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집에 가면 빠질 수 없는 밑반찬, 단무지. 그런데 실제로 중국에 가면 단무지를 보기가 어렵다. 실제로 한국에서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마라탕, 양꼬치집을 봐도 단무지 대신 짜사이를 준다. 오히려 단무지랑 비슷한 건 일식집에서 더 많이 본 것 같은데... 유튜브 댓글로 ‘중국집에서 왜 단무지를 주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중국집에서 일본 음식인 단무지를 주는 이유
우선, 단무지는 중국보다는 일본에서 대중화된 음식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자. 사실 야채를 절여서 먹는 요리법은 한중일 세 나라 모두 고대부터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특히 단무지가 일본 음식으로 인정되는 이유는, 일본의 ‘다꾸앙(澤庵)’이라는 스님 때문이다. 참고로 어르신들이 단무지를 부를 때 말씀하시는 그 ‘다꽝’ 맞다.

이와 관련해 고구려의 택암(澤庵) 스님이 일본에 단무지를 전해주었다는 설(그래픽 : 택암=澤庵=たくあん=다꾸앙) 등이 전해지지만 근거는 부족하다. 가장 유력한 설은 일본 에도 시대의 고승 ‘다꾸앙 소호’에서 유래했다는 거다. 에도시대 초기 식량이 부족할 때 다꾸앙 스님이 무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도록 소금에 절여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 당시의 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우연히 이를 맛보고 맛이 좋다며 이 음식을 ‘다꾸앙’이라고 명명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의 대중 음식이 되었다는 거다.
그런데 한국에서 단무지를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일식집이 아닌 중국집. 어쩌다가 단무지는 중국집의 밑반찬이 되었을까? 중국집 이름에 ‘각’, ‘루’, ‘원’이 많은 이유처럼 역시 개항기 역사와 관련이 있다.

짜장면박물관 김남희 학예사
“개항을 하게 되면서 일본인 중국인 이런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산동 지방에서 넘어온 중국인들이 거의 대부분 중국 요리집을 차리면서 손님들로 일본인들이 대부분 오는 거에요. 은행이나 관공서들, 세관 이런 데는 거의 대부분 일본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돈을 많이 갖고 있었던 사람은 일본인인 거에요.”
개항 당시 우리나라에는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중국인들은 주로 중국 음식점을 차렸고 일본인들은 관공서나 금융 기관에서 일을 했다. 중국집의 주요 고객은 큰 돈을 만지는 일본인들이었고,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내놓게 되었다는 거다.
당시 개항지였던 인천에는 화교들이 중심이 된 대규모 야채 시장도 있었는데, 여기서 가장 많이 유통된 농산물 중 하나가 바로 무였다. 자연스럽게 무로 만든 일본식 절임 채소인 단무지가 중국집 식탁에 올라가게 됐다.

짜장면박물관 김남희 학예사
“특히 무 같은 경우는 경동 사거리라는 지역이 있는데 거기가 화교가 모여서 야채시장이 엄청 크게 있었던 지역이었어요. 그 중에 가장 많이 경작을 했었던 농산물이 무, 배추 이런 것들이었어요.”

그런데 중국집 메뉴판을 살펴보면, 이상한 건 단무지 뿐만이 아니다. 내가 아는 우동은 분명 일본 음식인데... 중국집에서 파는 이 우동은 뭐지? 호기심에 주문했더니, 면이 굵고 가쓰오부시로 국물을 낸 일본 우동과 다르게 중국집 우동은 면이 굵지도 않고 해물과 계란이 들어갔다. 이 음식은 왜 우동이라는 일본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중국집 메뉴판에 떡하니 있는 걸까?

여기 담긴 이야기도 단무지와 비슷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우리가 아는 그 일본 우동과 중국집 우동은 원래 다른 음식이다. 박찬일 셰프의 저서에 따르면, 중국집 우동의 원래 이름은 다루몐(打卤面)이었다. 다루몐은 개항기에 한국에 들어오면서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우동’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옛 중국집 메뉴판을 보면 우동의 한자 표기가 ‘다루몐’으로 되어 있다.일본인들 입맛에 맞춰 단무지를 낸 것처럼, 다루몐도 일본인들을 위해 이름이 바뀐 거다.
늘 중국집 식탁을 지키던 단무지에 한중일의 근대사가 담겨있었다니...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 메뉴는 중국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