 당시 한국교회여성연합회(한교여연) 총무로 김 할머니를 처음 만난 윤영애씨(78)는 “눈이 맑고 깊고 큰, 어렸을 때 동화책에 나오는 사슴 눈, 김학순 할머니 눈이 딱 그랬다”고 기억했다. 김 할머니는 윤씨에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 과감하게 알려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나”라며 “이 고달프고 억울한 인생을 고해야겠다, 생각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린 뒤 한마디 하고, 천장을 보고 한숨을 쉬다가 다시 한마디를 했다. 끝내 윤씨와 할머니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김 할머니는 “자기는 (사실을) 다 드러냈으며 세상에 공표해도 좋다”고 했지만 윤씨는 바로 알리지 못했다. 이때 심정에 대해 윤씨는 “할머니가 나와서 그 모진 세월을 공개했을 때 많은 사람이 질타할 것, 손가락질할 것을 생각하면…. (할머니를) 두 번 죽이는 것 같았다”며 “운동 차원에서 이 문제를 터뜨리면 정말 좋은 소재지만, 그 모진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 다시 못을 박을 수는 없었다”고 회고했다.
1991년 8월13일 김 할머니가 윤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씨는 “할머니가 윤 총무, 지금 뭐하는 거냐고, 일본이 저렇게 날뛰는데, 나는 거칠 게 없으니 내 한 몸 던져서 이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일본에 인정과 사죄를 받으면 족하니 ‘나를 사용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할머니의 용기에 응답했다. 바로 다음날 김 할머니는 기자회견에 나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최초의 공개 증언을 했다.
■나비의 날갯짓 된 할머니 증언
그날 기자회견 이후 238명의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모였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여기가 그런 거 신고하는 데냐”고 물은 뒤 “맞다”고 하면 전화가 뚝 끊어지기 일쑤였다. 당시 한교여연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혜원씨(86)는 “김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마른 들에 불을 지른 만큼 할머니들이 너도나도 신고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그분들도 굉장히 갈등을 하며 고민하셨던 것 같다. 당시 여성이 성폭력을 당해도 피해자가 죄를 지은 것 같은 사회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몇 차례 ‘전화 숨바꼭질’을 한 끝에 피해생존 할머니들이 한두명씩 사무실에 나타났다.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자를 꾹 눌러쓴 채였다. 김씨는 “혹시 카메라에 찍혀서 나가면 가족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지 우려하셨던 것 같다. 초기에는 그런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했다.
운동이 전개되면서 할머니들은 단순히 피해자, 생존자, 증언자가 아닌 활동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당시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자신의 피해를 알리고 인정받는 차원을 넘어 다시는 자신들이 겪었던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며 “이미 피해 대상이라기보다 주체화된 활동가적 마인드를 가지고 계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일본에서 소송도 하고, 증언집회에도 나섰다. 이듬해인 1992년부터 수요시위가 시작됐다. 정부가 그해 신고센터를 만들자 피해 신고가 이어졌다. 할머니들은 일본 증언집회 등에서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다. 사회가 함께 분노하자 할머니들도 바뀌었다. 얼굴을 가리고 사무실로 찾아왔던 할머니들은 당당하게 수요시위에 나와서 “부끄러운 것은 우리가 아니라, 가해자인 너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의식 변화는 성폭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틀을 바꿔놓았다. 김씨는 “위안부 고발은 여성들이 최초로 단체행동을 한 운동”이라며 “성폭력 피해가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고, 제도와 가부장문화, 남성우월주의, 군대문화의 잘못이라고 최초로 인식하고 고발한 움직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의 문제 아닌 구조적 폭력”
성폭력, 개인 아닌 구조 문제
“김 할머니는 첫 미투 활동가”
“그날 증언, 지금으로 이어져”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후 ‘잘못한 이는 가해자이며, 성폭력 피해는 개인의 수치가 아닌 구조적 폭력’이라고 말해왔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전의 성폭력 말하기의 경험이 대개 개별화된 것이었다면 김 할머니 증언 때부터는 성폭력이 보편적인 일이며 피해자를 우리가 사회적·집단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운동과 결합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1993년 서울대 화학과에서 조교로 근무하던 우모씨가 신정휴 교수의 성희롱을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00년에는 5·18 생존자들이 계엄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2018년부터는 국내에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시작됐다.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국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것을 시작으로 연극 연출가, 시인, 감독 등 예술계에서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다. 이후 안희정 전 충남지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도 세상에 알려졌다.
김씨는 “김 할머니야말로 최초의 미투 운동가라고 생각한다”며 “할머니가 용기를 내서 세상을 향해 포문을 열었고,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에 대한 의식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김 할머니의 말하기가 계속 연결돼 2018년의 미투로 이어졌다”며 “상담 활동을 하면 피해자들이 ‘다른 누군가의 말하기가 전화기를 들게 해줬다’고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성폭력 피해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두려움에 직면한다.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 가해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고 거짓말할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경험이 성폭력 피해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등이 피해자를 엄습한다. 중요한 것은 함께 듣고, 연대하는 것이다. 강성현 교수는 “김 할머니 증언은 듣기 공동체, 들을 수 있는 귀가 한국·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김 할머니 증언 30주년은 운동 30주년이고,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은 우리가 피해자에 공감하고 함께해 온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오경민·민서영·이홍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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