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아데노신과 카페인의 두 얼굴

분자들도 나이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인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화이자의 코로나 치료제 팍스로비드는 1년 전 이 무렵 태어났을 것이다(지난 4월 공식 데뷔했다). 화학자들이 합성으로 자연에 없던 구조를 만든 것이다.
생체분자들도 나이가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이 태어난 건 가지과 식물에서 고추속이 확립된 2000만 년 전 무렵일 것이다. 반면 어떤 생체분자는 지구에서 생명체가 나온 때나 심지어 지구보다도 이전에 생겨났을 것이다.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이나 핵산(RNA와 DNA)을 이루는 염기와 당(리보스) 같은 것들이다.
나이 든 분자들은 비교적 간단한 구조이면서도 생체에서 여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데노신도 그런 분자다. 염기 아데닌에 리보스가 붙은 구조인 아데노신은 핵산을 이루는 벽돌일 뿐 아니라 여기에 삼인산이 붙으면 생체 연료 분자인 아데노신삼인산(ATP)이 된다. 후성유전학 조절에도 관여해 아미노산 메티오닌과 결합한 분자가 시토신에 메틸기를 넘겨준다.
또 많은 생리 과정을 조절하는 신호전달물질이기도 하다. 포유류에는 아데노신이 달라붙는 수용체(R)가 네 가지 있다(A1R, A2AR, A2BR, A3R).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게 뇌의 각성도를 조절하는 기능이다. 동물이 깨어있는 동안 뇌의 활동으로 ATP가 소모되면서 아데노신 농도가 올라간다. 그 결과 A2A수용체에 달라붙으며 보내는 신호가 점점 강해져 피곤하고 졸린 상태가 된다. 잠을 자는 동안 아데노신 농도가 내려가 깨어나면 각성 상태가 되고 이 과정이 24시간 주기로 반복된다.
이 기능이 널리 알려지게 된 건 그 작용을 방해하는 약물인 카페인 덕분이다. 졸릴 때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드는 건 카페인이 먼저 A2A수용체에 달라붙어 아데노신의 신호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실제 아데노신과 카페인의 분자 구조는 꽤 비슷하지만 카페인이 수용체에 붙으면 신호가 생기지 않는다. 오늘날 다양한 분류군의 식물 30여 종이 카페인을 만드는 것으로 봐서 대략 1억 년 전 생겨난 분자가 아닐까.

○ 커피는 좋지만 카페인은 나쁘다?
이처럼 정상적인 생리 반응을 교란하는 약물이라서 그런지 카페인의 평판은 그리 좋지 않다. 특히 자연의학과 수면과학 분야에서 더 그렇다. 카페인의 이뇨작용으로 몸은 수분부족에 시달리고 각성효과로 수면의 질이 낮아져 노화가 가속화되고 만성질환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에 모닝커피 한 잔 정도면 모를까 그 이상의 카페인 섭취는 몸에 해롭다. 심지어 카페인 음료는 백해무익이므로 담배처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규모 역학조사 결과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하루에 커피 한 잔은 해롭지 않다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서너 잔을 마시는 사람들이 안 마시거나 한두 잔 마시는 사람들보다 사망위험률이 낮다는 것이다. 한두 잔 마시는 사람들도 안 마시는 사람들보다는 위험률이 낮다. 다만 역학조사는 평균의 결과이므로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들은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하루에 커피를 서너 잔 마시면 치매 위험성이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결과도 여럿 나왔다. 수면의 질이 나빠지면 노폐물 청소가 잘 안 돼 치매 위험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라 적어도 신경퇴행성질환에서는 커피의 긍정적인 효과가 없거나 한잔 정도에서 그쳐야 하지 않을까.
이런 현상에 대해 커피에는 카페인뿐 아니라 여러 유효성분이 들어있어 항산화, 항염증, 종양 억제 등의 작용을 한 결과라는 설명이 있다. 하루 서너 잔은 다른 성분의 긍정적 효과가 아마도 부정적일 카페인의 효과보다 꽤 크다는 말이다. 나 역시 이런 맥락으로 글을 몇 편 쓰기도 했지만 내심 설득력이 떨어져 보였다(특히 치매 예방 효과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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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생쥐 시냅스 보호하는 아데노신

그런데 지난달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아데노신이 뇌에서 하는 또 다른 기능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어린 생쥐 뇌의 특정 뉴런 주변에는 아데노신 농도가 높고 뉴런 표면에 A2A수용체 밀도가 높다. 왜 그런가 알아봤더니 아데노신이 가바(GABA) 뉴런(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인 시냅스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아데노신을 없애거나 약물로 뉴런 세포막 표면의 A2A수용체를 비활성화한 채 20분만 지나도 뉴런의 시냅스가 파괴됐다. 성체의 뇌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왜 어린 생쥐에서만 이럴까. 어린 생쥐의 뇌에서는 시냅스 가지치기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단 뉴런 사이에 시냅스를 잔뜩 만들어놓은 뒤 사용하는 건 살려두고 안 쓰는 건 없애는 전략이다. 따라서 가바 뉴런처럼 중요한 부분은 아데노신 신호를 증폭해 보호하는 메커니즘이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물론 임산부나 수유하는 엄마도 카페인 섭취를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아기의 뇌에서 아데노신 작용을 방해하면 가바 뉴런 네트워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바는 억제성 뉴런으로, 손상되면 신경 흥분이 과도해져 뇌전증(간질) 같은 발작이나 인지기능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 논문 말미에서 저자들은 “출생 전후 시냅스가 형성되는 시기 카페인에 노출되면 몇몇 시냅스를 없애는 작용을 촉발할 수 있어 해로운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시기 엄마들은 모닝커피 한 잔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논문에 딸린 해설을 읽다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아데노신의 효과가 나이대에 따라 달라져 노년에는 오히려 시냅스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뇌에 아데노신 농도가 올라가고 A2a수용체 밀도가 높아져 신호가 증폭되면서 이런 역효과가 난다. 시냅스 파괴는 뉴런 주변의 미세아교세포가 주도한다.
해설은 항상성과 알로스태틱의 관점에서 아데닌의 역할을 설명한다. 알로스태틱은 마땅한 번역어가 없는 용어로, 외부 스트레스가 심할 때 대응하는 항상성을 뜻한다. 시냅스 가지치기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어린 시절은 ‘알로스태틱 뇌’ 상태이고 성인이 돼서는 평온한 ‘항상성 뇌’ 상태로 지내다 노화나 신경퇴행이 일어나면 다시 ‘알로스태틱 뇌’ 상태가 된다. 알로스태틱 뇌 상태에서 시냅스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데노신 신호 강화다. 그런데 노인의 뇌에서는 이게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그렇다면 커피의 치매 예방 효과도 카페인 때문이라는 말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며 일견 모순처럼 보이는 커피의 유익한 효과가 다른 성분들 때문이라고 믿었던 그동안의 내 생각이 틀렸던 것 같다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이 아데노신 신호를 억제해 시냅스가 보존되고 그 결과 신경퇴행성질환을 예방하거나 진행을 늦춘다고 설명할 수 있으니 말이다.

○ 노화된 뇌 시냅스 보호하는 카페인
카페인과 신경보호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두 단어가 포함된 제목의 2017년 리뷰논문이 맨 위에 떴다. 리뷰 제목은 ‘신경퇴행성질환에서 카페인의 신경보호 효과’다. 알고 보니 카페인은 알츠하이머병뿐 아니라 파킨슨병, 루게릭병 등 여러 신경퇴행성질환에 유익한 것으로 밝혀졌다.
커피 섭취량과 이런 질환의 발병 위험성의 관계를 추적 조사한 결과들은 대체로 꽤 줄이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질병 모델 동물을 대상으로 카페인의 효과를 알아본 실험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알츠하이머병의 경우 카페인은 아데노신의 작용을 억제할 뿐 아니라 다른 경로로 아밀로이드베타 단배질의 생성을 줄이고 제거를 돕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활성산소로 인한 산화스트레스도 절반 수준으로 낮춘다.
도파민 뉴런이 파괴돼 생기는 파킨슨병에서는 카페인의 아데노신 억제 작용이 주된 역할을 한다. 파킨슨병에서는 특히 미세아교세포의 증식이 두드러져 심각한 신경염증으로 이어지는데 카페인이 이를 억제한다. 미세아교세포의 세포막에 분포한 A2A수용체에 달라붙어 아데노신의 신호를 차단해 준동을 막는다.
우리는 어떤 대상의 속성을 선악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경우 선악은 양의 문제이지 질(속성)의 문제가 아니다. 양에 따른 위험도는 ‘J’ 곡선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적당한 양은 위험도가 기준점인 없을 때보다 오히려 낮다(이롭다)는 말이다. 카페인 역시 적당한 양(물론 개인에 따라 다르다)은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번 논문과 관련 해설에 따르면 나이대에 따라 카페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180도 바뀐다. 나의 상태가 대상의 선악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관계는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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