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비스토 오너가 캐스퍼를 타본 소감은?
크기는 작은 녀석이 참 요란스럽게 세상에 태어났다. 현대자동차가 경형 SUV '캐스퍼'로 아토스 이후 19년 만에 국내 경차 시장에 다시 진입했다. 노사 상생 광주형 일자리로서 현대가 투자한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생산하는 현대 캐스퍼는 사전계약 첫날에만 1만8940대를 기록하며 내연기관차 중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나아가 한달만에 2만5000대를 넘는 사전예약이 이뤄지며 올해 생산 판매 목표인 1만2000대도 훌쩍 넘어섰다.
1990년대 대우자동차의 '티코'가 독점하던 경차 시장을 바라만 보던 현대는 시장의 가능성을 깨닫고 1997년 뒤늦게 경차 '아토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아토스는 경쟁차인 '마티즈'에 밀려 롱런하지 못하고 단종되고 말았다.
2021년, 승자 마티즈의 대우자동차는 GM대우로 넘어갔고 현대차는 기아를 흡수하여 세계 완성차업계 5위권의 기업이 되었다. 이제 체급이 달라진 현대차는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새로운 경차로 과감하게 SUV를 선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과거 티코의 오너였으며 아토스의 형제차인 2001년형 비스토를 재미있게 몰고 다녔던 필자에게 경형 SUV 캐스퍼의 시승은 무척 흥미로운 것이었다. 출근시간 이전 새벽 공기가 가시기도 전 도착한 용인 '캐스퍼 스튜디오'에는 다양한 컬러의 귀여운 캐스퍼 수 십대가 준비를 마치고 정렬해 있었다.
외관의 첫인상은 경차 기준에 맞춘 차량이니 만큼 작고 아담했지만 디자인에서 볼륨감을 강조하여 SUV 느낌을 충분히 살려주고 있었다. 전면부에 있는 원형 발광다이오드(LED) 주행등은 처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서 아이가 동그랗고 크게 뜬 눈처럼 귀여운 인상을 만들어 내었다. 넓게 배치된 파라메트릭 패턴 그릴과 하단 스키드플레이트는 차량의 성격을 스포티하게 정의해주는 듯하다.
측면에서 바라본 캐스퍼는 휠 아치의 곡선 디자인이 조약돌처럼 단단한 느낌이고, A-필러를 검정색으로 마감해 개방적인 느낌이 들었다. 레이보다 조금 낮은 키는 타고 내리기 좋은 편안한 높이를 가진 SUV로 보였다. 후면에도 파라메트릭 패턴을 적용하고 주행등과 같은 형태의 원형 턴 시그널 램프를 달아 일체감을 주었다. 좌우의 폭을 키운 '와일드 테일게이트'를 적용한 것도 적재 편의성을 높여준다.
시승차는 터보 엔진에 풀옵션 구성으로 편의장비가 풍부했다. 실내 공간은 1열과 2열 시트를 모두 앞뒤로 적절히 움직일 수 있으며, 운전석을 비롯한 전 시트가 풀 폴딩이 되었다. 특히 2열 등받이는 40도로 넉넉하게 젖혀졌다. 센터 에어백이 동급 최초로 적용됐고, 풀 옵션 모델에는 핸들 및 시트 열선과 운전석 냉방 시트가 제공되었다. 스티어링 휠은 각도만 조절되고 틸팅 기능이 안 되는 것이 아쉬웠다. 작은 시트와 작은 공간의 차량이니 만큼 다양한 체형에 따른 자세에 기능이 필요할 듯 보였다. 시트는 보기보다 편안하고 질감이 좋았다.
4.2인치 컬러 LCD를 적용한 클러스터와 8인치 내비게이션은 시인성이 좋다. 음성인식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포함하여 편의성을 높였다. 각종 버튼들은 작동감이 좋고 식별하기 쉬웠다. 공조장치의 1~3단도 푸시로 편리하게 작동된다. 조수석 대시보드 수납공간과 곳곳에 마련된 USB 충전기도 유용하다. 어깨 공간의 여유는 부족하나 천정이 높아 답답한 느낌이 없는데, 장착된 선루프는 오픈 기능만 되고 틸팅은 되지 않았다. 센터 터널이 없어 운전석과 조수석을 쉽게 오갈 수 있다는 것도 활용성이 좋아 보인다.
시동을 걸자 터보 엔진의 사운드가 우렁차다. 시승 모델은 최고출력 100마력, 최대토크 17.5kg·m의 가솔린 T-GDI 엔진이다. 공회전 소음과 진동은 다소 느껴지는 편이다. 주행 느낌은 가뿐하다. 경차 수준에서는 조용한 주행감각인데 노면의 느낌은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순간 가속에서는 제법 힘을 느낄 수 있다. 주행 중 차선 유지 장치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므로, 크기는 작지만 뭔가 안전한 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1.0 터보 T-GDI 엔진은 매끄럽지는 않지만 힘이 넘치는 기분이다.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았을 때는 거친 배기음을 낸다.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일반 모델의 1.0 MPI 엔진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급 옵션인 17인치 휠과 205/45 타이어는 차급에 비하여 너무 예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주행에서는 부드러운 느낌이다. 생각보다 안정감이 있어 국도에서 무의식중 100km를 살짝 넘기고 빠르게 감속하기도 했다.
서스펜션은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단단하다. 코너링에서 과한 쏠림은 없고 요철도 비교적 무난하게 넘는다. 작은 차체로 인해 노면의 굴곡과 상태에 반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장 아쉬운 것은 4단 자동변속기이다. 변속타이밍이 더딘 편이고 엔진과 구동계의 연결감도 매끈하지 못하다. 오히려 간결한 수동변속기 모델이 있다면 더 재미있게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과거 경차를 탔던 경험으로 캐스퍼를 보면 국내 경차 수준이 이만큼 발전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385만 원부터 시작하는 스마트 트림이 있고, 모던 1590만 원, 인스퍼레이션 1870만 원까지 선택의 폭이 있으나 자동변속기, 주행보조장치 등을 모두 기본으로 두어 가장 실용적인 선택을 하려는 구매자의 선택에 제한이 있다. 상위 등급에다 선루프 등의 추가 옵션을 선택하면 2000만 원대까지 가격대가 올라간다.
여러 편의장치를 구매자가 모두 필요로 하여 가격이 높아지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수동변속기를 기본으로 하며 첨단운전보조시스템이 없는 기본형 모델이 있고 패키지로 묶여 있는 옵션을 꼭 필요한 것만 따로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물론 요즘 누가 수동변속기를 찾을까마는 기본형을 가장 심플하게 구성하고 옵션도 심플하게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Fact File 현대 캐스퍼 인스퍼레인션 터보
가격 1960만 원
크기(길이x넓이x높이) 3595 x 1595 x 1605mm
휠베이스 2400mm
엔진 가솔린 I3 싱글터보 T-GDI
최고출력 100마력
최대토크 17.5kg·m
변속기 자동 4단
연비(복합) 12.3~12.8km/L(경형)
CO 2 배출량 130~136g/km
서스펜션(앞/뒤) 맥퍼슨 스트럿 / 토션빔
브레이크(앞/뒤) 모두 디스크
타이어 205/45 R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