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나타가 단종된다고?!..영원히 기억될 쏘나타의  37년 레전드 인생 이야기 [쏘나타의 역사 통합본]

▶통합본 : 소나타1세대 (Y1) ~ 쏘나타 8세대 (DN8)


▶떠나가는 하얀 소의 해처럼...골로 가버린 쏘나타 판매량

새하얗게...불태웠어...쏘나타 판매량... (출처: 농촌진흥청 유튜브)

2021년 신축년 (辛丑年) 하얀 소의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하이얀 눈이 쏟아지던 연말, 흰눈보다도 더 새하얕게 질린 슬픈 소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메기 디자인을 들고 나온 탓인지 역대 최저 판매량을 기록하며 장렬하게 심해로 가라앉고 있는 쏘나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황금 소의 해'였던 2009년, 기축년의 쏘나타는 달랐습니다. 내수시장에서만 14만 6천여대를 판매했고,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링카였죠. 그야말로 '황금 소의 해'를 맞아 가장 잘 나갔던, 위풍당당 소나타의 전성시대였습니다.

하지만 하얀 소의 해, 2021년의 쏘나타는 6만대 판매조차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2021년 1부터 11월까지 쏘나타 판매량은 5만7073대. 그나마도 K5는 구매희망자가 줄을 서며 출고대기기간이 늘어나는 와중에, 쏘나타는 재고차량이 남아있어 대기기간이 적다는 거의 유일한 메리트와 더불어 각종 명목을 가져다 붙인 눈물겨운 '땡처리 할인'으로 이뤄낸 처절한 성과입니다. 이러한 극약 처방에 힘입어, 2021년 쏘나타는 간신히 '연간 6만대 판매'라는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슬프게도 '파란 소의 해' 을축년이었던 1985년 첫 등장했던 소나타 역시 'VIP를 위한 차'로 시장에 나타났다가 처절한 실패를 맛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한 상품성 개선으로 '부장님 차', '국민 중형차'소리를 들으며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올 수 있었죠. 전성기였던 90년대에는 '압구정 오렌지족' 소리를 듣기 위한 최소도전과제였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LG그룹 임원차량으로 지급되는 나름대로의 클래스와 품격을 갖춘 차였죠

아 테스형...! 쏘나타 왜이래...

스스로 무지를 지각하고 진리를 추구했던 '소'크라테스처럼 중형차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해왔던 쏘나타는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드림카는 아닐지언정 현실적인 성공한 사회인의 차였고, 우리와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차였습니다. 마치 '워낭소리'에서 일평생 할아버지와 함께 밭을 갈던 누렁이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내리막길을 향해 광란의 질주를 이어가는 쏘나타의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시하자마자 '떡락'해 호적에서마저 파였던 쏘나타는, 어떻게 진흙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올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부활했던 쏘나타는 어쩌다 다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걸까요? 1세대 '소나타'부터 8세대 '쏘나타 DN8'까지, 참담하지만 찬란했던 쏘나타의 모든 이야기를 알아봅니다.

▶ 난 너같은 자식 둔 적 없다...현대차 호적에서도 파였던 1세대 소나타

소나타는 누가 탈까? 정답 : 소 (출처 :깔깔유모어집)

쏘나타의 시작은 비참했습니다. 제작자인 현대조차 한동안 ‘버린 자식’ 취급하는 '폭망차' 였기 때문이죠. 1985년 출시된 ‘소나타’는 현대가 당시 히트했던 중형 세단 스텔라를 개조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크루즈 컨트롤, 파워 시트 등을 탑재하고 유럽 차에나 달린다는 해드램프 워셔까지 달린 소나타.

‘VIP를 위한 자동차’로 홍보하며 각종 첨단기술로 무장해 등장했지만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분명 고성능 첨단기능을 탑재하긴 했지만 ‘중형차’ 스텔라와 너무나 외관상 차이점이 없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소나타가 어필하고 싶었던 VIP들은 소나타를 살 이유가 없었습니다.  스텔라와 구분하기도 힘든 소나타 대신, 흘깃 스쳐만 봐도 '귀티'가 철철 넘치면서도 가격은 더 저렴한 완벽한 상위호환 대체재가 있었기 때문이죠.

바로 대우자동차에서 만들었던 '로얄 살롱'이었습니다. 집안 재산을 '영끌'해야 자동차 살까말까하던 시절, 차의 크기는 곧 그 사람의 재력의 크기를 상징했습니다. 로얄 살롱은 소나타보다 더 커다란 건 물론이고 무려 '장관님 자동차'로 정부에 납품되던 차였습니다. 5공화국 시절 고위관료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귀티가 철철 넘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현대에도 존재했던 VVIP용 최고급 대형 세단(이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는 '스텔라'를 어떻게든 활용해 '고급차'로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판매하던 현대자동차의 최고급 자동차 '그라나다'가 단종되었기 때문이죠. 그라나다는 현대가 포드로부터 부품을 수입해 조립만 하다시피해 팔던 차량이었는데, 1984년 포드가 그라나다와 관련 부품의 단종을 선언하며 현대 입장에서는 '고급차 라인업'이 사라질 위기가 닥쳤던 겁니다.  

결국 중형차 스텔라에 온갖 첨단기능을 넣어 VIP 자동차로 팔아보려고 했던 것이 1세대 소나타지만, '소비자 니즈'보다는 '현대의 사정'으로 만들어진 소나타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산 후반기에는 판매량이 증가세를 보이긴 했습니다만, ‘소나 타는 차’라고 빈축사기 일쑤였던 소나타는 ‘쏘나타’로 개명되는 굴욕까지 겪게 됩니다.

이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현대자동차는 차량의 ‘ㅅ’발음을 ‘ㅆ’된소리로 내는 유구한 전통을 갖게 됩니다. (EX: 투싼, 싼타페).

▶ 내가 멍청한 짓을 한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쏘나타 2세대의 역습

소나타와는 다르다 소나타와는!! 에에잇 현대의 중형차는 괴물인가

하지만 소나타가 온갖 오명을 뒤집어쓰며 로얄살롱에 판매량으로 두들겨맞는 동안, 현대는 차량 하나를 새로 개발했습니다. 신입사원이 타고 오면 온 회사가 뒤집어진다는 바로 그 차, 1세대 각그랜저였습니다.

1세대 소나타가 ‘소나 타는 차’라고 비웃음당했을지언정,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현대는 고급차 라인업의 공백 없이 대형차 ‘그랜저’를 개발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1986년 출시된 그랜저 출시와 동시에 국내 대형차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는 바로 ‘전륜구동 플랫폼'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중형차 이상급 차량은 대부분 '전방 엔진 후륜 구동'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구동방식은 크랭크축 샤프트가 차량을 수직으로 가로지르기때문에 실내 공간이 좁아지는 단점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사계절의 대비가 강렬한 우리나라에서 '겨울철 눈길'을 만났을 경우 주행 난이도가 급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조향과 구동이 일치하는 전륜구동 차량은 눈길에서도 상대적으로 주행이 용이했고, 결과적으로 그랜저는 대히트를 치며 국내 대형차 시장을 석권합니다.    현대는 기존 스텔라의 플랫폼을 내다버리고 그랜저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쏘나타에 그대로 이식합니다. 플랫폼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988년 출시된 2세대 쏘나타의 메인 광고 카피부터가 '그랜저의 테크니컬 그대로', 즉 그랜저의 기술을 차용했다고 강조하는 멘트였을 정도였죠.

들어는 봤나 '히프룸'

1985년 처절하게 시장에서 외면받아 돌아온 쏘나타 2세대는 '그랜저 빨'과 함께 엄청난 무기를 장착하고 돌아왔습니다. 바로 그랜저보다도 넓은 실내공간이었죠. 지금까지 전해오는 ‘한 체급 위의 실내공간’이 본격적인 세일즈포인트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작아 보여도 실제로는 더 큰’ 실내공간은 당대 중형차 수요자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구매요소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기에 윗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적당히 좋은 차’의 겉모습 속에 ‘대형차보다 더 좋은 거주성’을 누리는 이중적인 소비가 가능했기 때문이죠. 압도적인 인기 속에 중형 세단의 최강자로 인정받은 쏘나타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수출한 중형차가 됩니다.

▶ 잘 선점한 이미지, 열 신차 안 부럽다...신화를 이어간 쏘나타3세대

93년 출시된 3세대 쏘나타 = ‘쏘나타2’는 출시 이후 33개월, 3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60만대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에서 연간판매량이 가장 높았던 중형차’ 기록을 갖게 됩니다.  

20세기 마지막의 경제호황기 속에서, 과거 80년대 초반 '포니'나 '브리사', 80년대 후반 '프라이드'를 몰고 다니던 사회인들의 상당수의 차량 교체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향상된 소득수준으로 주머니 또한 두둑해져 있던 시기였습니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앞 세대에서 ‘운전이 편한 중형차’, ‘대형차만한 중형차’ 포지셔닝을 선점하고 있던 중형차, ‘쏘나타2’로 차급을 높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쏘나타 2의 디자인이 지금에서도 회자될 정도로 세련되면서도 고급진 '절제미'가 있었던 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쏘나타를 산다는 것은 제법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상징과도 같던 시기였죠.  

하지만 경쟁사들도 가만히 눈 뜨고 당하고 있을리는 없었습니다. 기아에서는 코너링이 부드러운 차 '크레도스'로 도전장을 던지며 치고 올라왔습니다. 왕년에는 로얄살롱으로 '소나타'를 압살했던 대우자동차는 '소리없이 강한 차' 레간자로 소나타 2세대의 아성에 도전했습니다. 마치 한국 중형차 시장이 '삼국지'를 연상케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좌절감이 소나타를 키우는 것이다!! (출처 : 조조전 온라인)

하지만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위,촉,오 삼국중에서 결국 삼국통일을 하게 된 건 처음부터 잘 나갔던 조조의 위나라(를 찬탈한 사마씨의 진나라)였다는 사실을요.

그렇습니다, 승자는 좌절감으로 성장한 중형차 쏘나타2세대였습니다. 중형차 수요가 증가할 시기에 플랙폼 혁신을 통해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며 '고급 중형차'라는 이미지를 선점한 쏘나타의 아성은 경쟁사가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피셜이 아닙니다...역사적 팩트입니다

워낙 유명한 탓인지 쏘나타 2세대의 페이스리프트모델, 쏘나타 3는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헤드램프 모양이 '남성기'를 닮았다는 루머부터, 후면 앰블렘의 'S'와 '3'를 떼면 수능 300점 이상을 맞아 서울대를 갈 수 있다는 등 갖은 루머와 테러(?)에 시달린 차량이 쏘나타 3였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사랑도 끊이지 않았기에, 쏘나타는 단 한번도 중형차 연간판매량 1위의 왕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 곡선미학과 품격의 정점을 찍다...미국도 인정한 쏘나타 4세대

저는 physiological 레벨도 완전히 충족못합니다...S....Sleep이 부족해서

'매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 허기를 면하고 생명을 유지하려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 외부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안전의 욕구](safety) → 가족, 친구들과 친해지고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애정·소속 욕구](love/belonging) →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존중받고 싶은 [존중의 욕구](esteem) → 계속 발전하고자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자아실현 욕구] (self-actualization) 의 순서대로, 하위 욕구단계가 충족되면 인간이 원하는 '욕구'가 변화한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인간'이 만든 쏘나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습니다.

쏘나타는 2세대에서 혁신적 전륜구동 플랫폼으로 상품성을 인정받아 생존을 유지한 [생리적 욕구]가 충족됐습니다. 3세대에 이르러서는 경쟁 차종을 모조리 따돌리며 [안전의 욕구]까지 충족했죠. 이 시기 쏘나타가 세운 여태까지 깨지지 않은 '중형차 연간 최대 판매 기록'은 쏘나타에게 [애정, 소속 욕구]를 충족시켜주었고, 차를 몰아볼 일 없는 학생들에게까지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점을 보아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존중의 욕구]또한 성취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쏘나타는 4세대에서 무엇을 추구했을까요?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였습니다.

1998년, ‘네오 클래식’을 표방하며 등장한 EF쏘나타는 지금까지도 디자인적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쏘나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벤츠 C클래스와 유사한 느낌의 전면부를 가졌던 뉴 EF쏘나타는 당시 벤츠 C클래스와 유사한 전면부 디자인을 도입하는 한편, 베이지 컬러의 가죽시트를 도입해 블랙 일색이었던 차량 내장 인테리어에 신선한 충격을 전해줬습니다.

4단 HIVEC 변속기의 미숙함 탓에 '유리 미션'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아연 도금 처리로 '부식되지 않는 차' 입소문을 탄 SM5에게 위협받기는 했지만, [자아실현]단계에 접어든 EF쏘나타는 원숙미를 더해가며 '격차'를 벌려갔습니다.

2002년 등장한 EF쏘나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그랜저 XG의 크롬라인과 사이드몰딩을 도입하고, 리어 어퍼가니쉬는 통해 강인하면서도 품격있는 디자인을 만들어 냈습니다. "쏘나타 최고의 작품"이라는 광고 캐치프레이즈가 조금은 민망하지만 중후하면서도 특색있는 디자인인건 분명했기에, 지금까지도 유행을 초월한 디자인이라는 호평을 듣고 있습니다.

뉴EF 쏘나타는 2004년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J.D.Power)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중형차 부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당시 외신은 '개가 사람을 무는 일이 벌어졌다'고 보도하며 경악하기도 했습니다. 소나타를 '개'취급했다기 보다는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도의 관용어입니다만, 아무튼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던겁니다. 이듬해 2005년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미국 컨슈머리포트에서 '고장이 적은 차 1위'로 선정되면서 외국에서도 쏘나타의 이름값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 쏘나타 5세대 NF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지난번 [쏘나타의 역사 1부]를 봐 주신 많은 분들께서 입을 모아 달아주셨던 댓글이 있습니다. 바로 '쏘나타 중에 최고는 NF 쏘나타'라는 댓글이었죠. 출시된지 십수년이 훌쩍 지났지만서도 '최고의 쏘나타'라는 칭송을 받는 NF쏘나타는 과연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중형차였습니다.  

'쏘나타 신화'를 써내려가며 승승장구하던 90년대의 쏘나타는 사실 한 가지 근본적인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엔진이 '미쓰비시'제 일본 기술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던 거죠.EF쏘나타에서 일부 트림 국산화를 하기도 했지만, 판매량이 높은 트림은 여전히 일본 기술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 등장한 NF쏘나타는 첫 출시때부터 가솔린, 디젤, LPG 모든 유종의 엔진을 '국산 엔진'으로만 사용하며 '순수 국산 기술력'을 강조했습니다.

사실 2002년 미국 시장을 노리며 앨라바마에 대규모 공장 건설에 착수한 현대는 '일본 차와는 다른, 현대자동차만의 무언가'를 미국 시장에 보여줘야만 했기 때문에 그토록 엔진 국산화에 집착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NF쏘나타가 단순히 '한국산 엔진' 하나만으로 숭부수를 던진 차는 아니였다는 점입니다.  

NF는 EF쏘나타에서 느껴졌던 극한의 '곡선미'를 다시 직선적으로 다듬었습니다. 이른바 '유로피언 스타일'을 표방하며 직선 위주로 헤드라이트와 차체 라인을 다듬었지만, 접합부가 매끄럽게 맞물려 떨어지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우수한 승차감의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과 쏘나타 역사상 마지막으로 사용된 유압 스티어링 조합 역시 우수한 승차감을 손 끝으로 직관적으로 전달해주는매력이 있었죠.

특히 후기형 트랜스폼 모델은 제한적이긴 했지만 무려 '후륜 조향 시스템'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AGCS [ Active Geometry Control Suspension] 이었죠.  차량이 고속에서 급커브를 틀게 될 경우, 차량 속도와 회전각 등의 정보를 계산해 후륜 토우값을 3도 정도 변경해주는 기술이었죠. 지금으로서는 상대적으로 흔해진 후륜 조향 기술이지만, 당시로서는, 특히 국산차로서는 시대를 앞서도 10년은 앞선 기술로 평가받았던 기술이었기에 유독 NF쏘나타를 '쏘나타 최고의 명작'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공을 들였던 덕분인지 실제로 NF쏘나타는 내수시장 석권은 물론, 북미시장에서도 눈에 띌만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북미시장 출시 첫 해부터 좋은 반응을 보이며 꾸준히 매년 10만대 넘게 수출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북미 시장에서의 '생존의 위기'를 넘겼기에, 현대는 더욱이 자아실현에 목말라졌습니다.  

당시 북미시장을 휘어잡고 있던 도요타 캠리의 경우 여전히 연간 40만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클라스의 차이'를 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단순히 '잘 만든 중형차'로는 '원래부터 잘 만들던 중형차' 도요타 캠리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막 숨을 고른 도전자가 스탠딩 챔피언을 날려버리기 위해선, 아니 적어도 다운 한번이라도 뺏어내려면 '비밀 무기'가 필요했습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의식의 사각지대를 파고들 '비밀 무기' 말입니다

▶쏘나타 6세대 YF - 1인 3역의 '삼'엽충 쇼크

그렇게 북미시장에서의 현대 부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2009년 등장한 YF 쏘나타는 국내 시장에 충격과 공포를 몰고왔습니다. 3분할 된 라디에이터 그릴과 세로로 떨어지며 모아지는 전면부를 목도한 국내 소비자들은 입을 모아 경악했습니다. '플루이딕 스컬프쳐 디자인'이라고 쓰고 '삼엽충'으로 불렸던 YF쏘나타의 충격적인 디자인에는 한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현대 미국지사 수석 디자이너였던 앤드리 허드슨 씨는 NF쏘나타의 후속작으로 두 가지 디자인을 준비했다고 전해집니다. 첫번째 시안은 NF 쏘나타의 디자인을 개량하고 다듬은 버전, 또 하나는 '난초'를 비롯한 대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었죠. 현대의 높으신 분들은 후자, 즉 난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도전적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이 디자인 초안을 국내에서 다듬어서 출시한 것이 바로 삼엽충 전설로 남은 YF 쏘나타였습니다.  

출시 전 공개된 디자인을 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폭발적인 분노 말이죠. 획기적이긴 했지만 기존 쏘나타가 가지고 있던 '품격'과는 너무나도 괴리감이 큰 디자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기존에 호평을 받은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보다 저렴하지만 승차감이 단단한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으로 바꾸면서 현대가 원가절감에 미쳤다는 비난까지 뒤따랐습니다.

출시 직전까지만해도, YF 쏘나타는 멸종한 삼엽충의 전철을 뒤따라 하늘나라로 갈 기세였습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로 간건 솟구쳐오른 YF 쏘나타의 판매량 그래프였습니다. 2012년, YF쏘나타는 북미 판매량 23만대를 기록하며 쏘나타 역사상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린 쏘나타로 등극했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신형 세타2엔진 탑재, 변속기 단수 증가, 연비 향상, '핫 스탬핑' 공법을 통한 경량화 및 안전성 강화 등의 성능적인 개선점도 분명히 흥행 요소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흥행요소 중 하나는 바로 그토록 혹평받선 '삼엽충 디자인' 덕분이었습니다. 기존 중형차와는 달리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 감성을 추구한 것이 북미 시장의 취향을 저격했던 겁니다.  

이 여파로 도요타는 내부적으로 '쏘나타 쇼크'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YF쏘나타의 디자인 변화에 충격을 받았고, 이를 벤치마킹한 끝에 2014년 신형 캠리의 디자인을 YF와 마찬가지로 '파격적'으로 갈아엎어버리기에 이릅니다. YF쏘나타의 파격적 디자인이 중형차 업계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었던 겁니다.

당시 쎄타2엔진 결함 관련 자료 (출처 : 국토교통부)

이렇듯 '이상한 놈'같은 첫인상으로 시작해 '좋은 놈'으로 재평가된 YF쏘나타에는 사실 또 한 가지 모습이 숨겨져있었습니다. 바로 '나쁜 놈' 이었죠. YF쏘나타 출시 후 한참이 지난 2015년, 미국에서 세타2 엔진 결함으로 현대자동차가 불타버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세타2 엔진 결함 논란으로 미국 시장에서 리콜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대상을 축소하려다가 내부자의 양심선언의 양심선언으로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물게 된 겁니다.

'엔진 설계 의혹'을 제기하는 국내 소비자들에겐 '미국 공장만의 공정 문제'라고 주장하는 한편, 양심선언을 한 내부고발자 김광호 부장을 향한 보복성 인사조치도 잊지 않았습니다.   마치 세갈래로 갈라진 '삼엽충' 라디에이터 그릴처럼, 쏘나타 YF는 충격적인 세 가지의 서로 다른 면모가 공존하는 차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파격적으로 변한 YF쏘나타의 디자인만큼이나 한국 사회도 '파격적'인 한 가지 변화가 오고 있었습니다.

▶쏘나타 7세대 LF - 세상은미친 듯 변하는데 혼자서 제자리

2014년 쏘나타의 7세데 LF쏘나타가 등장했습니다.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중형차 업계의 디자인 감성에 새 바람을 몰고 온 YF쏘나타의 후속작이었기에 LF는 또다시 파격적인 실험적 디자인으로 등장하리라는 예상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등장한 LF쏘나타의 모습은 YF때의 '파격'을 상당히 단정하게 다듬은 듯한 느낌이었죠. 굳이 표현하자면 YF쏘나타 80%를 베이스로 NF쏘나타 20% 정도를 섞어 준 디자인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강도 철판의 사용을 대폭 늘려 차량 안전도를 높이고 주행 소음도 잡아냈습니다.   

그러나 성능여부를 떠나 이렇게 '찔끔' 바뀌며 다시 무난해진 LF쏘나타의 디자인은 북미 시장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YF때 이후 20만대를 뚫었던 소나타의 북미 판매량이 감소세로 돌아서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단정한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다르지 않았을까?

캠핑 예능의 히트는 국내 자동차시장을 뒤흔든 나비효과를 불러오고...(출처: MBC)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LF 쏘나타가 '찔끔' 바뀌면서 출시될 동안 대한민국의 자동차 소비시장은 다이나믹하게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결정적인 건 2012년에 있었던 '주 5일제'의 본격적 시행이었습니다. 갑자기 생긴 '주말 연휴'에 뒤이어, 이듬해부터 '캠핑 예능'들이 인기를 끌며 레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는 SUV 수요의 급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이렇게 '단정'한 디자인을 추구한 LF쏘나타의 '차급' 자체가 점점 '품격'에서 멀어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LG그룹 임원 차량으로 사용되던 EF쏘나타 시절 현대자동차의 라인업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대형 에쿠스>준대형 그랜저 > 중형 쏘나타 > 준중형 아반떼 > 소형 엑센트  

즉, 쏘나타의 위치가 5개 라인업중 '3위', 아슬아슬했지만 중간, 굳이 따지자면 중간 이상의 위치였죠.

5명 중 3등 vs 6명중 5등... 어느 차가 더 '끕' 있어 보이시나요?

하지만 LF 쏘나타가 출시된 2014년에는 이미 '제네시스'가 새롭게 '고급 세단'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2014년 아슬란이 추가 출시되고, 2015년 엑센트 단종을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2018년까지 판매)하면서 쏘나타의 입지에 일대 지각변동이 생기게 됩니다.   

대형 에쿠스> 대형 제네시스 > 준대형 아슬란 > 준대형 그랜저 > 중형 쏘나타 > 준중형 아반떼 > (단종될 거라던 소형 엑센트)  

이 시기, 쏘나타의 입지는 '중상급'이던 과거가 무색하게 '6명 중 5등', 좋게 봐 줘도 '7명 중 5등'으로 떨어졌습니다. 하필이면 2015년 출시된 아반떼 AD가 '역대 최고의 상품성'이라 불리며 세계에서 4번째로 잘 팔리는 차로 등극할 만큼 탄탄한 구성을 들고 나오자, 쏘나타의 상품가치는 직격타를 맞았습니다.

과거와 같이 '품격' 있는 차를 원하던 사람들은 쏘나타로는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느꼈기에 그랜저를 택했고, 가성비 좋은 패밀리 세단을 원하던 사람들은 가성비에 혹해 아반떼를 택했습니다.   LF 쏘나타의 입지는 점점 흔들렸습니다. 195만여대를 팔며 '쏘나타 200만대 시대'의 초석을 닦은 YF 쏘나타의 흥행이 무색해지게 7세대 쏘나타는 66만 여대 판매애 그쳤습니다. 실질적으로 1/3토막 난 판매량 앞에서 쏘나타는 절박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쏘나타 8세대 - '낀세대' 부장님의 처절한 몸부림, 하지만...

'낀세대' 처지가 되어버린 쏘나타는 절박했습니다. 2019년 출시한 쏘나타 8세대 (DN8)은 심기일전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상품성을 연마해 돌아왔습니다. 전 등급 능동 안전 기술 기본 탑재, 전 등급 에어백 9개, 리어 전동 커튼과 2열 열선을 추가해 후열좌석 편의성을 더했고 2021년식 연식변경 모델에 와서는 뒷좌석 폴딩까지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상품성을 개선한 쏘나타는 심해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메기처럼 말이죠.  삼엽충 YF 쏘나타 시절에는 '난초'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얻었다더니, 이번에는 해산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싶었습니다.

주간주행등 역할을 하는 '히든 라이팅'은 크롬 벨트라인과 맞물려 '메기 수염' 혹은 '꽃게발가락'이라 혹평받으며 아예 크롬 광택을 없애는 사제튜닝까지 공공연하게 이뤄졌습니다. 누가 봐도 기성세대가 아닌 '젊은 층'을 겨냥한 디자인인건 사실이었지만, 이미 '젊은 중형차'는 K5가 2010년 출시 초기부터 쭉 선점한 상황이었고, 소비자들은 알찬 구성에도 쏘나타를 외면했습니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센슈어스에 와서는 논란의 메기수염을 삭제하고 세계최초로 CVVD(Continuously Variable Valve Duration, 가변 밸브 듀레이션) 기술을 적용해 연비와 반응성을 높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고성능 중형 세단' 쏘나타 N을 출시하며 젊은 소비층을 공략하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연식변경 이후로도 '동생뻘 차'인 K5에 시종일관 판매량으로 밀리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올해 연말 들어 '중형차 판매 1위' 자리를 탈환하기는 했지만 그 배경에는 K5가 주문이 밀려 출고가 지연되는 속사정과 더불어 각종 명목을 붙여 쏘나타 할인 행사를 벌인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쏘나타 8세대도 과거 YF쏘나타때와 마찬가지로 '해외(북미)에서는 잘 먹힐 디자인'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북미 시장에서 경쟁 차종과의 판매량 추이를 비교해보면 2020년 도요타 캠리의 북미 판매량은 약 29만대, 쏘나타 판매량은 8만대로 3배 넘게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YF쏘나타가 2011년 북미에서 22만대를 판매하며 30만대를 판매했던 도요타 캠리를 바짝 따라붙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쏘나타 8세대개 '해외에서 잘 먹힌다'는 주장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8세대 쏘나타 몰락의 가장 큰 이유는 애매해지고 있는 중형차의 상품성과 더불어, 일관되지 못했던 쏘나타의 아이덴티티 때문이었다 생각합니다. YF쏘나타는 출시 직후 '쏘나타 쇼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키며 중형차 업계의 디자인 감성을 뒤집어 놓은 선구자적인 차량이었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타 경쟁사에서는 중형차의 '디자인 감성'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도요타 캠리는 파격적인 '젊은 중형 세단' 감성으로 디자인을 개편했고, 혼다 어코드는 반대로 '럭셔리'한 이미지를 덧씌워 기존의 '무난'한 중형차 감성을 탈피했습니다. 하지만 YF로 중형차 디자인의 파격을 선도한 당사자, 쏘나타는 정작 다음 7세대(LF)에 무난한 디자인으로 회귀하고도, 미지근한 시장 반응에 다시 파격적인 디자인 시도의 8세대로 돌아왔습니다. 시장 반응에 기민하게 대응한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쏘나타의 '아이덴티티'는 이도저도 아닌, 어떠한 네임밸류와 가치를 추구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차로 느껴졌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쏘나타 8세대는 비교적 개선된 상품성과 새로운 신기술 도입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악의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쏘나타 8세대는 페이스리프트 모델 출시 없이  곧바로 9세대 완전변경 모델로 출시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현대자동차 54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페이스리프트로 재기를 노려볼 여지도 없다는 판정을 받은 '굴욕의 차종'이 되는 셈입니다.

▶ '폭망'으로 시작한 소나타...반복된 '폭망'을 벗어나 미래로 향하길

유독 '소'와 인연(?)이 깊었던 쏘나타....

1985년 최초로 등장해서 '소나 타는 차' 비난을 받았던 쏘나타 1세대(소나타). 35년여 뒤하얀 소의 해 신축년 2021년에도 또다시 극도의 판매량 부진과 비난 속에서 굴욕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박한 평가에도 막상 '쏘나타 단종설'이 제기된다면 충격과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예상됩니다. 오랜 시간 '성공한 사회인의 차', '국민 중형차'로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크고작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장수모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새롭게 심기일전해 돌아올, 아니 심기일전해 돌아와야만 하는 쏘나타 9세대에 기대를 걸어보게 됩니다. 쏘나타는 과거의 추억으로만 묻어두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대를 살아온, 박물관의 헤리티지 보다는 도로를 누비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차량이니까요.