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Bears] 서울고등학교 이병헌


지옥에서 데려왔다, 좌완 파이어볼러

2021년, 두산 베어스 팬들의 가슴은 유독 설렜다. 2022 KBO 1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왼손 강속구 투수를 품에 안을 기회가 생긴 것. 1년 전부터 ‘두병헌’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회자하던 서울고등학교 이병헌이 그 주인공이다. 갑작스레 닥친 2차례의 수술로 제기되던 온갖 의심도 불식시키고 마지막 1차 지명에 이름을 올렸다. 본명보다 두병헌이 유명해 ‘두 씨’로 알고 있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름 석 자를 등에 달고 뛰고 싶다고 말하는 그. 오랜만에 두산을 찾아온 이 좌완 유망주의 내일이 기다려진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Yubin Hwang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물음표를 지우고

약 8개월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정말로 두병헌이 된 소감이 어때요? (8월 31일 인터뷰

만약 진짜로 된다면 무슨 느낌이 들겠다고 예상하긴 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까 더 이상해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고, 항상 저를 서울고 투수라고 소개했는데 이제는 팀이 아예 바뀌었으니까 적응해야죠.

두산에도 루키 이의리, 김진욱, 장재영을 잇는 투수 최대어가 있다고 작년부터 기대하는 팬이 많았어요.

이의리 선수나 김진욱 선수, (안)재석이 형이나 장재영 선수가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한테도 저런 기회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재석이 형은 제가 가게 될 팀에서 먼저 뛰고 있는 건데, 고등학교 때와는 달라진 느낌이더라고요. 원래 장난기도 많았는데 프로에서 활약하는 걸 보면 야구에만 딱 집중하는 모습이에요. 더 어른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이제는 팬들이 본인에게 그 모습을 기대하고 있어요. 관심이 부담스럽진 않죠?) 좋죠. 팬분들의 관심을 못 받았으면 지금 이 자리에도 없었을 거니까 항상 좋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도 다들 궁금해하고 있어요.

수술하고 나서는 매일 학교, 집만 반복하고 있죠. 밖에 잘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쉬면서 재활 운동도 할 수 있게 준비하는 중이에요. (정신적으로는 괜찮아요?) 올 초에도 부상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편해졌어요. 무엇보다 팀에 정말 감사해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선배들이 지명받는다고 했다가도 부상 때문에 못 받는 사례를 봐와서 혹시나 그런 상황에 놓일까 봐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두산에서 저를 몇 년이든 기다려준다고 하면서 믿어주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요.

뜻밖의 휴식 기간을 갖게 됐는데 그간 생긴 새로운 변화가 있나요?

항상 운동만 해왔으니까 쉬는 날이라고는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일주일 내내 쉬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왠지 하루가 허전하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지명받아서 마음은 편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너무 하는 게 없어서 ‘나중에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심적으로 지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게임으로 해소하는 거예요?) 게임 말고도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책도 사보고, 뭔가를 배워보려고 시도하는 중이에요. 시간을 이렇게 그냥 보내기보다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요.

올해 2경기에 나서는 데 그쳤기에 수술을 선택하면서 마음이 조급했을 것 같아요.

수술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잖아요. 부상이란 게 언젠간 또다시 올 텐데 그때 심적으로 불안하면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심리 치료를 하면서 저를 다시 돌아봤어요. 또, 키움 히어로즈의 최원태 선배님이 제가 아프고 힘들 때, 쉬는 날마다 학교에 찾아와서 위로해주고 도와주셨어요. 아무래도 현재 프로 생활을 하는 선수의 말을 들으니까 수술을 결정하는 데 훨씬 수월했어요.

수술이란 변수로 우려도 컸지만, 결국 1차 지명이 됐어요. 뽑아준 팀과 기대하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볼까요?

저를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술이라는 좋지 않은 상황 때문에 걱정도 하셨을 텐데, 믿고 뽑아주신 만큼 그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팬분들께서는 진짜로 두병헌이라는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됐으니까 더욱더 많이 불러주세요! TV 중계에서도, 야구장에서도 자주 뵐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선배 안재석에게 두산에 대해 들은 얘기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재석이 형이 말해주기보다는 제가 먼저 물어봤어요. KBO리그에서 제일 좋아하는 팀이다 보니까 재석이 형에게 올 시즌 시작할 때부터 어떤 팀이냐고, 스타일은 어떻냐고 계속 물어봤거든요. (어떤 팀이라고 하던가요?) 연패하고 있어도 분위기만은 항상 좋게 하려는 선배님이 많다고 했어요. 감독님도 엄청 좋으신 분이라고 들었고요. 그 덕분에 팀이 단단할 수 있고 항상 좋은 성적을 가져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다른 인터뷰를 보면 안재석이 ‘츤데레’처럼 챙겨주나 봐요. 본인에게는 어떤 선배인가요?

친형 같은 존재죠. 고등학교 2학년 때 재석이 형이 수술 후 막 복귀했거든요. 처음에는 말도 못 걸었어요. 좀 까칠해 보여서 쉽게 말을 붙일 수 없었는데, 한번 얘기해보니까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는 밥 먹으러 갈 때면 항상 같이 먹었고, 프로에 가니까 밥도 자주 사줬어요. 쉬는 날에도 저한테 나올 수 있냐고 한 번이라도 더 물어봐 주고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이미지와는 다르게 잘 챙겨주네요?) 근데 또 말투는 되게 차가워요. 연락한 내용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말투가 엄청 딱딱하고 다 단답이거든요. 그런데도 학교에 놀러 올 때면 저한테 제일 먼저 연락해주니까 그런 데서 챙겨준다는 게 느껴져요.

선린인터넷고 조원태와 함께 잠실 라이벌 팀에 나란히 1차 지명을 받았죠. 지명 후 누가 먼저 연락했는지도 궁금한데요.

제가 먼저 연락했어요. (웃음) 서로 축하한다고도 했고, 원태가 잠실구장에서 만나면 맞대결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저는 언제든지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프로에서 붙게 된다면 어떤 경기를 펼치고 싶어요?) 제가 이기는 그림이어야죠. 전 항상 팀의 수비수들을 믿고 던지거든요. 포수가 말하는 대로만 던진다면 이길 수 있을 거로 봅니다.

서울고 유격수 이재현은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게 됐어요.

재현이가 지명 문제로 좀 초조해할 때가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어차피 네가 뽑히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마. 무조건 ‘삼재현’인데 고민할 게 뭐 있냐” 하면서 안심시켜줬죠. 제가 지명되고 나서 재현이도 축하한다고 해주고 서로 계속 의지하고 도와줬어요. 학교는 달랐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거든요. 결승전에서 재현이한테 홈런을 맞은 적이 있는데 그걸 계기로 더 친해진 사이예요.

얘기하는 걸 보면 먼저 연락도 잘하고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타입인가 봐요.

아뇨. 저 엄청 소심합니다. 낯도 심하게 가리고요. (지금도 낯가리고 있는 건가요?) 아까 더그아웃 유튜브 촬영을 하면서 지금은 많이 풀린 상태인데, 초면이면 말도 잘 못하고 대화를 걸어주지 않으면 먼저 말을 못 꺼내는 성격이에요. 친구들이랑 식당을 가면 주문도…. 주문해줄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야구 할 때는 저도 모르게 태도 자체가 달라지더라고요. 그건 다행이죠. (웃음)

구단 유튜브에서는 프로에서 가장 대결해보고 싶은 상대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얘기했어요.

제가 확실히 말하지 못한 건 그만큼 야구도 오랫동안 하고, 꾸준히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여러 선수를 거쳐보고 싶단 뜻이었어요. 모든 타자를 상대해보는 건 그만큼 선수 생활을 길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니까요. 그래도 꼽아보자면 각 팀의 간판타자는 한 번씩 다 만나보고 싶어요. (만약 1점 차로 지고 있고 투 아웃 만루인 상황에 등판하게 됐을 때, 타석에 서 있을 선수는 누구일까요?) 같은 서울고 출신인 강백호 선배님이 있지 않을까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 제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가 잘 치면 안타가 될 테니까요. 하지만 피하진 않겠습니다.

두산 좌완 투수로는 주로 고참 선수가 많은데, 새로운 좌완 유망주로서 가게 되는 만큼 기대가 되네요.

다들 베테랑이시고 각자 노하우가 다르니까 열심히 여쭤보면서 제 걸로 만들 수 있으면 만들어보려고 해요. (구종 추가도 관심 있어요?) 네. 제가 작년에는 속구, 슬라이더로만 던지다 보니 타자들이 힘을 실어서 치거나 투 스트라이크에도 자주 커트를 했거든요. 앞으로는 체인지업도 섞어가면서 점점 상대할 방법을 늘리고 싶어요. 또, 선발 욕심도 있어서 나중엔 선발투수에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네요.

선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때 판타스틱4도 있을 만큼 두산 선발진이 탄탄했잖아요. 지금은 그때의 위상과 달라져 선발투수 이병헌을 벌써부터 기대하는 팬들도 있어요.

저야 좋죠. 선발은 항상 돋보이고 빛날 수 있는 자리고, 중간 계투나 마무리는 선발을 뒷받침해주면서도 그 나름대로 멋있는 자리잖아요. 그래서 어떤 보직이든 다 좋지만, 중학교 때부터 살면서 한번쯤은 선발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강했거든요. 프로에 온 만큼 그 바람을 실현하려면 훈련을 계속해봐야겠죠.

#그래서, 두산

이제 프로 선수인 만큼 어떤 점에서 더 성장하고 싶나요?

지금까지는 구속을 주로 신경 쓰다 보니까 제구도 안 되고 부상도 잦았어요. 이젠 구속보다는 게임 운영이나 제구력에 더 집중해서 볼도 빠른데 컨트롤도 되는 투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봐왔던 두산은 어떤 팀이에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주 단단하고 서로 협동도 잘 되는 팀 같아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매년 좋은 성적이 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래서 두산이구나 싶어요.

프로 무대를 밟고 나서 가장 먼저 이루고 싶은 것도 궁금해요.

깔끔하게만 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1군 첫 등판이면 긴장되고 부담스러운 게 당연할 텐데, 그것만 이겨내면 결과는 알아서 따라올 거로 봐요.

한마디로 말해봅시다. 나는 두산의 OO가 될 것이다!

두산 투수진의 좌완으로서 주축이 되겠습니다.

이번 호 1차 지명 선수들에게 하는 공통 질문입니다. 내년 시즌부터 전면 드래프트로 바뀌는 만큼 마지막 1차 지명은 어떤 의미인가요?

올해 1차 지명을 바랐던 것도 마지막 1차 지명이기 때문에 더욱더 욕심을 낸 거였어요. 그 욕심을 목표로 갖고 가면서 노력했고, 결국 이루게 돼서 감회가 남다르고요. 저한테는 마지막 1차 지명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따라다닐 테니까 그 타이틀에 걸맞은 선수가 되도록 항상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병헌에게 있어서 <더그아웃 매거진>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요?

내게 <더그아웃 매거진>이란 비타민이다. 다른 촬영을 할 때보다 분위기도 훨씬 좋고 여기 오면 정말 재밌어요. 작년에 이어서 한 번 더 나오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도 이런 점 때문이지 않나 싶어요. 앞으로도 10번 불러주시면 10번 모두 다 나올 의향이 있습니다.

***

8개월 만에 정말로 두병헌이 돼서 <더그아웃 매거진>을 다시 찾은 그는 평소 낯을 가린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도리어 비타민 같은 시간을 안겨주고 떠났다. 덧붙여 넘치는 예능 욕심으로 프로 입단 후 첫 브이로그를 더그아웃TV 유튜브에서 찍게 됐으니, 이병헌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영상으로도 만나보길 바란다.

(P.S. 이병헌 선수가 ‘유튜브 각’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덕에 반려견 뭉치의 모습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더그아웃 매거진 126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1년 126호(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DUGOUTMAGAZINE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dugout_mz
유튜브  www.youtube.com/DUGOUTMZ
네이버TV   www.tv.naver.com/dugoutmz
카카오톡채널  www.pf.kakao.com/_xgVxgx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