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유니폼 바지가 흰색인 이유
야구 경기를 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야구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수도 없이 슬라이딩을 하고 도루하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그러는데,,, 도대체 바지는 왜 흰색인 거지? 흰색 바지는 진짜 쉽게 더러워지는데 중간에 갈아입기도 애매하고, 빨래하기도 너무 힘들지 않을까? 유튜브 댓글로 “야구 선수들은 왜 흰색 바지를 입나요?”라는 취재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야구 유니폼 바지는 왜 흰색일까
야구 경기에서 흰색 유니폼이 많이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규정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매년 ‘공식 야구 규정집’을 업데이트 하는데 2021년 버전 중 ‘선수의 유니폼(Player Uniforms)’ 항목에 따르면 각 팀은 두 벌의 유니폼을 준비해야 하며 이중 홈팀은 하얀색을, 원정팀은 홈팀과 다른 색상의 유니폼을 입도록 했다. 그러니까 리그에 참여하는 모든 팀이 ‘흰색 유니폼+색깔 유니폼’ 이렇게 두 세트의 유니폼을 갖춘 뒤 이를 경기에 따라 돌려 입어야 한다는 뜻. 그럼 이런 규정은 언제 생겨난 걸까?
19세기 중반 최초의 야구팀 중 하나로 알려진 뉴욕 니커보커스는 현재 야구 유니폼과는 매우 다른 복장을 입었다. 운동복이라기보다는 신사복에 가까웠던 것. 우리가 아는 야구 유니폼에 가까운 흰색 야구 팬츠를 처음 입은 팀은 1869년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다. 위아래 모두 흰색이다. 미국의 한 패션전문 블로그에 따르면 여러 색상과 무늬들로 혼란스러웠던 기존 유니폼과 달리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의 복장은 흰색으로 통일돼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기 좋았다는 평을 받았다. 이런 혁신은 여러 구단에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
흰 유니폼에 대한 최초의 규정은 미국 야구 명예의전당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1882년 규칙에 따르면 각 선수는 흰색 바지, 흰색 벨트 및 흰색 넥타이를 착용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모든 팀이 흰색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는 뜻이다. 야구에서 긴 색깔 양말이 발달하게 된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각 구단은 각양각색의 긴 양말로 팀의 특징을 홍보하고 서로를 구분했다.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라는 이름도 양말로 팀을 구분하던 당시 관행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홈팀과 원정팀의 유니폼 구분이 생긴 건 메이저리그가 성장한 이후였다. 리그가 커지고 원정경기가 많아지면서 대결하는 두 팀을 구분하기 위해서 원정팀의 유니폼 규정이 추가됐다. 빨래 문제도 이런 유니폼의 색상 변화에 한몫을 했다. 대형버스를 타고 호텔을 옮겨 다니는 원정팀은 홈구장에서 뛸 때만큼 유니폼을 세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원정 경기일 때는 때가 덜 타 자주 세탁할 필요가 없는 회색 유니폼을 입게 됐다는 것.
동일한 규정은 우리나라의 야구 규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KBO(한국야구위원회)의 선수 유니폼 규정에 따르면 각 팀은 홈경기용으로 흰색 또는 유색, 원정 경기용으로는 유색 유니폼을 준비해야 한다. 홈팀이 흰색만 입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기본은 흰색 유니폼으로 정해둔 것. 미국으로부터 야구 문화와 규정을 받아들인 만큼 미국 야구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추측된다.
(KBO 이경호 홍보팀장) “전통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홈팀은 흰색, 원정팀은 어두운 색 계통의 유니폼을 입거든요. 이게 어떻게 보면 약간 트렌드처럼 돼버렸는데… 원정 팀 같은 경우에는 상의는 자기 팀 색깔, 하의는 이제 흰색들을 많이 입죠···지금도 메이저리그는 통상 회색 상의 하의 원정팀은 회색 옷들이 되게 많아요. 홈팀이 이제 흰색 계열이고 원정팀은 자기 색깔을 좀 강조한 그런 걸로 계속 유지가 되고 있죠.”
다른 해석도 있다.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유니폼 색깔과 섬유산업의 연관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허 위원에 따르면 야구 유니폼이 흰색으로 출발한 이유는 과거 섬유의 염색과 가공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주 빨아야 하는 운동복 특성상 이염과 변색이 심한 유색 유니폼보다 흰색 유니폼이 관리하기 훨씬 편했을 수 있다. 이후 1960년대 섬유산업이 발달하면서 각 구단은 팀별 개성을 표현하는 다양한 색상의 유니폼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노란색 유니폼을 들고 나왔고,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무지개 색상의 유니폼으로 눈길을 끌었다. 섬유산업의 초창기에는 흰색 유니폼이 주류를 이루다가 산업이 발전하면서 화려한 유니폼이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관련 업계 관계자로부터 흥미로운 가설을 들어볼 수 있었는데, 대구 ‘야구백화점’의야구 유니폼 판매점 사장님은 “외부 활동 중심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햇빛을 반사하기 위해 가장 좋은 색이 흰색이라 바지가 흰색이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고, 또 온라인 판매점 야구백화점 대표는 “구단의 색상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 바지는 흰색이 되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리고 공통적으로는 “신사적인 스포츠를 지향하기 때문에 흰색컬러 계열의 유니폼이 많은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이게 흰색 유니폼이 시작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흰색 유니폼이 지금까지 전통처럼 이어지는데 역할을 했을 수는 있겠다.
분명한 건 선수들의 ‘빽바지’가 야구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는 사실. 아, 근데 야구 선수들의 흰 바지 슬라이딩은 대체 언제쯤 직관 가능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