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당신을 불러봅니다..오탁번 '아버지와 치악산'
[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으로 선정한 50편의 소설을 전해드리는 시간이죠.
오늘(14일)은 시인으로 더 잘 알려진 오탁번 작가의 소설, 아버지와 치악산을 만나보겠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작가는 기억 속에 없는 아버지를 상상하며 이 작품을 썼다는데요.
김석 기자가 작가를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치악산이 바라보이는 외진 시골 마을에서 분교장으로 일하는 아버지.
지위도, 명예도 다 뿌리치고 평생 벽지 분교 근무를 고집해 모두에게 존경받는 교육자인 아버지.
소설은 그런 아버지를 닮은 크고 우뚝한 산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오탁번/소설가·시인 : "큰 산의 장엄함 같은 거에 기가 죽었다 그랬나 뭐 이런 게 있을까, 그러니까 제 소설적인 상상력 속에는 치악산이, 치악산의 큰 산의 얼굴처럼 이렇게 늘 마음속에 있었을 겁니다."]
공부 잘했던 누나와는 정반대로 천덕꾸러기로 자란 아들.
어른이 된 뒤에도 마음 속으로 아버지를 원망하고 또 원망합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아버지의 정(情)에 목말라 합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작가는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렇게 소설로 그렸습니다.
[오탁번/소설가·시인 : "아버지가 없이 소년기를 보내면서 그 어떤 가난이랄까 또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 어려운 점 그런 게 이제 한이 맺히는 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상상 속에서 어떤 아버지상이 있어야 되겠다..."]
군청 산림계장이 되어 자연보호운동에 앞장설 때마다 치악산을 찾는 주인공.
하지만 갈수록 사람들로 북적이는 치악산은 훌쩍 늙어버린 모습이었고, 정년퇴임을 불과 한 달 앞둔 아버지는 불의의 화재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소설은 그렇게 끝내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아들의 회한으로 끝을 맺습니다.
[작가 낭독 : "나는 혼자 치악산으로 가서 아버지의 유해를 뿌렸다. 이제 치악산에는 다시 오지 않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유해 대신에 이러한 예감을 안고 큰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대부분 시인으로 알지만, 1969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60편이 넘는 소설을 쓴 오탁번 작가.
1970년대의 마지막 해에 발표한 이 소설은 산이라는 상징을 통해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고형진/문학평론가·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 "소설을 쓸 때 시적 기량이 발휘된 것이죠. 그래서 이게 아주 형식이 정교하다는 것, 이 안에 이제 아버지상을 잘 녹여냈다는 것, 이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글을 써온 지 어느덧 반세기.
지나온 세월의 더께만큼 수많은 글을 쌓아 올렸지만, 여든에 이른 노작가는 오늘도 빈 원고지에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둘 채워갑니다.
[오탁번/소설가·시인 :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또 형벌과 저주와 축복 그게 같이 가는, 그런 걸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을 타고났고, 그걸 받아들이는 행위가 문학하는, 글 쓰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KBS 뉴스 김석입니다.
촬영기자:임동수 유용규/문자그래픽:정지인
김석 기자 (stone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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