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네덜란드 잔부르트(Zandvoort) 서킷에서 2021 F1 13라운드 경기가 열렸다. F1 네덜란드 그랑프리 개최는 1985년 이후 최초다. 현재 드라이버 순위 1, 2위를 다투는 레드불 소속 막스 베르스타펜의 고향이라, 관중석은 온통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잔부르트 서킷 길이는 약 4.26㎞로 짧은 편. 마치 나스카(NASCAR) 경기장처럼 경사진 코너가 많다. 예선 결과 홈 그랑프리를 맞은 베르스타펜이 폴 포지션에, 메르세데스-AMG의 루이스 해밀턴과 발테리 보타스가 나란히 2, 3위에 올랐다. 세르지오 페레즈는 16위까지 떨어지며, 또다시 베르스타펜의 외로운 싸움을 예고했다.
알파 로메오의 안토니오 지오비나치는 F1 데뷔 후 가장 높은 순위인 7번 그리드를 차지했다. 팀 메이트 키미 라이코넨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리저브 드라이버인 로버트 쿠비차가 운전대를 잡았다.

폭이 좁고 급격한 코너가 많아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트랙이지만, 의외로 큰 변수 없이 레이스를 시작했다. 가장 돋보인 선수는 단연 베르스타펜. 1번 코너 탈출 후 무서운 기세로 해밀턴과의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AMG는 해밀턴과 보타스의 피트인 시점을 달리해, 2:1 싸움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다. 우선 21랩에 해밀턴을 불러 타이어를 바꿨다. 언더컷 전략을 차단하기 위해 곧바로 베르스타펜도 피트인. 간격을 충분히 벌려 둔 덕분에 다시 해밀턴 앞으로 복귀했다. 이후 9바퀴 만에 보타스를 추월해 메르세데스-AMG의 작전을 흔들었다.


보타스의 양보를 받은 해밀턴도 꾸준히 추격을 이어갔다. 운명은 레이스 중반에 엇갈렸다. 각 팀의 판단에 따라 해밀턴은 미디엄을, 베르스타펜은 하드 타이어를 끼우고 나왔다. 둘 다 마지막 타이어 교체를 치른 셈인데, 해밀턴이 먼저 ‘이 타이어로 끝까지 가기 힘들다’라는 무전을 보냈다. 점점 벌어지는 거리는 좁힐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 1바퀴에서 패스티스트 랩을 따내기 위해 소프트 타이어를 꺼내 들었다.

홈 팬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 베르스타펜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지난 몇몇 경기에서 안타까운 사고를 겪으며 내줬던 드라이버 챔피언십 1위도 되찾았다. 16위에서 출발한 페레즈도 어느새 8위까지 올라와 포인트를 챙겼다. 알파 타우리의 피에르 가슬리가 4위를 차지해 좋은 컨디션을 보여줬으며, 벨기에에서 첫 포디움을 얻어낸 윌리엄스의 조지 러셀은 아쉽게도 리타이어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다음 라운드는 이번 주말, 이탈리아 몬자 서킷에서 열릴 예정이다.

드라이버 이적 소식도 흥미롭다. 21년 차 드라이버 키미 라이코넨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F1에서 은퇴한다. 알파 로메오의 빈자리는 보타스가 채운다. 1~2년 단위가 아닌 다년 계약을 맺어 오랜 시간 알파 로메오와 함께할 예정이다. 보타스는 인터뷰를 통해 “알파 로메오는 설명이 필요 없는 팀이다. 내년부터 적용하는 새로운 규정을 바탕으로 좋은 성과를 위해 노력하겠다”라며 이적 소감을 말했다.

그렇다면 메르세데스-AMG의 한자리는? 예상대로 러셀이 세 꼭지별 레이싱 슈트를 입는다. 2019년 데뷔 후 세 시즌 만에 F1 최 정상 팀에 합류한 셈. 러셀은 개인 SNS를 통해 “윌리엄스에서 활동한 시간은 나에게 매우 영광이었다. 3년 동안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왔다. 메르세데스로의 이적은 또 다른 기회다. 나를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은 알렉스 알본이다. 알본은 2019년과 2020년에 레드불 드라이버로 활동했지만, 세르지오 페레즈가 합류하면서 리저브 및 테스트 드라이버를 담당하고 있었다. 내년부터는 러셀을 대신해 윌리엄스에서 다시 F1 커리어를 쌓는다. 재미있는 점은 알본을 두고 벌이는 레드불과 메르세데스-AMG의 신경전이다. 알본은 주니어 시절부터 레드불의 지원을 받고 성장했는데, 하필 윌리엄스는 메르세데스-AMG와 파트너십 관계다. 이렇듯 선수 이적 소식만으로도 내년 F1의 볼거리는 풍성할 전망이다.
글 서동현 기자
사진 F1, 각 레이싱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