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논문 쓰는 게 훨씬 편해요"..자국어를 어려워하는 네덜란드 대학생들

박수민 2021. 12. 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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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유학생 비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2021년 기준 네덜란드 대학생 3만 4천 명 중 23%가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다.

네덜란드가 이렇게 유학생들에게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영어로 된 대학 과정이 많다는 것이다. 수업은 물론 토론, 과제 모두 영어가 주 언어이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할 수 있다. 

이러한 네덜란드 대학 환경 덕분에 학생들은 학계에 언어 장벽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오히려 학습 내용을 자국어로 설명하기 부담스럽다는 학생들도 다수이다. 실제로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제 전공에 대해서는 오히려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쉬워요. 학계 용어를 네덜란드어로는 몰라도 영어로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라고 이야기한다.

◆2018년 기준 총 대학생 중 유학생 비율. 한국이 3.3%(파란색), 유럽 평균이 7.5%(빨간색)인데 비해 네덜란드는 이미 12%(보라색) 수준이었다. ⓒOECD Data

또한 대부분의 전공이 영어 과정으로만 개설돼 있어 학생의 전공 선택권이 제약된다는 부작용도 있다. 2020년 네덜란드 대학 연합(VSNU)에 따르면 네덜란드 내 석사 과정 대부분인 76%가 영어 학위 과정으로 개설돼 있다.

네덜란드 대학의 ‘영어화’ 현상, 원인은?

이렇게 고등 교육에서 영어를 주 언어로 쓰는 현상을 ‘영어화(Anglicization)’라고 하는데, 마스트리히트 대학의 R. 윌킨슨 연구 교수와 R. 가브리엘 교수는 유럽 15개국을 대상으로 대학 교육의 영어화 현황 조사 결과를 엮어 지난 10월에 책으로 출간했다. 예상했다시피 네덜란드는 유럽 내에서도 영어화가 상당히 진행된 수준이었다. 

연구진은 영어화 심화의 이유 중 하나로 초기 정부 정책을 들고 있다. 1999년, 유럽 연합(EU)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각 국가 간 고등교육 과정을 상호 비교할 수 있게끔 2010년까지 정비하도록 결의하는 '볼로냐 프로세스'를 선언했다. 덕분에 학생들은 유럽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됐으며, 이러한 기조에 발맞춰 네덜란드 대학들은 빠르게 영어로 졸업이 가능한 전공 과정을 개설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유학생 유치 실적에 따라 각 대학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연구진인 가브리엘 교수는 또한 드 폴크스크란트(de Volkskrant)와의 인터뷰에서 "네덜란드에서는 자국어를 문화유산이라기보다는 경제재(economic good)로 취급하는 경향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발트 3국은 소련 해체 이후 문화 보전을 목적으로 자국어로 고등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행하였지만 네덜란드는 이와 달리 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대학 언어에 접근했기 때문에 현재 영어화가 더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영어화 전망 및 네덜란드의 대응은?

연구진은 대학 내 언어 정책을 지금처럼 대학 자율에 맡길 경우 영어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졸업생의 주 사용 언어가 무엇이었든 크게 상관이 없고, 대학은 유학생 수에 따라 학교 수입과 명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굳이 자국어 과정을 장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네덜란드 국회에서는 대학의 과도한 유학생 유치를 지양하기 위해 특정 전공 과정에서 비(非) EU 학생 수를 제한하는 등의 논의도 이루어 지고 있다. 다만 네덜란드는 지난 3월 총리 선거 이후 9개월 만에 연정이 가까스로 협의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빠른 진척이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러 한국 대학에서도 국제화를 외치며 영어 강의를 확대하고, 줄어든 학령 인구로 인한 대학 입학 정원을 채우기 위해 유학생 유치에 힘쓰고 있다. 과연 한국에도 ‘영어화’ 현상이 심화될 것인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우리는 네덜란드의 사례를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박수민 글로벌 리포터 korean.teacher.soomin@gmail.com

■ 필자 소개

로테르담 한글학교 교사블로그: https://brunch.co.kr/@soomi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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