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적(sculptural) 건축가 양수인

효효 2021. 7. 2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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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92] 인천 서구 화학 제조공장 자리인 '코스모40'이 위치한 가좌동은 1970년대 초반부터 조성된 산업단지였다. 2016년 본사와 공장이 이전하면서 공장 용지와 건물 대부분을 다른 산업체가 인수하였고, 40번째 건물만 리모델링해 코스모40으로 이름 붙여져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건축가가 처음 본 건물은 전형적인 화학공장이었다. 제조 공정은 중력을 이용해 재료를 가공하는 방식이었기에 층고가 높았다.

2007년 건축주는 300년 넘게 집성촌을 이루었던 가좌동 여기저기 집안의 토지를 처분하러 지역을 둘러보다 코스모40 내부를 보고는 전시와 공연이 어우러지며 커피숍에 서점도 함께 운용하는 복합문화공간을 구상했다.

코스모40 외부 / 사진제공=신경섭
코스모40 외관은 공장 왼편 날개 부위에 증축한 철골·유리구조가 옛 공장 내부로 깊숙이 관입(貫入·꿰뚫고 들어감)돼 있다. 공장 안으로 연속된 하나의 고리 모양 건축물(新館·신관)을 삽입(揷入)하는 개념이다. 이 고리는 로비와 수직 동선의 역할을 한다.

양수인은 '따로 또 같이'를 설계 기본 방향으로 정했다. 옛 건축의 둥근 철골 기둥을 새 건축의 각 기둥 4개가 둘러싸고 있다. 그렇게 각 기둥에서 출발한 새 건축은 옛 건축과 겹쳐 있지만 이격된 별개의 건축이다. 커피숍이 위치한 지상 3층은 옛 건축 안으로 새 건축이 끼워 넣어져 있다. 매장 바닥이 옛 공장 바닥 위로 살짝 떠 있다. 상층이 기존 건물에 의존하지 않게끔 설계했다.

코스모40 내부 / 사진제공= 신경섭
투박한 공간의 고유 매력을 보존하기 위해 공장은 그대로 두고, 근린생활시설 공간을 끼워 넣는 식이다. 옛 공장 건축은 1, 2층과 3, 4층이 한 덩어리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가운데 천장이 뚫려 있는 구조인데 1, 2층(최대 천장고 10m)과 3, 4층(최대 천장고 14m)이 천장을 공유한다. 양수인은 근대산업시설의 범위와 활용 방향, 법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코스모40을 안전기준을 맞추면서도 건축 비용을 절감하는 사례로 꼽는다.

양수인은 귀국 후 바로 현장으로 뛰어든 첫 프로젝트가 남해 소솔집(2011)이다. 소솔집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이의 주택이다. 밀라노는 매년 여름이면 트럭 운송기사들의 파업으로 휘발유, 신선식품류가 공급되지 않았다.

남해 소솔집 / 사진제공 = 신경섭
건축주는 이때의 생존 경험을 바탕으로 에너지 독립적이면서 자급자족인 주택을 원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자체 조달하는 게 목표였다. 단열재에 대한 개념과 사용자의 인식 변화가 전제되어야 했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입고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산바람이 바다로 통하게 했다. 다락을 포함해 아래·위층을 모두 합한 면적이 약 231㎡(70평형)다. 내단열을 쓰지 않고 외단열을 쓰면서 지붕에는 별도의 재료를 쓰지 않았다. 지붕에는 3㎾ 태양광발전 설비와 난방을 위한 태양광 집열관을 설치했다. 건물 전체가 단열재로 흐름이 끊기지 않게 일체화했다.

평창동 '갤러리주택'은 상업적인 용도의 전시장보다는 홈갤러리 개념의 공간을 원하는 건축주 요청에 따른 설계였다. 주택과 갤러리 공간 각각 두 개의 계단실을 만들지 않으면서 동선은 분리하면서 출입구를 일체화했다. 주택 출입구는 가로 전면에서 들어가지만 갤러리는 주택 출입구 뒤로 진입하게 구분해 공간적으로는 수직적으로 일체화했다. 전체적으로 20평을 절감할 수 있었다.

평창동 전시장주택 펼친 단면도 / 이미지 제공=삶것
양수인은 뉴욕에서 공부를 마친 뒤 친구와 같이 '더 리빙건축 사무소'를 차렸으나 오래된 현대 도시 뉴욕은 젊은 건축가들에게 마땅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공부와 경험에서 배운 것은 상황을 해석해서 물리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상대를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었다. 건축가는 건축주로부터 핵심 기능의 디자인을 신뢰받은 후에는 전체 설계 디자인에 대한 권한을 갖고 한결 여유가 생긴다.

그는 각각 색이 다른 플라스틱으로 만든 레고 모형으로 계단 구조를 설명하였다. 조각적(sculptural) 마인드의 면모를 보았다. 일체화된 계단실 자체가 하나의 모듈(module·덩어리)로 이해되었다.

양수인은 '건축은 통역이다. 직역이 필요할 때가 있고, 의역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건축주와의 첫 대화가 중요하다. 건축주가 오랫동안 생각한 계획은 설계의 텍스트다. 그러나 건축가는 이를 공간적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들이 가진 사고의 모순도 발견한다.

서울 성수동 지식산업센터에 설치된 알루미늄 소재의 자이로이드 트레포일(Gyroid Trefoil·2009)은 얼핏 봐서는 설치, 조각, 건축 등 장르를 구분하기 힘들다. 양수인은 최초, 단면이면서 동시에 2차 곡면 형태인 단단한 조형물을 구상했다. 유전자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여러 차례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통해 형태를 발전시켜 나갔다.

자이로이드는 자연에서 진화되어 나타난 형태로, 구멍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입체 구조다. 이 구조를 트레포일(trefoil·삼엽형)과 중첩 후 겹치는 부분을 형상화했다.

양수인은 인간의 창의력이 기계적 연산력의 도움을 받아 증폭될 수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5000개 이상의 모델을 검토하고 심미성과 안정성을 따져 최종 형태를 도출하였다. 관건은 공간 구조, 안전과 같은 건축적 요소가 핵심인 연산 소프트웨어 비용이 과거에는 1억7000만원이었으나 지금은 불과 60만원이면 된다.

자이로이드 트레포일 / 사진제공 = 신경섭
미술 칼럼도 쓰는 필자 입장에서는 건축가의 작품으로 소개받고는 조금 당황했다. 감각적으로는 조각 작품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공간을 만드는 건축과 새기고 깎아 공간의 존재를 드러내는 조각의 경계가 따로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재로는 알루미늄을 썼고 곡면 성형에 유리한 주조(鑄造) 방식을 택했다. 주조는 원형과 주형을 각각 만든다. 자이로이드 트레포일은 모든 것이 둥그렇고 곡면이며, 흐르는 원(fluid form)의 형태, 촉감조차도 곡선의 조형미를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

다양한 방식의 3차원 금속조각 역시 2차원 평면 회화에서 발전해 부조 형태를 띠다가 독립한 조각물이 되는 과정을 고려하면, 양수인의 최초 발상도 '단면이면서 동시에 2차 곡면'인 회화적 발상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미술이 사진·디자인·건축 등을 수용하면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경계가 흐려졌고 광의적으로는 건축도 현대미술의 한 장르가 되고 있다.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1876~1957)의 대표적인 야외 설치작품인 '무한주(Endless Column)'는 조각이 다른 조각을 지지하는 받침대가 되는 구조, 즉 단위 조각을 서로 맞물리도록 수직으로 조립한 형태다. '자이로이드 트레포일' 또한 한 조각이 다른 한 조각을 지지하는 구조다.

최근 진행 중인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쪼이쇼룸'은 12층 규모의 패션회사 사옥이다. 외관 디자인은 섬유 원단의 하늘하늘한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했다. 동백섬이 보이는 웨스틴조선호텔에서는 바다 쪽으로 열린 공간이다. 대지 면적이 좁고, 토질 때문에 지하로 깊이 팔 수도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용적률, 주변 건물들과의 키높이를 고려해 중간층에 주차장을 넣는 기계주차 방식을 선택했다. 건축가의 창의성은 컴퓨터 등의 기계적 연산력도 활용해야 되지만 동료 건축가들의 설계 방식도 상황에 맞게 적극적으로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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