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카리브해의 세인트토머스 섬 해안가에 연구소 한 채가 지어졌습니다.
돌고래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쳐 보는 연구를 진행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연구 책임자인 신경 생리학자 존 릴리의 지시 하에 나사의 지원을 받고, 마거릿 하우 러밧이라는 여성이 보조 연구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실험 대상이 된 돌고래는 이제 갓 성체가 된 수컷 돌고래 피터였습니다.


마거릿과 열심히 훈련한 피터는 10주만에 인간의 언어를 비슷하게 따라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마거릿은 피터가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강압적인 실험의 결과가 아닌 깊은 교감과 유대로 인한 성과라고 말했습니다.


마거릿은 급기야 피터와 더 깊은 교감을 나누기 위해 아예 거처를 연구소 안으로 옮겼습니다.
연구소를 개조해 얕은 수심의 풀장에 책상과 의자를 두고 작업하며 침대도 수조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마거릿과 피터의 교감이 깊어지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피터가 마거릿을 이성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연구진은 피터의 수조에 비슷한 나이의 암컷 돌고래도 넣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생물학자 릴리가 연구의 진전에 효과가 있을까 싶어 향정신성약물인 LSD를 돌고래에게 투약한 것이 드러나 돌핀 하우스는 나사의 지원이 끊겨 실험은 종료되었습니다.
연구소 직원들이 나간 후 마거릿 혼자 남아 피터를 지키다 피터는 개인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이애미에 위치한 비좁은 수조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피터는 수조 안에서 몇 주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습니다.
일주일 중 6일을 마거릿과 함께 생활하며 마거릿을 사랑했던 피터가 이별이 슬퍼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연구소장 존 릴리는 연구 종료 15년 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돌고래의 실험과 공연을 반대하는 메세지를 대중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존 릴리는 "나에게 돌고래를 잡아서 가두고 실험할 권리는 없었다"며 "야생에 사는 돌고래를 관찰했어야 한다"고 뉘우쳤습니다.

실험 당시 피터의 수의사였던 앤디 윌리엄슨은 "돌핀 하우스의 실험은 돌고래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사람과의 이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마거릿은 피터가 죽은 후 돌핀 하우스를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개조해 피터의 사진들을 걸어두고 그 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돌고래는 동물 중에서도 특히 더 높은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었던 것 같아 씁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