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로 떠난 에스파' 엔터 업계는 왜 세계관을 구축하려 할까?

조회수 2022. 1.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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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세계관의 역할은 견고한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다. 세계관은 팬들의 2차 창작을 독려한다. 세계관은 팬들이 SNS 홍보나 투표와 같은 사회적 행동을 이끌고, 팬들의 참여를 통해 세계관이 확장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왜 세계관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걸까. BTS의 소속사 하이브에서 세계관라이브러리파트장을 맡았던 김동은 메타버스제작사 대표가 DBR 334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세계관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 11월 BTS의 소속사 하이브는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반한 네 편의 웹툰을 내년 1월 네이버 웹툰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전통 호랑이 설화를 재해석하고 BTS의 일곱 멤버가 등장하는 웹툰 '세븐 페이츠: 차코'가 그중 하나다. BTS라는 지적재산권(IP)이 확장되는 중심에는 '학교 3부작', '화양연화', '윙스', '러브 유어 셀프' 등 각 앨범 콘셉트가 유기적으로 엮여 구성된 'BU(BTS Univers)'가 있다.

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뮤직 제공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세계관에 진지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보이그룹 엑소(EXO)는 2012년 '엑소 플래닛'이라는 미지의 행성을 배경으로 한 세계관을 갖고 데뷔했다. 멤버들은 순간이동이나 물, 바람을 다스리는 등 초능력을 갖고 미지의 행성에서 온 새로운 스타들로 표현됐다.

세계관에 대한 SM의 진심은 작년 4인조 걸그룹 '에스파(aespa)'가 데뷔하며 정점에 달했다. 데뷔곡인 'Black Mamba(블랙맘바)'부터 이후 발매된 'Next Level(넥스트 레벨)', 'Savage(새비지)'까지 광야라는 세계관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최근에는 SMCU(SM Culture Universe)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천명하며 SM 소속 다른 가수들 역시 광야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통합하고 있다.

엑소가 데뷔할 무렵만 해도 세계관을 갖춘 아이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살펴보면 세계관을 갖추지 않은 아이돌을 찾는 게 더 어렵다. 설정이 탄탄하지는 않더라도 저마다의 독특한 콘셉트를 갖추고 다양한 콘텐츠로 뻗어 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만 너도나도 세계관을 만든다면 세계관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승부수를 띄우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관을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통일감 있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구성을 만드는 게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팬덤 경제의 장작, 세계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세계관의 역할이자 목표는 견고한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다. 세계관이 충실한 팬덤을 쌓는 게 중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팬덤 내 2차 창작을 촉진할 수 있다. 둘째, 팬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마지막으로, 폭넓은 IP 확장을 도모할 수 있다.

2차 창작 콘텐츠 시장에서 2차 시장이란 보통 비디오, DVD, OTT 또는 굿즈 등을 통해 부가적인 매출을 내는 시장을 뜻한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회사가 주도하는 2차 시장이 있다. 그러나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 팬덤 사이에서는 다른 양상의 2차 시장이 하나 더 존재한다. 바로 회사가 판매한 굿즈나 앨범을 팬들끼리 리세일하거나 팬들이 직접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는 등 팬들이 주체가 되는 시장이다.

엑소,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돌 문화, 그리고 서브 컬처를 다루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이 같은 2차 시장과 창작물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 2차 시장의 매출이 회사로 흡수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은 구독 모델에 가깝다. 앨범이 나올 때마다 앨범을 비롯해 굿즈, 콘서트 등이 시즌에 맞춰 기획된다. 한 팬이 2차 시장을 통해 수익을 얻었다면 이는 곧 다음 앨범 시즌에 신상품을 구매할 예산이 되는 셈이다. 팬들은 굿즈를 공유하는 등 2차 시장에서의 거래를 거치며 연대감을 형성한다.

소속사가 적극적으로 2차 시장을 부추기면 어떻게 될까. 하나의 인격체인 아티스트가 돈벌이의 수단이라는 인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순간 팬들의 질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지점에서 세계관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아이돌 그룹이 세계관을 갖추고 있다면 팬들의 2차 창작을 독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창작의 대상 역시 넓어진다. 과거에는 멤버들이 거의 유일한 2차 창작 대상이었다면 현재는 세계관 내 모든 요소가 2차 창작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요인들이 서로 연계돼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아이돌 세계에서는 팬들을 세계관에 초대해 충성도를 강화하고 있다. BTS, 엑소 모두 마찬가지로 독특한 설정의 가상 세계가 배경이 되면 팬들은 수사관이 돼 세계관 곳곳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뮤직비디오에 나온 소품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번 타이틀곡이 이전 곡과 어떤 관계인지, 멤버 중 누가 숨은 빌런인지 등 각자가 추리한 내용을 팬 커뮤니티에 공유한다. 이 같은 참여 과정을 통해 팬들은 더욱 아이돌의 세계관에 빠져들고 팬덤에 대한 소속감과 아티스트에 대한 충성심이 깊어진다.

세계관 구축 방법

팬들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위해서는 세계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결국 이 세계관을 누구에게 소구할 것인지를 설정하는 게 키포인트인데 기존 마케팅에서 주로 차용하는 인구통계적 방법이 꼭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돌의 팬이라는 정체성은 이들의 '부캐'에 가깝다. '20대 여성 팬을 모으기 위해 어떤 세계관이 필요할까'라는 접근보다는 '우리의 팬들이 어떤 가치에 공감할까'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키워드 도출 핵심 메시지와 연관된 키워드들을 모아 세계관의 재료들을 도출하는 과정은 브레인스토밍과 비슷하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추상적이거나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각 단어를 서로 연결했을 때, 다른 단어들과 가장 연결고리가 많은 단어가 핵심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단, 이 같은 단어들을 직접 드러내는 건 전쟁이 싫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육성으로 "전쟁이 싫다"고 외치는 격이다. 좀 더 고급스럽게 에둘러 표현하기 위해서는 2~3순위 단어를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SMCU의 핵심인 광야, 사진|SMTOWN 유튜브 캡쳐

이후 연결 관계가 보이는 단어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 인물, 사건, 사물, 배경을 토대로 떠올린 단어들을 묶으면 각 이미지가 연상된다. 예컨대 '은잔', '키스', '루비'라는 단어를 조합하면 '뱀파이어'라는 개념이 연상된다. 여기서 선택받은 단어들이 앞으로의 세계관에서 쓰일 기본 재료이자 '기믹(Gimmick)'이 되며, 이 장치들 덕분에 향후 다른 앨범을 내도 세계관은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

세계관의 기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은 장르가 수행한다. 같은 기억에 로맨스를 입힐 수도 있고 SF를 입힐 수도 있다. 과거에는 장르 선택에 있어 서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최근에는 그 중심이 캐릭터로 옮겨왔다. 스토리텔링 주요 기믹과 장르가 정해졌다면 배경에서 인물이 어떤 사건을 어떻게 풀어갈지는 아트디렉터들의 몫이다. 첫 작업이 앨범 재킷이 될 수도 있고 뮤직비디오가 될 수도 있다.

세계관 활용을 위한 조언

고생 끝에 만든 세계관을 어떻게 활용할지 감이 오지 않거나 또는 세계관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자체가 서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언을 제안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종종 세계관을 만들고 싶어 하는 브랜드와 미팅을 가지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세계관을 만들면 진짜 매출이 오르나요?"다. 안타깝게도 세계관의 효과를 수치로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고 매출과 같은 재무적 지표를 통해 이해하고자 하면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세계관의 유용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객 충성도 등 세계관의 활용과 걸맞은 지표를 차용해야 할 것이다.

효율을 따지지 마라. 세계관 구축은 긴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키워드만 해도 3000~4000개를 뽑아낸다. 그간의 고생을 치하하기 위해 모든 요소를 한 세계관에 쏟아붓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4000개의 키워드가 모두 담긴 세계관이 탄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설정 간의 오류가 생기거나 세계관이 너무 방대하고 복잡해 팬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할 것이다. 세계관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완벽한 설정을 갖추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에스파,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세계관도 바뀐다. 세계관이 절대 불변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될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세계관을 짜도 된다. 더 이상 기존 콘셉트가 먹히지 않는데 현재의 세계관 안에서는 콘셉트를 바꾸기 어렵거나, 혹은 멤버의 탈퇴 등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로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처럼 세계관이 바뀔 수 있는 이유는 세계관이 팬들과의 약속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피치 못하게 세계관에 수정이 필요하다면 더욱 큰 공을 들여 팬들이 그 이유와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합의를 이뤄야 한다.

팬들은 멤버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할 수도 있고, 멤버가 노래하는 모습을 좋아할 수도 있다. 아이돌 멤버가 드라마 출연 소식을 전했을 때 환호하는 팬들도 있지만 걱정이 앞서는 팬들도 있다. 이처럼 팬들의 니즈와 취향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며 몰입 수준도 전부 다르다. 세계관은 팬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진화하지만 이를 원하는 방향대로 통제를 가하는 순간 세계관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팬들이 생겨날 것이다.

세계관에 대한 팬들의 몰입 정도와 감상은 모두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건강한 팬덤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팬덤 내의 강요는 물론 기획자들의 강요 역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자발적 행태로 흥미를 느끼고 덕질에 임할 때 든든한 팬덤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334호
필자 김동은 메타버스제작사 대표
정리 인터비즈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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