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12·12로 정권 잡은 뒤 5·18 유혈진압.. 별세 직전까지 법정에

23일 별세한 전두환(90) 전 대통령은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대구공고를 거쳐 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했다.
1955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전 전 대통령은 5·16 후 최고회의의장실 민원비서관을 거쳐 박정희 정권에서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대통령경호실 차장보 등을 맡았다. 1959년 이순자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1979년 3월 국군보안사령관에 임명된 고인은 10·26 사태 직후 권력 공백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전면에 등장했다. 이후 자신을 따르는 신군부를 중심으로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해 정권을 거머쥐었다.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군사 반란에 대한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자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강제로 유혈 진압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9월 1일 장충체육관에서 간접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후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 총재가 됐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그해 3월 간선제를 통해 제12대 대통령에 올랐다.
전두환 정권은 야간통행 금지 조치 해제와 학원 두발·복장 자율화 등 유화 정책을 폈다. 한편 ‘사회정화’를 내걸고 삼청교육대를 창설해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다.
전두환 정권의 민주화 운동 탄압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연세대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면서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1987년 6월 29일, 고인의 후계자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선 후보가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1988년 대통령에서 퇴임한 뒤 백담사에 머물렀다. 1989년 국회 ‘5공 비리 청문회’에 나왔고, 1990년 백담사를 나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전 전 대통령을 고소했고, 1995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불기소 처분을 취소하고 검찰은 ‘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 설치 후 재수사를 개시했다. 결국 전 전 대통령은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돼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된다.

1996년 5·18 사건에서의 내란죄·내란목적살인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전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사형과 2259억원의 추징금이 선고되고, 2심에서 무기징역 감형과 추징금 2205억원이 선고된다. 1997년 형이 확정된 후 특별사면되면서 석방됐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회고록을 출간했지만, 조비오 신부 유족 등이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작년 11월 전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사자명예훼손 혐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다. 올해 8월 9일 수척해진 모습으로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것이 공개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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