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충격적인 그림, 이반뇌제 이야기

2018년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그림을 감상하던 한 남성이 별안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작품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는 관람객의 근접을 막기 위해 세워 놓은 금속 안전봉을 뽑아 작품을 향해 휘둘렀는데요.

그림을 감싸고 있던 진열 유리는 깨졌고,유리 파편들이 캔버스에 박히면서 그림은 찢어져 버렸죠.

경찰에 잡힌 그는 수사가 진행되는 내내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가 안정을 찾은 후남긴 진술은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그림은 이와 같은 충동적인 이유로 공격을 받아
몇 차례 훼손되기도 했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충격적인 그림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
일리야 레핀이 그린 ‘이반뇌제와 그의 아들’입니다.


스탕달 신드롬.

훌륭한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을 보았을 때
작품이 주는 충격과 감동에 압도 당하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가볍게는 일시적인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다리에 힘이 풀리기도 하고
심할 경우, 호흡곤란과 환각 증세를 보이기도 하죠.

소설 ‘적과 흑’을 쓴 프랑스 작가, 스탕달은 그의 체험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이 훼손된 건 처음이 아니었는데요.
1913년 1월 16일, 그림을 감상하던 종교화가 아브람 발라쇼프는 돌연 이렇게 외칩니다.

칼을 꺼내 두 인물의 얼굴 부분을 크게 훼손했죠.

체포된 그 역시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죠.

당시에는 일리야 레핀이 살아 있어, 그가 직접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을 처음 공개한 1885년부터, 그림 속 피가 진짜 피가 아니냐는 소문과 함께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는데요.

레핀이 그린 이 그림은 아름답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섬뜩한 전율이 느껴지죠.
러시아 역사의 충격적인 한 장면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격하게 밀려 올라간 카펫과 그 위에 내팽개쳐 진 쇠 지팡이.

뒤로 넘어진 의자와 바닥에 나뒹구는 베개.

머리에서 피가 솟구쳐 피투성이가 된 젊은이와
앙상한 손으로 머리를 끌어안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노인 그림은
끔찍한 사건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요.

이미 카펫 바닥을 적셔버린 피는 노인의 손가락 사이로 계속 흐르고 있죠.
두 인물은 다름아닌 아버지와 아들이었습니다.

러시아 최초의 황제, 이반 4세와 그의 아들 이반 차레비치였죠.

아들의 죽음 앞에서 공포와 겁에 질린 채 멍한 이반 4세의 표정은 너무나 생생한데요.
이성과 광기,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 드는 듯 하죠.

그의 아들은 누가 죽인 걸까요?

그의 아들을 죽인 건,
다름아닌 이반 4세 본인이었습니다.

이반 4세는 특유의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남다른 정치를 펼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방법은 바로 '폭력'이었습니다.

이반 4세는 사실 ‘이반뇌제(雷帝)’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는데요.

공포를 뜻하는 러시아어 ‘그로즈니(Грозный)’를 번역한 말로,
벼락 치듯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위엄으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지배자라는 뜻이죠.

그는 온 나라를 피로 물들인 폭군이자,
공포정치로 국가를 단단한 토대 위에 세운 능력 있는 군주였는데요.

통치 전반기는 오히려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국가를 운영했죠.
광기 어린 통치는 사랑하던 황후 아나스타샤의 죽음 이후 시작되었습니다.

1581년 11월, 이반 뇌제는 아들의 궁을 방문했는데요.

하지만 이내 임신 중인 며느리 엘레나를 보고 크게 분노했죠.

엘레나의 복장이 황제를 대하는 예우에 벗어났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반 뇌제는 분을 참지 못하고 임산부인 며느리를 폭행하기까지 하는데요.
이 폭행으로 엘레나는 그만 유산을 하고 말죠.

아들 이반 왕자는 아버지를 저주합니다.

이에 이반 뇌제는 이성을 잃고, 들고 있던 지팡이로 아들을 사정없이 내려치죠. 

그렇게 그는 아들 이반을 죽이게 됩니다.  

그림은 아들을 죽이고 난 후, 정신을 차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반 뇌제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는데요.

충격, 후회, 슬픔, 분노, 두려움
이반 뇌제의 눈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느껴지죠.

이 감정들은 매우 생생해서 보는 이들을 전율케 합니다.

이 그림은 일리야 레핀이 사람의 감정을 얼마나 잘 잡아내는 지를 보여주는데요.

이 외에도 레핀의 작품들은 인간에 대한 폭넓은 성찰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걸작이라 평가받습니다.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 근대 미술의 아버지이자,
19세기 사실주의(리얼리즘) 회화의 거장으로 불리는데요.

19세기 사실주의 화가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의 생활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진실되게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고대의 신들이나 이상적으로 미화된 영웅의 모습이 아닌,
도시 노동자와 농민을 포함한 당대의 인물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과 사물들을 화폭에 담았죠.
레핀 역시 러시아의 모습을 대담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세상을 다 잃은 듯, 죽어가는 아들을 끌어안은 아버지의 손엔 핏줄이 퍼렇게 서있고
원망스러움이 가득한 아들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 채 마르지 않았죠.

카펫과 옷, 인물의 얼굴은 피로 물들었고
쇠 지팡이 끝에 묻은 피가 참혹한 사건의 증거로 남았습니다.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과 성격까지 읽을 수 있는 생생한 눈빛과 표정, 몸짓, 주변 배경의 묘사가 인상적인데요.

레핀은 초상화의 대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그린 초상화만 300점이 훨씬 넘는데요.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의 국민 음악가 무소르니스키,

당대의 음악가, 문학가, 과학자 등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독특한 것은 얼굴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레핀은 모델의 특징적인 포즈와 몸동작, 행동 등을 통해
각각의 인물이 지닌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는데요.

그림 속 모든 요소가 복잡하게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보여줍니다.

레핀은 특히 ‘혁명’을 주제로 한 민중의 삶을 주로 그렸습니다.

모순으로 가득 차있던 당시 러시아의 냉엄한 현실을 그려낸 건데요.

러일 전쟁, 1차 세계 대전 등 여러 차례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국민을 위한 정치보단 왕족을 유지하는데만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결국 알렉산더 2세와 그의 가족들이 젊은 혁명가들로부터
폭탄 테러를 당해 몰살 되는 사건이 일어났죠.

러시아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는데요.
레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레핀은 이반 뇌제의 일화를 통해, 민중이 겪는 시대의 고통을 표현했죠.

그림에는 폭력과 광기에 사로잡힌 아버지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죽어가는 황태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폭력적이고도 비이성적인 통치로 민중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 권력의 비극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그림이 발표되자마자 나라에는 큰 반향이 일었고,
분노한 알렉산더 3세는 이 그림의 전시를 금지시키기도 했는데요.

때문에 이 그림은 최초로 검열에 걸린 작품이기도 하죠.

레핀은 예술이 특정 계층의 사람만의 소유가 아니라,
동시대 모든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당시 활동하던 이동파 화가들은 러시아 곳곳을 순회하며
민중들의 삶 속에 들어가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이에 공감한 레핀은 이동파에 참여했고
곧 이동파의 핵심적인 작가로 자리 잡죠.

이동파(Peredvizhniki)

러시아어로는 방랑자를 뜻하는 이동파는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미술운동을 이끌었던14명의 작가들을 이야기하는데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러시아 사회에 반발하여, 예술을 통한 민중 계몽을 위해
이동 전시 협회를 결성한 것이 시작이었죠.

이동파 화가들에게 그림은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었고, 삶을 변혁하는 무기였습니다.


러시아 근대 미술의 아버지,
19세기 사회주의 사실주의(리얼리즘) 회화의 거장 레핀에게 붙는 또 다른 수식어가 있습니다.

바로 ‘저주의 화가’죠.

사실 일리야 레핀에게는이상한 소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 속 모델들은 금세 사망한다는 것이었죠.

러시아 작가 알렉세이 피셈스키,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등 레핀이 초상화에 그렸던 이들이 모두
초상화를 그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잇따라 사망했습니다.

이 그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죠.

레핀은 죽은 황세자를 그릴 때,
모델로 러시아의 소설가 프세볼로트 가르신을 고용했는데요.

일리야 레핀이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을 대중에 공개한지 3년 뒤인 1888년.
가르신은 자신이 살던 아파트 5층에서 뛰어내렸고,
5일 뒤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뜻밖에도 사망한 가르신의 모습은 레핀의 그림 속 아들 이반의 모습과 비슷했죠.

1901년 일리야 레핀은 레시아 정부의 의뢰를 받아
니콜라이 2세 왕과 정관계 인사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요.

그림이 완성(1903)되고 얼마 뒤, 러시아 혁명(1905)이 일어나면서
모델이 됐던 대부분의 장관들이 화를 입거나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일리야 레핀의 저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저주의 화가라는 수식에도 불구하고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 온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러시아의 역사와 민중을 주제로,
진정한 러시아 회화에 대해 고민한 그는
러시아만의 사실주의 회화를 개척했기 때문이죠.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이 그림에는 민중들의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요.

관객은 그림에 나타난 고통과 슬픔에 압도 당해, 광기 어린 충동을 저질렀습니다.
레핀의 그림은 또 한 번 충격적인 역사의 흔적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죠.

사실적인 묘사로 관람객들을 압도하는 이 그림 앞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것이 느껴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