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라탄이 말했다, "나는 내가 최고라는 진리를 그냥 안다"
"나는 내가 최고라는 진리를 그냥 안다." 만 40세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마지막을 그려보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예상 가능한 길은 무관의 제왕 즐라탄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이탈리아 축구 클럽 AC 밀란의 2021-22 시즌 경기 영상들을 재생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이브라, 이브라, 이브라아아아아아아아!”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듯한 호흡으로 해설자가 누군가의 이름을 외쳐대면, 곧 이름 끝을 길게 빼는 환호와 함께 상대 골망이 출렁인다. 카메라는 익숙한 듯 ‘맨번 헤어스타일’의 선수를 찾아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다.
국내에서는 종종 한 인기 배우와 닮은꼴 스타로 소비되는 이름이지만 그라운드에서는 큰 키(195㎝)와 거대한 체격, 눈부신 테크닉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선수다. 그리고 골을 잘 넣는다. 묘기에 가까운 ‘아크로바틱 피니시’가 트레이드마크다. 프로 통산 득점 기록은 500골을 훌쩍 넘는다. 어떤 말이냐면, 1990년대부터 골을 넣기 시작해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쳐 2020년대에도 득점 기록을 이어가는 중이라는 뜻이다. 출전 기록이 300경기 이상인 선수를 상대할 때 “당신이 뛴 것보다 내가 넣은 골 수가 더 많아!”라는 ‘꼰대력’을 발휘해도 반박 불가(실화다!).
11월21일, 즐라탄은 득점 기록을 추가했다. 세리에 A(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 리그) 13라운드에서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두 골을 터트렸다. 팀 중계진이 ‘이브라(애칭)’를 외친 횟수는 세 번이었다. 즐라탄이 직접 넣은 두 골 외에 상대 자책골을 유도한 슛까지 포함해서다. 이탈리아 축구 통계 분석 계정인 옵타파올로는 이날 경기 후 트위터를 통해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즐라탄은 세리에 A 한 경기에서 두 골 이상 기록한 최고령 선수이자 유럽 5대 리그에서 한 경기 두 골 이상 기록한 최초의 40세 선수가 되었다.”
즐라탄의 득점 소식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는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고 있는 선수이고, 경기는 세리에 A의 수많은 일정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익숙하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일까? 그렇지 않다. 즐라탄의 나이는 만으로 40세. 흔히 30대 중반이면 황혼기로 여겨지는 현역 생활을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연장하고 있다. 프로 데뷔 때부터 정해진 틀이나 규범에서 한 발짝 벗어난 선수로 강렬한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해도, 신체 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시기에 세월을 거스르는 활약상을 그저 저항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즐라탄은 최근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하면서 “매일 아침 온몸이 아프다. 그래도 목표가 있는 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한 계속 뛰겠다”라고 말했다. 언제라도 골을 넣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90분을 지배한다. 피오렌티나전은 그런 의지로 만들어가는 일상 중 하나였다.
‘아드레날린’ 운운은 즐라탄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자극과 긴장의 순간을 대하는 자신감에 관한 은유다. 서른다섯 나이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행을 만류하는 주변인들을 대할 때, 골로 존재를 증명하는 자신 앞에서 돌림노래처럼 은퇴 시기를 묻는 질문들이 이어질 때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요컨대 자신감이 선수 생활의 원천이다. 즐라탄의 자신감은 거침없는 입담과 한 묶음이다. 인터넷에는 그의 어록을 소개하는 문서가 수없이 많다. 대부분 자신이 최고라는 신념이 넘치는 말들이다. 이런 식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최고의 선물을 줬다. 바로 나 자신이다(2018년 미국 이적 당시)” “나는 즐라탄을 믿는다(2020년, AC 밀란 복귀 후 선발 9경기 연속골 기록 후)”. 〈포포투〉 인터뷰에서 자신이 최고인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세상에서 제일 완성된 스트라이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개인 기량, 키, 체격, 여러 능력에서 나만 한 선수는 없다. 혹시 나 같은 공격수를 찾으면 알려달라. 내가 비교해주겠다.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오죽하면 자서전 제목마저 자기애의 절정이다. 〈나는 즐라탄이다(I am Zlatan Ibrahimovic)〉.
흥미롭게도 이렇게 거대한 자아는 분노와 불안을 토양으로 만들어졌다. 즐라탄은 내재된 분노가 경기력을 돕는 타입이라고 인정한 적 있다. 성장 환경부터 녹록하지 않았다. 크로아티아 출신 어머니와 보스니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스웨덴 항구도시 말뫼의 이민자 빈민촌에서 자랐다. 부모는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이웃들은 거칠었다.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프로 선수가 되어 반드시 그곳을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즐라탄은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았으니까 나라도 나를 믿어야 했다. 세상과 싸워야 했고, 내 가치를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라고 회고한다. 아약스 시절 그를 지켜본 다비드 엔트는 〈풋볼멘〉에서 프로 초기 즐라탄의 불안감을 이렇게 묘사했다. “누가 날 건드리도록 놔두지 않겠다. 내가 먼저 혼내주겠다는 식이었다.” 그라운드에서 일으키는 크고 작은 소동도 이런 기질 탓인지 모른다. 그리고 논란마저 즐긴다.
마음만 먹으면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수
즐라탄은 말뫼에서 프로로 데뷔해 아약스, 유벤투스, 인테르나치오날레, 바르셀로나,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LA 갤럭시를 거쳤다. 7개국 9개 클럽을 오가는 동안 리그 우승 11회(아약스 2회, 인테르 3회, 바르셀로나·밀란 각 1회, 파리 생제르맹 4회)를 기록했다. 우승 타이틀을 모두 합치면 33개에 달한다. 반면 개인상에는 이렇다 할 운이 없었다. 2012년 잉글랜드와 친선경기에서 장거리(32m) 오버헤드킥으로 푸스카스상을 받은 정도다. 세계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 타이틀도 없다. 한때 메시와 호날두가 양분한 세계에 즐라탄을 참전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즐라탄이 발롱도르를 수상하지 못한 이유는 챔피언스리그와 유로, 월드컵 같은 메이저 대회 우승 경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메시는 지난여름 코파아메리카(남미 선수권)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어 2021 발롱도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동시에 발롱도르 최다 수상자(7회)가 됐다. 발롱도르 5회 수상의 호날두도 메이저 대회에서 인상적인 순간을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즐라탄은? “내가 최고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뭔가를 손에 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최고라는 진리를 그냥 안다(〈포포투〉 2018년 인터뷰).”
타이틀보다 아드레날린을 더 신뢰하는 그는 마음만 먹으면 골을 넣을 수 있다. 은퇴 계획에 관해 언제나 “경기력을 유지하는 한”이라고 단서를 달지만, 골을 더 넣고 싶어 하는 그의 욕심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즐라탄은 소속 팀 밀란과 계약 연장을 논의 중이다. 내년 6월 만료되는 기존 계약 기간을 2023년까지 1년 더 늘리는 안이다. 그 사이 중요한 이벤트가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이다. 즐라탄의 조국 스웨덴은 본선행을 확정하지 못했다.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카타르로 갈 수 있다. 즐라탄에게 주어진 사명일 것이다.
그의 마지막을 그려보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즐라탄은 이미 스타플레이어들의 종착지로 여겨진 미국에서 다시 유럽으로 돌아왔고, 유로 2016 이후 물러났던 대표팀에도 복귀했다. 예상 가능한 길은 즐라탄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축구사에 기록될 또 한 명의 레전드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그를 즐거워하는 것으로 충분한 시간이다.
배진경 (전 <포포투> 편집장)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