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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정국은 천재가 아니다.

조회수 2021. 9. 25. 15: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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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란 텅 비어 있는 동시에 넘치도록 채워진 존재. 방탄소년단 정국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방탄소년단 팬미팅 ‘소우주’ 스케치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하이브

‘무서운 놀이 기구’ 순위 상위권에 올라야 할 것 같은 장비를 타고 콘서트장을 날아다니면서 라이브로 흔들리지 않고 노래하고, 퍼포먼스를 할 때는 마치 무대에 불이 번지는 것 같은 강렬함을 안긴다. 눈을 감고 순간을 음미하며 노래할 때는, 다소 주접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그사이에 세계가 몇 번이나 사라졌다가 다시 창조되는 것만 같은 아득함을 느끼게 한다. 세상의 모든 주인공 캐릭터에 어울릴 법한 아름답고 선한 외모, 숟가락만 들어도 근육이 생긴다는 타고난 체력도 있다.

정국은 완성된 존재 같다. 그러나 그는 매일 스스로를 출발선 앞에 세운다. 이룬 것과 가진 것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간다. “난 아직 멀었다.”라고 스스로를 엄혹하게 평가하고, ‘올라운더(all-rounder)’라는 언론의 찬사를 한사코 거절한다. 그의 좌우명은 ‘열정 없이 사느니 죽는 게 낫다.’이다. 공연할 땐 “뼈가 부러져도”, “폐가 닳아도” 좋다고 말한다. 정국에게 무대는 목숨을 건 전장이다. 그래서 정국을 천재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가 온몸을 부딪쳐 도전하고, 노력하고, 이겨낸 시간들을 과소평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국은 천재가 아니다.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다

Dear class of 2020 촬영 스케치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하이브

“울어요?”

지금 뭐 하고 있느냐는 ‘덕메(덕질 메이트)’의 메시지에, 정국의 솔로곡 ‘시차’를 하루 종일 듣고 있다고 답하자 들은 말이다. 아니라고 했지만, 맞다. 사실은 울고 있었다.

뭐 그냥, 인생이 하도 안 풀려서. 인생은 원래 그런 거니까. 아무튼, 어린 나이에 데뷔해 또래들과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온 정국의 혼란과 슬픔을 담은 이 노래는 ‘우리’를 눈물짓게 한다. 어쩐지 그의 슬픔은 내 것처럼 아프다. 정국이 방탄소년단으로 데뷔해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나는 동안, 팬들도 학생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부모로서 뛰고 구르는 삶의 달리기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정국은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팬들이 자아의 커다란 일부라고 말해왔다. 팬들에게도 정국은 그들의 일부다. 그래서 그가 해맑게 웃으며 그네를 타고, 맛있게 음식을 먹고, 얼굴의 솜털을 뽑는 모습을 볼 때면, 뭐랄까, 하늘의 별을 따다 주고 싶은 마음 같은 게 차오른다.

‘Permission to Dance’ 뮤직비디오 스케치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하이브

정국은 열다섯 살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열일곱 살에 데뷔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나이부터 작은 기획사의 기대주로, 사활을 걸고 데뷔한 방탄소년단의 메인 보컬로 팀을 책임져야 했다.

세상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이제 막 깨달은 20대 초반 래퍼 멤버들의 혈기에 밀리지 않아야 했고, 각자 개성이 뚜렷한 보컬 멤버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동시에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려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팀의 성공을 위해 정국은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다.

다행히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금세 어리다고 실력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습득력이 뛰어난 정국은 춤과 노래뿐 아니라, 열일곱 살의 사회인으로 그리고 “빽이 없는 중소아이돌”의 막내로 말과 행동을 참는 법도 빨리 터득해야 했다. 가족처럼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해주는 멤버들이 있지만, 인생에는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건, 그만큼의 외로움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때문일까. 정국은 유독 비슷한 외로움을 짊어진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한다. 촬영장에서 혼자 무거운 짐을 옮기는 말단 직원을 돕고, 대상을 수상한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왕자 같은 슈트를 입고 쭈그려서 무대에 빠져 있는 전구를 주워 끼운다. 그는 다정하고 사려 깊다. “아무것도 없던 열다섯”의 정국은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내면의 고요와 강인함을 가진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눈을 보고 말할래요

팬데믹 이후를 상상하면, 2019년에 열린 팬 미팅 ‘Magic Shop’에서 모든 순간을 기억하겠다는 듯 깊은 눈으로 관객석을 바라보던 정국을 가장 먼저 그리게 된다. ‘나랑 눈 마주쳤어 타이밍’이 1000번쯤 있었는데, 결단코 그중에 한 번 정도는 망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한 후부터는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그날 마주한 정국의 맑고 정직한 눈빛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눈을 다시 마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사상 최대 규모로 예고되었던 방탄소년단의 2020년 월드 투어는 완전히 취소되었다. (참고로 나는 그라운드석에 당첨됐다.) 오프라인석 예매가 기대되던 팬 미팅과 콘서트는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이제 괜찮다. 다시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날이 오면 정국의 눈을 보며 말하고 싶다. 안 되면 모니터라도 보며 말하고 싶다. 보고 싶었다고. 내 황금 같은 사람아, 너를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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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이삭 | K-pop 칼럼니스트. 인생을 아이돌로 배운 사람. 인스타그램 @isakchoi

*이 글은 '빅이슈' 259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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