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에 보복 학살.. 내전 1년 만에 민간인 수천명 희생 [세계는 지금]

윤지로 2021. 11. 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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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선 무슨 일이..
TPLF 출신 제나위 전 대통령 21년 독재
정치·경제 안정 불구 언론 탄압·인권 유린
2016년 반정부 시위.. 연정 파트너가 집권
아비 총리 민족갈등 봉합 공로 노벨평화상
노벨상 수상 직후부터 돌변.. 독재자 행보
"TPLF가 내란 도모한다" 연방군 투입
수세 몰렸던 TPLF 수도 진격 시간문제
북부지역에서만 피란민 250만명 발생
내전 연루된 모든 진영 주민 학살 악순환
구호품 전달도 막아 40만명 기근 내몰려
양측 적개심 커 이른 시일내 종전 힘들 듯
지난달 20일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주 메켈레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2018년. ‘이곳’에선 이웃나라와의 분쟁이 20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2019년. 분쟁 종식을 이끌었던 사람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나라 첫 노벨상 수상자였다.

2020년. 노벨상 수상자는 이 나라 북부 지역에 군대를 투입한다. 지역정당이 군을 공격했다는 이유다. 내전의 시작이다.

그리고 올해. 1년 남짓한 내전으로 수천명이 숨졌다. 10만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민간인의 희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 에티오피아는 오늘도 내전 중이다.

5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에티오피아에선 해묵은 분쟁이 끝났고, 노벨상의 영광이 찾아왔다가 곧바로 내전상태에 빠졌다. 영화라고 한다면 내용이 두서없고 종잡을 수 없는 데다 잔인하기까지 해 시선을 거둘 이야기다.

도대체 에티오피아에 왜 이런 비극이 찾아온 걸까.
지난 5월 6일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 지역에 있는 아이더 레퍼레이션 병원의 계단 창문에 나 있는 총알 구멍. 목격자들에따르면 에티오피아군의 공습이 10월 18일 티그레이 지역의 수도를 강타했다. AP연합뉴스
◆모든 갈등은 ‘독재’로부터

에티오피아에는 90개도 넘는 부족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인구로 따지면 오로모족과 암하라족이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그다음이 티그라이족인데, 3위라고는 해도 차지하는 비중은 6∼7% 정도다.

내전 당사자인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은 에티오피아가 군부독재 치하에 있던 1970년대 중반 티그라이의 민병대로 출발했다. 처음엔 그저그런 작은 조직이었지만 군사정권에 맞선 오랜 투쟁 끝에 1991년 군정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TPLF의 지도자였던 멜레스 제나위는 대통령이 돼 다른 3개 정당과 연정을 꾸렸다. 그중엔 현재 내전의 반대편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번영당의 전신 오모로민주당(ODP)도 있다. 제나위는 그가 숨진 2012년까지 장장 21년 동안 에티오피아를 이끌었는데 이 기간은 에티오피아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로 평가된다. 특히 그는 한국의 이른바 ‘한강의 기적’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든가 새마을운동을 도입하려 했고, 실제로 임기 마지막 8년 동안은 한 해 10%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안에선 정적 탄압과 언론 통제, 인권 유린 등 장기집권의 연관검색어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급기야 그의 사후인 2016년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고, 연정 파트너였던 ODP가 집권당이 돼 당대표인 아비 아머드에게로 권력이 넘어간다.

출발은 좋았다. 아비 총리는 ODP를 중심으로 기존 연정 파트너를 통합(TPLF는 스스로 거부해 제외)해 당명을 번영당으로 바꾼 뒤 민족갈등 봉합에 나선다. 수천명의 정치범을 석방했고 억압적인 보안법을 개정했으며 이웃과의 갈등 해소에도 팔을 걷었다. 대표적인 게 에리트레아와의 종전선언이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수십년 동안 유혈 국경분쟁을 벌였는데 국경을 확정짓고 분쟁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이 공로로 2019년 ‘100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직후부터 그의 태도가 표변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차단, 언론인과 시위대 체포, 시민 무단 구금 등 독재자의 행보를 걷더니 지난해 11월2일 티그라이 지역 집권당으로 물러난 TPLF가 내란을 도모하고 있다며 연방군을 투입했다. 여기에 에리트레아군까지 끌어들이자 국제사회에선 “2018년 종전선언이 결국 TPLF 섬멸을 위한 밑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마저 품게 됐다.
지난 6월 에티오피아의 티그레이 지역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를 피해 탈출한 사람들이 한 중학교에서 납작빵인 인제라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내전 초 맥을 못 추던 TPLF는 점차 반격에 나섰다. 지난 6월 티그라이 지역에서 연방군을 몰아내더니 지난달엔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가는 주요 관문도시 두 곳을 손에 넣는다. 이제 수도까지 진격하는 건 시간문제다.

◆학살에 보복 학살… 기근에 내몰린 국민들

내전에 희생되는 건 결국 무고한 민간인이다. 에티오피아의 참상은 내전 1주년을 맞아 지난 3일 유엔과 에티오피아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보고서에 잘 드러난다. 보고서는 분쟁 당사자 모두 ‘극단적 잔악’을 보였다고 지적한다.

지난 6월 말까지의 상황을 담은 보고서에 따르면 8개월간 민간인 수천명이 숨지고 티그라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역에서 피란민 250만명이 발생했다. 민간인 사망자 통계는 집계 기관에 따라 편차가 크다. 적게는 2000여명에서 많게는 10만명으로 헤아리는데, 티그라이 전쟁 보도로 유명한 뉴스사이트 티갓이 내전 발발 첫 3개월 동안 집계한 이름이 확인된 희생자만 1124명에 이른다.

유엔 보고서를 보면, 에티오피아 전역에서 티그라이 출신에 대한 임의구금이 행해지고 티그라이 측은 티그라이 서부를 침범한 인접 암하라 출신 지역민들을 구금하고 고문했다. 티그라이의 악숨에서는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손잡은 에리트레아 군인이 민간인 100명을 학살했다. 내전에 연루된 모든 진영이 주민을 학살하고 보복으로 또다시 학살에 나섰다. 주민들은 내전을 피해 달아나다가, 반대편을 돕는다는 의심을 사서, 혹은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희생됐다.
지난 14일 에티오피아 출신 한 여성이 이스라엘 예루살렘 총리공관 앞에서 에티오피아에 남아 있는 친족을 이스라엘로 데려오라고 요구하는 시위 도중 자신의 친인척 사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여성과 소녀는 물론이고 소년에 대한 집단 성폭행도 벌어졌다.

티그라이 지역은 봉쇄돼 국제사회 구호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는데, 분쟁 당사자 모두가 원조를 가로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티그라이에선 40만명이 기근에 내몰렸다.

유엔 등 국제기구 직원마저 납치되는 일이 잦아지자 미 대사관은 이달 초 모든 미국민에게 가능한 한 빨리 에티오피아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아프리카의 뿔(동아프리카) 지역 미 특사인 제프리 펠트먼은 국무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10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10년 동안 추방한 유엔 직원보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하루에 추방한 유엔 직원이 더 많다”고 강하게 규탄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평화

인구 1억1700만명, 국토 면적 110만㎢의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인구는 두 번째로 많고 아프리카의 뿔 정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 5월 10일 한 여인이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 지역의 메켈레에 있는 아이더 레퍼런스 병원에서 튜브를 이용해 영양실조 상태의 아기에게 음식을 주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사회의 중재에 이달 초부터 내전 당사자들이 대화에 나설 수도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전해졌지만,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은 없다. 정부군과 반군이 서로에게 품은 적개심이 너무 커 이른 시일 내 평화가 찾아오긴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내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에티오피아 사태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던 미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은 내전 당사자를 직접 겨냥하는 대신 주변부 통제에 들어갔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정부군에 가담한 에리트레아 방위군과 에리트레아의 유일한 합법 정당인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인민전선’(PFDJ) 등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재무부는 그러면서 “적대행위 중단을 위한 확실한 진전이 없을 시 에티오피아 정부와 티그라이 반군도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별도의 성명에서 “에티오피아 내 에리트레아의 존재는 적대행위 중단에 장애물이 되고, 에티오피아 통합을 위협한다”며 “즉각 철수하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역사가 제라르 프뤼니에는 프랑스24 인터뷰에서 “미국은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지만 에티오피아에 거는 기대는 미미하다. 에티오피아가 중국이나 이란 같은 우선순위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미국은 더는 아비 총리를 신뢰하지 않으며 또 다른 동맹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에티오피아가 꾸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지지도, 비난도 없는 그들만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늪에 빠져들지 모른다는 뜻이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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