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인제 서킷에 울린 포르쉐 3중주, 포르쉐 GT 트랙 익스피리언스

일단 진정부터 해야겠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귓가에 엔진음이 맴돌며 미소가 지어진다. 즐거움에 취해 함박웃음 지으며 차에서 내리던 당시의 기분으로, 하지만 흥분은 가라앉힌 채 키보드를 쳐야겠다. 오늘은 포르쉐가 국내시장에 새롭게 선보인 GT 모델 3인방을 인제 서킷에서 타고 온 얘기다.


718 GT4 & 911 GT3

포르쉐는 스포츠카 브랜드다. SUV 카이엔도, 세단 파나메라도 만들고 있지만 생김새만 다를 뿐 모두 포르쉐다운, 명백한 스포츠카의 달리기를 자랑한다. 이런 포르쉐의 다양한 라인업 중 가장 순수한 모델에 붙는 이름이 바로 ‘GT’다.


포르쉐 GT 3형제

이날 경험한 GT는 718 GT4, 911 GT3 그리고 카이엔 터보 GT다. 모두 GT 배지를 달았지만 차종은 물론이고, 차급, 엔진 위치, 구동방식까지 다르다. 그 위에 포르쉐가 각 모델별로 추구하는 바를 반영시켰다. 이 글은 세 GT의 차이에 관한 소감이기도 하다.



718 GT4
718은 포르쉐의 막내다. 그리고 718 GT4는 막내의 최강 버전. 현행 718의 후속이 머지않아 등장하고, 출시부터 단종까지 모델 사이클 전체를 통해 조금씩 더 강력한 모델을 야금야금 내놓는 포르쉐의 행보로 미루어 ‘갈 데까지 간 718’인 셈이다.


일반 718보다 30mm 더 낮은 차체
선대 911(991) GT3에서 빌려온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시스템
고정식 리어윙

엔진부터 다르다. 일반 718의 4기통 터보가 아닌 달리 6기통 자연흡기다. 911 카레라의 3리터 수평대향 6기통 트윈터보 엔진을 가져다, 터보 떼고 대신 배기량을 4리터로 키웠다. 최고출력은 911 카레라(392마력)와 카레라 S(458마력)의 중간인 428마력. 최대토크는 카레라(45.9kgm)보다 낮은 43.9kgm다. 터보가 없어진 탓이다.


6점식 안전밸트가 포함된 카본 버킷시트
직물 도어핸들

터보가 없어진 덕분도 있다. 계기반 엔진 회전계의 8부터 칠해진 오렌지색 말이다. 같은 엔진을 공유하는 718 GTS 4.0이나 911 카레라보다 높은 고회전의 짜릿함을 만끽하는 순간, 진가를 드러내며 왜 포르쉐가 718 GT4를 만들었는지 납득하게 된다.


8,000RPM부터 시작하는 레드존

꼭 엔진을 쥐어짜지 않더라도, 서킷 주행 내내 전해지는 엔진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미드십 구조 덕에 코너를 팽이처럼 도는 것도, 엔진과 엉덩이 사이 수십 cm에 불과한 거리도 여느 718과 마찬가지. 하지만 가감속을 반복하며 전해지는 수평대향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의 노래와 떨림은 넓지도 않은 실내를 꽉 채우며 한 급 위의 ‘귀르가즘’을 선사한다.


감성은 알겠고, 성능은 어떻냐고? 내 딴에는 열심히 달렸으나 718 GT4 입장에선 운전자 실력이 아쉬웠을 수 있겠다. 포르쉐가 밝힌 718 GT4의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기록은 7분 28초. 이전 세대(981) 카이맨 GT4보다 무려 12초, 2004년 나온 하이퍼카 카레라 GT보다도 4초 더 빠르다니 말 다 했다. 앞범퍼의 새로운 바람길과 고정식 리어윙 등으로 무장한 향상된 공기역학 성능, 선대 911(991) GT3에서 빌려온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시스템의 공이 크다. 기술 발전과 세대 차이가 이렇게 무섭다.



911 GT3
718 GT4의 취기가 채 가시기도 전, 곧이어 911 GT3에 올랐다. 비교적 따끈따끈한 최신 911(992)을 기본 삼은 덕에 확실히 신차 느낌이 물씬하다. 718의 플라스틱 칼자루에 가죽을 감은 듯, 윗급이라서 다른 고급스러움도 있고.


카레라 S와 터보 S를 시승차로 만나봤기에 익숙한 실내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GT3만의 특징이 색다르다. 운전대와 기어노브를 감싼 알칸타라를 비롯해 온몸을 꽉 조이는 카본 풀 버킷시트, 생략한 뒷자리 시트가 레이싱 DNA를 풀풀 풍긴다. 멋있긴 한데 어딘가 장난스러웠던 일반 911의 기어 ‘스위치’는 영낙없이 수동변속기를 닮은 기어노브로 바꿔 달았다. 한결 진지하고, 별것도 아닌데 센스 있다.


카본 버킷시트
일반 911보다 달리기에 집중한 버튼 구성
수동변속기를 닮은 7단 PDK

외모도 특별하다. 크게 벌린 입, 보닛 상단의 공기 배출구, 검정 경량 단조 휠, 백조의 목처럼 휘어진 스완 넥 고정식 리어 윙에서 911 GT3의 주 무대를 짐작할 수 있다.


커다란 흡기구와 보닛 상단 배출구
백조의 목처럼 휘어진 스완 넥 고정식 리어 윙

애써 침착한 척 911 GT3를 타고 트랙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나를 압도하는 건 역시 엔진음이다. 718 GT4와 911 GT3 둘 다 테너와 알토 사이 즈음에서 폭발하는 고회전 음색이 카랑카랑 소프라노까지 치닫는 여느 슈퍼카와 다르다. 포르쉐 특유의 수평대향 6기통답다. 고동감은 718 GT4가 더 살아있고, 911 GT3는 보다 기름지더라. 이 정도 가창력이면 좋고 나쁨의 영역은 아니고, 취향 따라 선호도가 갈리겠다.


엔진음에서 빠뜨릴 수 없는 911 GT3만의 필살기가 남았으니, 9000rpm에 달하는 레드존이다. 직선 구간에서 점점 회전수를 쌓으면 정확히 가속페달 밟은 만큼 밀도 높은 토크를 쏟아내고, 상승세는 8000rpm이 넘도록 지치지 않는다. 그러다 코너를 앞두고 감속과 함께 기어를 내려 물 때, 순간적으로 9000rpm을 찍으면 세상 부러울 차가 없다. 심지어 911 터보S 조차도.


노랑에서 파랑으로 바뀌며 변속 시점을 알려주는 시프트 인디케이터. 911 RSR도 같은 색이다

현행 911 중 가장 강력한 터보 S는 배기량 3.8리터에 트윈터보를 붙여 최고출력은 662마력, 최대토크는 81.6kgm를 발휘한다. 반면 911 GT3는 4리터 배기량으로 510마력에 47kgm를 낸다. ‘에게?’라고 반응한다면, 911 GT3가 코웃음 칠 수 있다. 터보로 쥐어짜낸 662마력이 고기를 뭉텅 잘라내긴 좋겠으나, 정교하게 회를 뜨기엔 자연흡기로 빚은 510마력이 적합하기 때문. 911 터보S가 ‘큰 칼’이라면, 911 GT3는 ‘날카로운 칼’이다.


자연흡기 엔진으로 칼끝이 얼마나 들어갈지를 조절했다면, 어디를 어떻게 찌를지는 전륜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이 담당한다. 솔직히 내가 일반 911을 타면서 맥퍼슨 스트럿 방식을 쓴 탓에 접지력이 불만스러웠다고 하면 거짓이다. 다른 매력들에 정신팔려 그저 ‘와~’ 감탄하며 타기 바빴으니까.


911 최초로 적용된 전륜 더블위시본 서스펜션
앞 20인치, 뒤 21인치 사이즈의 경량 단조 휠

그래서 포르쉐의 설명대로, ‘역시 911 GT3는 레이싱카 911 RSR의 더블위시본 전륜 서스펜션을 이식받아 앞바퀴 접지력이 훨씬 좋아졌습니다’라고 상대 비교는 못하겠다. 다만, 절대적으로 911 GT3의 앞바퀴 접지력이 훌륭했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깊은 코너에서 운전대를 180도 가까이 꺾어도, 긴 코너에서 횡가속이 크게 걸린 상태에서도, 좌우 코너가 연속된 테크니컬 코스에서도, 심지어 운전대가 꺾인 채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아도, 좌우 앞바퀴가 노면과 수평을 유지하며 끈끈함을 잃지 않았다.


사실 더블위시본 자체가 대단할 건 없다. 다만 포르쉐가 911 GT3에만 처음으로 더블위시본 방식을 하사했다는 건, 맥퍼슨 스트럿이 아무리 뛰어나도 잘 만든 더블위시본보다 좋을 수 없음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최신 911의 유명한 ‘떡그립’은 이제 뒷바퀴만의 얘기가 아니다. RR(리어 엔진, 리어 드라이브)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뒷바퀴 접지력을 키우고 엔진은 앞으로 조금씩 밀어왔던 911. 911 GT3는 전륜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적용해 이제 MR(미드십 엔진, 리어 드라이브)의 감각까지 넘보고 있다.


소리와 진동뿐 아니라 거동에서 오는 일체감도 718 GT4와 다르다. MR인 718 GT4가 ‘나-엔진-차’ 순서로 직렬연결됐다면, RR 구성의 911 GT3는 나와 차, 엔진이 병렬로 이어진 듯했다. 718 GT4가 가볍고 직접적이었며, 911 GT3는 조금 더 무겁고 강력하게 중무장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계기반 찍은 영상을 보니, 같은 구간에서 911 GT3가 조금씩 더 빠르더라. 이건 어디까지나 둘 만 얘기했을 때 그렇다는 거지, 일반 세단과 비교하면 모두 ‘날 것’에 가까웠고, ‘차아일체(車我一體)’의 경지였다.


다른 부분도 빠지지 않았다. 7단 PDK 변속기는 나보다 더 빨리 내 마음을 읽는 듯했고, PCCB(앞 410mm 6피스톤, 뒤 390mm 4피스톤)로 무장한 브레이크 시스템은 지치는 기색 없이 원하면 언제든 911 GT3를 코너에 앞에 꽂아줬다.



카이엔 터보 GT
솔직히 이날 행사에서 가장 관심 밖이었던 모델은 카이엔 터보 GT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뚱뚱한 SUV라서. 카이엔을 무시했던 건 아니다. 이미 여러 행사와 시승차를 통해서 ‘SUV도 포르쉐가 만들면 다르다’는 흔한 소문을 직접 체험했으니까. 단지 함께 등장한 두 GT가 워낙 서슬퍼랬기 때문이었다고 해두자.


카이엔 터보 쿠페 대비 1인치 커진 22인치 휠과 카이엔 터보 GT 전용 P제로 타이어
양 끝을 카본으로 마감한 리어윙
티타늄 스포츠 배기 시스템

서킷에 들어서자마자 깨달았다. 어쩌면 카이엔 터보 GT가 가장 무섭겠다고. 방금 전과 동일한 페이스로 가속페달을 밟았는데, 벌써 다음 코너다. 코너와 코너 사이, 직선이 나올 때마다 오른발에 마음껏 힘주기가 어렵다. ‘인제 서킷이 갑자기 작아졌나?’싶을 지경.


650마력, 86.7kgm를 발휘하는 4리터 V8 트윈터보 엔진

718 GT4와 911 GT3는 ‘와아아앙’ 고회전을 쓰며 맹렬히 달려나갔지만, 카이엔 터보 GT는 나지막이 ‘후르릉’ 한 번이면 끝이다. 앞서 탄 두 GT의 자연흡기 고회전 심장과 달리 카이엔 터보 GT는 4리터 V8 트윈터보다. 최고출력은 650마력, 최대토크는 86.7kgm로 이날 만난 세 GT 중 가장 강력하다. 람보르기니 우르스, 벤틀리 벤테이가, 아우디 RS Q8 등 같은 심장을 나눈 사촌들의 면면만 봐도 ‘ㅎㄷㄷ’하다.


힘만 쎈 것도 아니다. 제원표상 시속 100km 도달 시간은 3.3초. 718 GT4가 3.9초, 911 GT3가 3.4초로 카이엔 터보 GT가 가장 날쎄다. 몸무게 2.2톤이 넘는 SUV 주제에! 육상선수보다 빠른 역도선수랄까? 작고 가볍고 강한 것과, 훨씬 크고 훨씬 무겁고 훨씬 강한 건 서킷에서 부담의 차원이 다르다. 후자를 타고 랩타임 재는 행위는 흡사 횟집 수족관에 참다랑어를 넣어둔 것과 같다. 언제 물이 넘칠까 불안하다.


무서울만큼 잘 나가는 건 알겠는데, 과연 돌고 서는 것도 잘 할까? 최대한 부드럽게 가감속을 전개하며 삐끗하지 않도록 조심하는데, 카이엔 터보 GT가 옆구리를 찔렀다. “쫄지마, 나 포르쉐야. 그것도 터보 GT”


몇 코너를 돌다보니 점점 차에 믿음이 간다. 가공할 가속을 잠재울 땐 기본 적용된 PCCB(앞 440mm 10피스톤, 뒤 410mm 4피스톤)가 빛을 발한다. 좌우 기울어짐을 다스릴 땐 카이엔 터보 쿠페보다 17mm 낮아진 차체와 최대 15% 강성이 올라간3챔버 에어 서스펜션, 재조정한 PASM(Porsche Active Suspension Management) 댐퍼 특성, PDCC(Porsche Dynamic Chassis Control) 액티브 롤 스테빌라이제이션 시스템이 제 역할을 다한다. P로 시작하는 수많은 시스템 때문에 잘 달리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라, ‘탈 SUV급’ 확신이었다.


더 단단하게, 보다 자유롭게

바위처럼 단단한 하체와 반대였던 건 엔진과 변속기다. 통째로 기름에 넣었다 뺀듯 부드럽기 그지없다. 웅장하면서도 점잖은 엔진 회전질감과 매끄럽게 토크를 쪼개 바퀴로 전달하는 자동변속기 조합에서 911, 718과의 차이를 알 수 있다. 7단 PDK 달린 두 대를 먼저 탔던 때문일까? 다른 브랜드에 얹혀 DCT 못지않은 스포츠성을 자랑했던 8단 ZF 자동변속기가 그렇게 편할 수 없다.


ZF 8단 자동변속기

인제 서킷이 좁을만큼 무시무시한 힘과, SUV임이 믿기지 않을 자세 제어는 카이엔 터보 GT를 가장 관심 없던 차에서 제일 의외였던 차로 만들었다.



포르쉐 GT 3중주
‘경기장이 콘서트홀이고, 차가 악기라면 911 GT4와 718 GT4는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아니었을까?’싶다. 연주자의 실력이 악기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다.


‘SUV도 포르쉐가 만들면 다르다’라고 했던가? 이 말을 들은 포르쉐가 조금 억울했었나 보다. 카이엔 터보 GT는 ‘아직도 더 다르게 만들 수 있거든!’이라며 포르쉐가 증거로 만든 차였다.


포르쉐의 신형 GT를, 그것도 3대나 서킷에서 연이어 탈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글을 마치려니 다시 그날 아침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부디 여러분들께 내가 느꼈던 흥분의 1/10라도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광환 kwanghwan.lee@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